이인로: 역주 파한집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5. 7.
역주 파한집 - 이인로 지음, 박성규 역주/보고사 |
『파한집(破閑集)』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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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집 권상 破閑集 卷上
파한집 권중 破閑集 卷中
파한집 권하 破閑集 卷下
파한집 발문 破閑集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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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집(破閑集)』에 대하여
8 『파한집』은 고려 중기의 문인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가 1210년경에 편찬한 시화집이다. 이인로는 고려의 귀족정치가 쇠퇴해 가던 고려 전기 말엽에 한때 명문거족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인주이씨(仁州李氏)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잃고 가세가 기울어 명종의 숙부이자 화엄종파의 종장(宗匠)인 요일(寒一) 스님의 슬하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8세가 되던 1170년에는 무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이 중단된 사태를 만나 무인들의 칼날을 피해 산문에 들어가 승려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무인의 난으로 아직 국정이 안정을 되찾지 못했던 1176년에 국자감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기록을 볼 때 그는 다른 문신들과는 달리 일찍 산에서 내려와 여전히 왕족 출신인 요일 스님의 비호를 받으며 과거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28세가 되던 1180년 봄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무인정권 하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관료로 진출하였다. 그는 폭넓은 독서와 뛰어난 창작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고, 당시 젊은 계층의 리더로 등장했지만 무인집권자들에게는 그가 껄끄러운 상대로 인식되어 관료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명민한 지식인으로 당대를 살아가면서 강고한 무인정권 하에서 자유롭게 사유하고 활동할 수가 없었으므로 많은 고민에 빠졌고, 늘 못마땅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40년 가까이 관직 생활을 했고 당대의 집정자나 관료들과 교류해오면서도 우리나라 도교적 이상향인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 자주 유람하였고, 작품속에서도 더러 자선의 현풍적 취향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능문능리한 사람이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6명의 지식인들을 모아 죽립고회를 결성하고 그 모임을 주도했던 것도 다분히 이러한 그의 현실 도피적인 도가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 『파한집』은 우리나라 비평문학 최초의 업적으로 그 문학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이인로가 새로운 형태의 비평서를 출간한 이유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세황이 아버지 사후 40 년만에 어렵게 이 책을 출간하면서 책 뒤에 덧붙인 「파한집발」에서 아버지가 죽림고회에 함께 참여했던 임춘, 오세재, 이담지, 황보항, 조통, 함순 등과 화조월석에 만나 시주를 즐기다가 술에 취하여 도도해지면, 서로 나누던 얘기를 소개함으로써 그 편찬 동기를 말하고 있다.
여수 가에는 반드시 좋은 금이 있으니 형산의 밑에 어찌 좋은 옥이 없겠는가? 우리나라가 봉래와 영주에 인접하여 예로부터 신선의 나라라고 불리어졌다. 그 신령한 정기를 모으고 빼어 난 재주를 길러 오백 년마다 뛰어난 인재를 배출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 중국에서 아름다운 이름을 나타낸 사람으로는 고운 최치원이 앞에서 선창하였고, 참정 박인량이 뒤에서 화답하여 명유와 운석이 시를 잘 지어 다른 나라에 명성을 떨친 이가 대대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만약 우리들이 진정으로 선인들의 글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훌륭한 글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고 하고는 드디어 중외에 남아 있는 작품들 중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을 모아 엮어서 세 권을 만들고 이름을 '파한'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파한집』 편찬 동기가 우리 문학에 대한 역사적 인식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인로 자신이 당대를 울리던 문인이고 석유로서 당시에 우리 문학의 전반을 조감할 수 있는 선집이나 통시적 문학 기록들이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여 자신의 손으로 중요한 작품과 그와 관련된 시화를 남겨야 하겠다는 일념에서 『파한집』을 편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인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죽림고회 참여 문인들을 포함한 당시 많은 뜻있는 지식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던 것으로 결국 『파한집』은 이인로가 그들의 공통된 의지를 모아 편찬한 것이라고 하겠다.
11 『파한집』은 3권으로, 모두 8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구성은 크게 나누어 시론, 시평, 인물평, 일화 등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시평과 일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시화집으로서의 성격을 추측케 한다. 『파한집』에서 이인로는 시작에 있어 어의구묘를 정도로 삼았으나 의묘보다는 어묘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같은 시기에 문학 활동을 한 이규보가 이인로와 마찬가지로 어의구묘를 주장하면서도 의묘인 신의론에 더 관심을 보인 것과는 변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인로가 어묘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해서 시의 내용이 모방과 답습을 벗어나 참신해야 한다는 신의론을 배격하거나 부정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인로를 용사론자로 지목하여 신의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이규보와 대립적으로 보려는 시각은 옳지 않다. 이인로는 문학에 있어 형식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을 뿐이지 그를 단순히 형식론자로 간주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鄭知常, 送友人
267 서도는 옛 고구려의 도읍지다. 좌우로 산과 강을 끼고 있고, 서려있는 기상이 빼어나서 옛날부터 기인과 이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예종 때 준걸한 재주를 가진, 성씨가 정 씨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잊어버렸다. 231) 그가 어렸을 때 '친구를 보내며(送友人)'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비 그친 긴 강독에 풀빛 요란한데,
그대를 천리 멀리 보내니 슬픈 노래 떠도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할 건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물결을 보태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千里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作波
라고 했다.
231) 성씨가 정 씨인 ··· ··· 잊어버렸다. : 정씨는 고려 전기 유명한 시인이자 진보적 인물인 정지상을 가리킴. 그는 지금의 평양인 서도 출신으로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기존 보수 세력과 대척적인 관계 속에서 고려의 새로운 부흥과 진취적 기상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을 꿈꾸다 좌절당하고 오히려 반역죄인으로 몰려 김부식에게 참살되었음. 여기서 『파한집』의 저자인 이인로가 정지상의 이름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가 역신으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忘其名'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하겠음. 여기에서 이름조차 거론할 수 없는 당대 무신집권기의 정지상에 대한 인식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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