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2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9. 26.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2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삼환 옮김/민음사 |
어느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
제7권
제8권
작품해설
작가연보
240 그가 오래 생각할 틈도 없이 신부가 나타나더니 그 초록색 탁자 뒤에 가서 섰다. 「이리 다가오시오!」 하고 신부가 얼떨떨해하고 있는 그의 친구에게 외쳤다. 빌헬름은 다가가서 계단을 올라갔다. 책상보 위에는 자그만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기에 당신의 수업증서가 있습니다」 하고 신부가 말했다. 「여기에 적혀 있는 것을 명심하시오. 중요한 내용이오」 빌헬름은 그것을 받았다. 그러고는 두루마리를 펴면서 읽어나갔다.
수업증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으며, 판단은 어렵고 기회는 쉽게 달아난다. 행동하기는 쉽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불편하다 모든 시작은 밝고 즐거우며 문턱은 기대의 장소이다. 소년은 경탄하고 인상이 그의 갈길을 정하여 그는 놀면서 배우지만 뜻밖에도 진지성이 찾아오는 통에 깜짝 놀라게 된다 모방은 우리가 타고난 재능이지만, 무엇을 모방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훌륭한 것은 발견되기도 드물지만, 높이 평가되기란 더욱 드물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높은 곳이지 계단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꼭대기를 바라보면서 평지를 걷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술의 일부분이지만, 예술가가 필요한 것은 그 전부이다. 그것을 반밖에 모르는 사람은 항상 헤매고 있으면서도 말이 많다. 그것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다만 행동을 좋아할 따름이고 말이 드물거나 말을 하더라도 나중에 한다. 전자에게는 비밀과 생명력이 없으며 그의 가르침은 구워놓은 빵과 같아서 입에 달지만 〈단 하루만〉 배부르게 해준다 그러나 밀가루로 씨를 뿌릴 수는 없고 씨앗에 쓸 밀은 빻아서는 안 된다 말은 좋은 것이지만 최선의 것은 아니다. 최선의 것은 말을 통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최고의 것은 우리의 행동의 근원인 정신이다. 행동은 오직 정신에 의해서만 이해되고 다시 표현될 수 있다. 올바르게 행동할 때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옳지 않은 행동은 우리가 항상 의식하고 있다. 다만 상징만 갖고 활동하는 사람은 현학자나, 위선자가 아니면 돌팔이 선생이다. 그런 인간들은 수가 많아서 무리 이루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잔소리는 제자들의 기를 꺾고 그들의 고루한 범용성은 가장 훌륭한 제자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든다. 진정한 예술가의 가르침이란 의미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말이 없는 곳에서는 행동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제자는 이미 아는 것에서 미지의 것을 이끌어내는 것을 배움으로써 스승에게 근접해 간다.
254 지금까지 인생에서 많은 것을 배워온 그였지만, 그에게는 인간의 본성이란 아이를 관찰함으로써 비로소 분명히 인식될 수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지금까지 그에게는 연극무대가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한 무리의 던져놓은 주사위들같이 생각되었다. 그 주사위들 하나하나의 표면에는 때로는 많고 때로는 적은 숫자들이 적혀 있지만, 그 숫자들을 모두 합한 총계는 항상 동일한 그런 주사위들 말이다. 그러나 아이를 관찰하고부터 그에게는 아이가 마치 하나의 주사위와 같이 여겨진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여러 면 위에 인간본성의 가치와 무가치가 아주 분명하게 새겨져 있는 그런 주사위 말이다. 사물을 구별하고자 하는 아이의 욕구는 나날이 커져갔다. 모든 사물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한번 알고부터는 무슨 물건이든 그 이름을 알고 싶어했다. 아이는 아버지가 틀림없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서 질문을 통해 자주 아버지를 괴롭혔으며, 그에게 평소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대상들에 대해 탐구하는 계기를 부여하였다. 만물의 근원과 종말을 알고자 하는 타고난 본능도 그 아이한테서는 일찍이 나타났다. 아이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고 불꽃은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한계성을 절감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사고를 어느 범위까지 확대해 나갈 수 있으며 바라건대 언젠가 자신과 타인에게 떳떳하게 책임질 수 있는 행위가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느 생물이 부당하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격분하자 아버지는 이것을 심성이 훌륭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지극히 기뻐하였다. 아이는 몇 마리 비둘기의 머리를 쳤다고 해서 부엌에서 일하는 아가씨에게 화를 내며 대들기도 했다. 하기야 이런 아름다운 생각도 그 아이가 무자비하게 개구리들을 때려죽이고 나비들을 찢어죽이는 것을 보면 금방 다시 혼란스러워지곤 했다 이런 특성을 볼 때마다 그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열정도 없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할 때, 지극히 공정하게 보이던 사실을 연상하곤 하였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0) | 2024.09.26 |
---|---|
애덤 셰보르스키: 민주주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3) | 2024.09.26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 (0) | 2024.09.26 |
톰 라이트: 바울 평전 (1) | 2024.09.19 |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0) | 2024.09.19 |
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4) | 2024.09.19 |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외 (0) | 2024.09.13 |
장 클레망 마르탱: 이야기와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프랑스 혁명 (4) | 2024.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