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9. 26.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삼환 옮김/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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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이 점에서 전혀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었던 우리의 친구는 당장 베르너의 말을 가로막고는 크게 열을 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친구야, 중간중간에 잠시 짬을 낸 몇 시간에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작품이란 그 첫 착상부터가 온 영혼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정말이지, 시인이란 완전하 자기 자신을 위해, 전적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들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돼. 하늘로부터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내면적 천분을 부여받아 끊임없이 스스로 불어나는 보물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시인은 부자가 자기 주변에 수많은 재화를 쌓아놓고 갖은 애를 써도 얻을 수 없는 안온한 행복감 속에서 외적으로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보물들과 더불어 살아가야해. 행복과 환락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보라구! 그들의 소망, 노력, 돈은 쉴새없이 무엇인가를 뒤쫓고 있지. 그런데 무엇을 뒤쫓고 있지? 그것은 시인이 이마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이자? 즉, 이 세상을 즐기는 일; 다른 사람 속에서 자기 자신을 공감하는 일, 그리고 종종 화합이 안 되는 많은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일이지.
무엇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개념들을 사물들 자체와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이고, 향락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슬쩍 빠져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며, 소망했던 것이 너무 늦게 오기 때문이며, 달성하고 성취한 모든 것도 인간의 욕망이 애초에 기대했던 만큼 그렇게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지. 운명은 마치 어느 신에게 그러듯이 시인에게도 모든 것을 초월하는 지위를 부여했어. 시인은 온갖 열정들의 혼돈을 내려다볼 수 있고 가정과 국가가 지향 없이 움직이고 있는 양상을 통찰할 수 있으며, 종종 단 한마디면 풀 수 있는 그러한 오해들의 얽히고 설킨 수수께끼들이 이루 말할 수없이 무서운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꼴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거든. 그는 모든 인간 운명의 슬픈 면과 기쁜 면을 공감할 수 있어. 세속의 인간이 커다란 손실을 당하여 애태우며 우울하게 하루 하루를 허송하고 있거나, 방종한 기쁨에 젖어 자기의 운명을 반겨 맞이할 때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정다감한 시인의 영혼은 마치 하늘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태양과도 같이 밤으로부터 낮으로 옮겨가며, 그의 영혼의 하프는 들릴락 말락 한 이행구를 거치면서 기쁨에도, 그리고 고통에도 공명하는 것이지. 시인의 마음의 밑바닥에는 지혜라는 아름다운 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자라 올라오는 거야.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뜬눈으로 꿈꾸고 그들의 모든 감각으로부터 나오는 기괴한 환상들 때문에 불안해할 때에, 시인은 깨어 있는 자로서 삶의 꿈을 체험하고 아무리 진기한 일이 일어나도 시인에게는 과거사로 보일 수 있고, 또한 동시에 미래의 일로도 보일 수 있는 것이지. 이렇게 시인은 스승이자 예언자인 동시에 여러 신들과 인간들의 친구이기도 하지. 그런데도 자네는 시인이 보잘 것 없는 생업으로 하강하기를 바라는 거야? 마치 한 마리 새처럼 온 세상을 굽어보면서 부유하고, 드높은 산봉우리에 둥지를 틀고, 이 가지 저 가지로 가볍게 옮아다니며 꽃봉오리와 나무열매를 먹고 살도록 타고난 시인이 동시에 황소처럼 쟁기나 끌고 개처럼 짐승의 발자국이나 추적하거나 아니면 아예 쇠사슬에 묶여 멍멍 짖어대면서 농가나 지켜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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