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 하퍼: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9. 19.
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 카일 하퍼 지음, 부희령 옮김/더봄 |
지도 07
연대표 08
프롤로그 : 자연의 승리 11
1장 | 환경과 제국 19
2장 | 가장 행복했던 시대 51
3장 | 아폴로의 복수 127
4장 | 세계의 노년기 225
5장 | 운명의 수레바퀴 299
6장 | 분노의 포도 착즙기 369
7장 | 심판의 날 453
에필로그 : 인류의 승리? 528
감사의 말 537
옮긴이의 말 541
23 로마가 융성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마지막 몇 세기 동안 지중해 지역에 지정학적인 무질서가 넓게 펼쳐진 시기와 일치한다. 적절한 역사적 순간에 로마인들은 공화정과 군국주의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채 전례 없는 국가폭력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제국의 건설은 피로 얼룩진 사업이었다. 전쟁기계가 입맛을 다셨다. 병사들은 지중해 전역에 직선형으로 늘어선 로마의 식민지에 주둔했다. 잔혹한 폭력으로 침략한 곳들이었다. 난폭한 정복이 이루어진 시대의 마지막 세기에 위대한 셰익스피어의 인물형들이 역사의 무대를 좌지우지했다. 서구의 역사적 자각이 불균형하게도 로마의 공화정 마지막 몇 세대에 집중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니다. 로마 제국의 성립은 전례 없는 일로, 인류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부와 발전의 수준이 현대성을 향해 돌진했다. 아울러 불안정한 공화제 헌법은 자유 미덕, 공동체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반성을 촉발시켰으며, 제국주의 권력을 어떻게 적절히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졌다. 로마의 법은 통치의 표준을 탄생시켰으며, 그로 인해 제국의 통치자들조차 해명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정도였다. 그러나 권력의 급격한 확대는 격변을 불러올 국가 폭력에 기름을 부어 독재의 시대가 시작되도록 만들었다. 메리 비어드는 적절하게도, "제국이 황제를 만들었다. ─ 그 반대가 아니라"라고 언급했다.
24 로마의 성취를 평가하고 고대 제국주의의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사회의 삶에 대해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삶은 느리고 유기적이었으며, 무너지기 쉽고 제한적이었다. 시간은 인간의 발과 동물의 발굽이 만드는 둔중한 리듬에 따라 흘러갔다. 수로는 제국의 진정한 순환 시스템이었으나, 폭풍이 몰아치고 바다가 닫히는 추운 계절에는 모든 마을이 섬으로 변했다. 에너지는 당연히 부족했다. 힘은 인간과 동물의 근육에서 나왔으며, 연료는 통나무와 덤불이었다. 육지에 밀착되어 살아가는 삶이었다.
24 이러한 제약들로 인해 로마 제국의 수직적 공간적 성취가 뚜렷해졌다. 전기 통신이나 엔진이 달린 운송 수단도 없이, 로마인들은 지구상의 서로 다른 지역들을 연결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의 북단은 북위 56도를 넘어섰고, 남쪽 경계선은 북위 24도 아래였다. "전근대의 역사 속에 존속한 제국들 중에서 오직 몽골, 잉카, 그리고 러시아의 차르만이 로마와 비슷하거나 더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로마만큼 오래 지속되고 중위도 이상과 열대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다스린 제국은 없었다.
26 로마인들이 단지 폭력만으로 이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것은 아니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힘이 필요했고, 로마 국경 안의 사람들과 그 너머 사람들이 끊임없이 협상해야 했다. 제국이 오래 유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국의 권력, 그리고 경제와 협상의 내적 논리가 여러 차례 형태를 바꾸었다.
26 아우구스투스는 고대 로마 제국이라고 알려진 정권을 인수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치적 천재이며, 기이할 정도로 긴 수명을 타고났다. 그는 공화체제의 종말을 주도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정권을 탈취하려는 엘리트들의 경쟁으로 인해 공화국 말기에 불붙었던 정복의 열기가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치세는 평화로운 시기로 알려져 있다. 로마인들이 전쟁을 할 때만 열어 두던 야누스 신전의 문은 7백 년 동안 겨우 두 번 닫혔을 뿐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그 문이 세 번이나 닫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민들로만 이루어진 군대를 해산시키고 직업 군인으로 대체했다. 공화국 말기는 여전히 무상 약탈의 시대였지만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정복한 영토에서 통치와 정의의 규범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약탈은 일상적인 세금으로 변했다. 저항이 폭발할 때는 유대나 브리타니아(지금의 영국)에서처럼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시민들은 처옴에는 지방으로 서서히 흘러 들어갔으나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27 첫 이백 년 동안제국의 체제를 규정한 거창하고 결정적인 타협은 제국과 '도시들'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로마인은 도시와 그곳의 귀족 가문을 지배했다. 로마인은 지중해 세계의 시민 귀족 계급을 그들의 제국주의적 책략으로 구슬렸다. 지방 귀족들에게 세금 징수를 맡기고, 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로마인들은 3개 대륙에서 선택한 엘리트들을 지배 계급으로 편입시켰고, 그 결과 수백 명에 불과한 로마인 고위 관료들로 광대한 제국 전체를 통치할 수 있었다.
29 로마 제국은 개화를 위한 역사적 균형을 갖추었다. 공화정 말기에 이미 이탈리아의 사회발전은 엄청난 도약을 경험했다. 이탈리아의 번영은 어느 정도는 약탈의 결과이자 정복의 열매였다. 노골적인 정치적 보상으로 획득한 것이라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겉치레로 얻어진 번영이나마 그 아래에서 진정한 성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한 성장은 군대가 한계에 다다른 뒤에도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정복한 나라들로 확산되기까지 했다. 로마는 단순히 영토만을 지배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이윤이 전달되었는데 제국의 통합이 촉매 작용을 했다. 느리지만 꾸준히, 로마의 통치는 그 지배하에 있는 사회를 변화시켰다. 상업, 시장, 기술 도시화가 그것이었다. 제국과 동시에 많은 민족이 발전의 지렛대를 붙잡았다. 제국은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강력하고 폭넓게 성장했다.
31 서기 650년 즈음의 로마 제국은 번성했던 과거는 그림자로만 남아 콘스탄티노플, 아나톨리아 그리고 바다 건너 몇몇 낙후된 소유지 속에서 쓸모 없어진 비잔티움으로 줄어들었다. 서유럽은 다루기 힘든 게르만 왕국들로 분열되었다. 예전 제국의 절반은 아라비아에서 온 다른 신앙의 군대에 의해 신속하게 쪼개졌다. 한때 7천 5백만에 이르던 지중해 지역의 인구는 대략 절반 정도에서 정체된 상태였다. 로마에는 약 2만 명이 거주했다. 그들은 이전보다 부유하지 못했다. 7세기 무렵에는 좁은 간선도로 하나가 바다를 가로질러 동서를 간신히 연결하고 있었다. 통화 체계는 중세 초기의 모자이크 형태로 분열되어 있었다. 유명무실한 재정기관 외에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과 이제 형성되어 가는 중인 이슬람교인들이 있는 모든 곳에서 종말론의 공포가 지배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느껴졌다.
33 로마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역사들 대부분은 배경이 되는 환경을 안정적이고 비활성화된 상태로 가정하고 전개된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가정이 틀렸음을 안다. 지구 시스템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고대기후와 게놈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이 현기중 날 만큼 진보한 덕분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암묵적 가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리고 지금도 지구는 인간사의 요동치는 발판이다. 격렬한 돌풍 속에 휘말린 배의 갑판처럼 불안정한 발판이다. 물리적, 생물학적 지구 시스템은 끊임없이 설정을 바꿔왔고, 우리 인간은 내내 존 브룩이 '험난한 여정'이라고 불렀던 일을 겪어야 했다.
36 홀로세에서 급속하게 기후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의 일이다. 지구라는 행성의 관점에서 보면, 로마인들은 운이 좋았다. 제국은 로마 기후최적기RCO라고 불리는 후기 홀로세 기후 시대의 경계선에서 최대의 영토와 번영을 누렸다. RCO는 제국의 중심인 지중해 연안에 걸쳐서 따뜻하고, 습하며, 안정적인 기후였음이 밝혀졌다. 정치적 경제적 타협의 피라미드로부터 농경 제국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었다. 교역과 기술이나 마찬가지로, 기후 체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제국의 번영에 선순환적이면서 조용하고 협조적인 힘이었다. 로마인들이 그 한계까지 제국을 밀어붙였을 때, 그들은 환경적 토대가 자신들이 건설한 제국에 위태롭고 가변적임을 알지 못했었다.
36 2세기 중반부터 로마인들의 행운은 바닥에 떨어졌다. 조사한 결과 수 세기에 걸쳐 홀로세에서 가장 극적인 기후 변화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우선 서기 150~450년의 3세기에 걸친 기간 내내 혼란스러운 기후가 도래했는데, 이를 로마 과도기라고 부를 것이다. 기후가 불안정해지자 결정적인 고비마다 제국은 비축된 힘을 쥐어짜야 했고, 기후는 여러 사건의 진행에 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다가 5세기 후반부터 기후가 결정적으로 재편성되는 소용돌이가 시작되었고, 고대 후기 소빙하기에 접어들면서 절정에 이른다. 530년대와 540년대의 화산활동으로 후기 홀로세는 전반적으로 냉랭한 날씨가 지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태양에서 지구로 도달하는 에너지의 수준은 수천년 만에 가장 낮은 지점으로 떨어졌다.
37 자연은 어둠을 틈타 기습하는 군대처럼 인간 사회를 붕괴시키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장치를 가동했다. 그것은 바로 감염병이었다. 로마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생물학적 변화가 물리적 기후 변화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물론 기후 변화와 감염병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연관되어 서로 겹쳐서 일어나지만 동일한 현상은 아니다. 다만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42 후기 로마의 역사는 여러 세기에 걸친 팬데믹의 시대로 볼 수 있다. 제국은 놀라울 정도로 지리적 범위가 넓은 대규모 사망 사건들로 인해 세 번이나 요동을 쳤다. 165년에는 천연두로 추정되는 이른바 안토니누스 페스트가 유행했다. 그리고 541년에는 부보닉(서혜 임파선종) 페스트의 원인균인 예르시아 페스티스의 첫 번째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무려 이백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러한 생물학적 재난의 정확한 규모는 알 도리가 없다. 세 가지 유행성 감염병 중 가장 사망률이 낮은 것은 안토니누스 페스트일 것이다.
4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의 시대처럼 사회가 통합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번창했으며 화려했던 한때를 누렸던 제국이 5세기가 지난 뒤에는 알아볼 수조차 없이 쇠퇴하게 된 중대한 변화, 그 일련의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은 한 국가가 몰락하고 침체하는 과정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다. 로마 제국은 맬서스 학파에서 말하는 에너지 제약의 시대에 건설되었으나, 교역과 기술의 진보가 그러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게 했다. 제국의 힘은 인구 팽창과 경제 성장의 전제이자 결과였다.
46 로마 제국의 종말은 피할 수 없는 파멸을 향해 쇠퇴해 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길고, 우회적이며,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이야기다. 회복력이 강한 정치 구성체가 그 과정을 견뎌내고 스스로 재편성되었다가, 마침내 둘로 나뉜다. 처음에는 서로마 제국이, 그리고 다음에는 동로마 제국이 몰락한다. 변화의 패턴은 언제나 자연, 인구통계, 경제, 그리고 정치 사이에서 강력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제시될 것이다. 심지어 신앙의 체계 같은 초월적이고 열광적인 것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다. 신앙은 쇠퇴의 시기 동안에 반복적으로 불안정하게 재구성되었다. 역사의 역할은 이러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자유와 우발성에 대해 건강한 존경심을 가지고, 또한 주어진 환경 아래 자신의 삶을 살아낸 인간들에 대한 강한 연민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엮어가는 것이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2 (0) | 2024.09.26 |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 (0) | 2024.09.26 |
톰 라이트: 바울 평전 (1) | 2024.09.19 |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0) | 2024.09.19 |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외 (0) | 2024.09.13 |
장 클레망 마르탱: 이야기와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프랑스 혁명 (4) | 2024.09.13 |
마르틴 브로샤트: 히틀러국가 (3) | 2024.09.13 |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0) | 202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