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브로샤트: 히틀러국가

 

히틀러국가 - 10점
마르틴 브로샤트 지음, 김학이 옮김/문학과지성사

서언
제1장 | 히틀러의 집권
제2장 | 집권 이전의 히틀러 운동
제3장 | 정치권력의 독점(1933)
제4장 | 주의 제국 통합과 새로운 분권주의
제5장 | 사회권력의 장악
제6장 | 제3제국 초기의 당과 국가
제7장 | 공무원과 행정
제8장 | 지도자권력
제9장 | 1938년 이후의 지도자절대주의와 다중지배
제10장 | 사법
제11장 | 결어

옮긴이 해설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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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옮긴이의 판단으로는, 1969년에 처음 간행된 이 책은 1945년 이후 독일에서 생산된 가장 위대한 나치즘 연구서이다. 지은이 마르틴 브로샤트는 주요한 나치 개개인의 의도를 중심으로 나치즘을 설명하는 ”의도주의” 연구와 사뭇 다르게, 나치즘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는 “기능주의” 연구를 이 책으로 개시했다. 그래서 이 책을 모르면 나치즘의 '연구사'를 모른다. 이 책 이후 발표된 거의 모든 주요 나치즘 연구가 지은이의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과 씨름해왔기 때문이다. 

501 이 책에서 브로샤트가 던진 질문은 제3제국의 정치조직과 권력 행사의 형태 및 그 변화였고, 그가 발견한 것은 권력 행사의 즉흥성과 무체계성이었으며, 그의 독특한 해석에 따르면 바로 그러한 무정부적인 체제와 나치 운동의 비상한 역동성이 인과적으로 결합되어 있었으며, 그 결합을 보장한 것이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의 히틀러의 존재였다는 것이다. 나치즘의 그러한 특징은 이미 집권 전에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브로샤트는 그 실마리를 나치 세계관에서 찾는다. 세계관 운동으로서 나치즘의 핵심은 원민중적 민족주의로, 원민중은 역사에 앞서 존재하되 미래에 완성될 것으로서, 그 미래완료의 시점에 자연과 인간 농촌과 도시,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의 분열이 극복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종말론이고, 유토피아적인 기대이며, 정치 은유다. 다만 현실에서 그것은 극단적으로 모호하다. 따라서 각자는 그 속에 구체적인 현실적 열망과 원한을 투사하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치 이데올로기의 내용들은 상황에 따라 상호 교환될 수 있고, 또 "행동"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 나치가 행동 우위의 선동 및 투쟁 정당으로 일관한 것은 이로써 쉽게 설명된다. 

501 세계관의 모호성 때문에 나치당에는 슈트라서 형제처럼 나치즘의 공동체적 평등성을 중시하면서 스스로를 사회 혁명가로 자처하는 자들과 프리크처럼 권위적인 국가체제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자들이 병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분화에 걸맞게 나치당 조직 역시 분권적이었다. 나치즘의 확대는 각 지역 중소 보스들이 지역 사정에 부합하는 운동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여 세력을 쌓으면, 당 중앙이 이를 사후적으로 승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지구당 위원장들은 해당 지역에 자기만의 권력 기반을 가진 작은 히틀러였다. 따라서 그들이 당 중앙의 명령을 우습게 여겼음은 너무도 지당한 일이다. 

503 조직의 혼란은 정책의 혼란을 야기한다. 나치 조직은 따라서 실행 가능한 정책의 개발과 실천에 지극히 부적합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조직원들이 상황에 따라 독자적인 이니셔티브를 발휘하여 위기에 빠진 사회적 파편들을 끌어들이고 동원하는 데는 대단히 탁월하였다. 그러나 그런 나치즘에 강한 원심력이 작용하리라는 것은 또한 자명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즘이 별반 분열 조짐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브로샤트는 나치즘의 또 다른 특징인 지도자원칙에서 찾는다. 히틀러는 대중의 노이로제 속에서 자신의 노이로제를 발견하여 이 공통의 위기의식을 상승적으로 강화시키고,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향한 광적인 의지를 선지자적인 제스처로 표출하던 자였다. 따라서 브로샤트가 보기에 히틀러는 대중의 원망이 표출되는 통로인 동시에 나치 세계관이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비로소 정치적 현실로 되는, 이데올로기와 현실 사이의 유일한 번역자였다. 

나치당 조직은 히틀러의 이러한 위치를 그대로 반영했다. 히틀러는 조정 장치가 결여된 채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운동을 개인적인 충성 관계로 통합하는 카리스마적인 구심점이었다. 즉 그는 계서적인 조직의 정점에 위치한 당 총재가 아니라 당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있는 "지도자"이고, 그의 지배는 관료제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었다. 나치당의 권력 배분 역시 히틀러의 그러한 개인적인 지배권을 위임받느냐에 달려 있었다. 문제는 히틀러가 권력을 당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만 위임하였다는 데 있었다. 그의 초월적 지위가 그런 방식으로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08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강조하자면, 이 모든 양상이 비효율만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국가의 '보편적인' 작동 방식이 해체된 상태에서 히틀러로부터 전권을 얻어내기만 하면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자원을 특정 부문에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국가는 특정한 부문에서는 단기적이기는 해도 비상한 능력을 발휘했다. 아우토반 건설 액화석유 생산, 인조고무 생산이 대표적인 예다. 게다가 그런 체제는 그때까지 발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발상들이 현실화될 듯한 전망을 제공했다 한마디로, 전권을 얻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나치 사회야말로 '하면 된다'는 의지의 사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광했고, 모두가 자신의 구상을 드디어 실현시키고자 했다. 

511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책은 딱딱하고 어렵다. 그러나 고통을 감내하고 읽고 나면 나치즘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그 성취는 또다른 성취로 이어질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책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인내하며 읽어주기를 바란다. 옮긴이가 보기에, 현재 한국에 출간되어 있는 수많은 나치즘 관련 서적 가운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책은 딱 여섯 권뿐이다. 이 책 『히틀러국가』, 티모시 메이슨의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데톨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 라울 힐베르크의 『홀로코스트 一 유럽 유대인의 파괴』, 이언 커쇼의 『히틀러』, 크리스토퍼 R . 브라우닝의 『아주 평범한사람들』.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책들을 읽는 순서가 있다는 점이다. 맨 먼저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 『히틀러국가』이다. 그다음은 티모시 메이슨의 책, 포이케르트의 책, 힐베르크의 책, 브라우닝의 책, 커쇼의 책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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