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레빈슨: 세계 경제의 황금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9. 1.
세계 경제의 황금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 마크 레빈슨 지음, 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 |
감사의 글
서문
01 신경제학
02 마방진
03 카오스
04 신념의 위기
05 스태그플레이션의 대공습
06 골드 보이
07 수입 쿼터와 첩
08 수출 전쟁
09 꿈의 종말
10 우경화
11 마거릿 대처
12 사회주의의 마지막 저항
13 미국의 아침
14 잃어버린 10년
15 새로운 세상
주
찾아보기
17 하지만 세계 많은 지역에서 부자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의 경제 상황이 꾸준하게 나아지고 있었음을 상기할 때에만 우리는 저 몇 십 년간의 격동을 이해할 수 있다. 시는 게 썩 괜찮았다는 바로 그 점(일자리는 찾기 쉽고, 먹을거리는 풍부하고, 적당한 주거가 도처에 널려 있고, 새로이 조직된 안전망이 실업과 질병 및 노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했다)이 개인들에게 기두시위부터 물질만능주의에 반대하는 대항문화에 합류하는 것까지 위험을 무릅 쓸 용기를 줬다. 많은 나라에서 많은 시민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의 문화적 격동과 사회적 격변에 참여하는 것을 기능케 하고, 공분을 사지 않은 채 오랫동안 존재해 온 사회적 불의━성차별, 환경, 악화 및 동성애자 억압━에 맞서 목소리를 높일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은 틀림없이 생활 수준의 상승과 경제적 안정의 확대였다.
22 한편 정치판에서는 정부가 시장의 힘을 방해함으로써 생산성 둔화를 유발했다는 보수 진영의 포격을 받았다. 이제 고상한 작은 정부 정책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공해, 산업 안전, 근로 시간, 영업 허가, 초기 주식 공모 및 그 밖의 수십여 개 사안과 관련한 규제가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맹공격을 받았다. 철도와 통신 같은 국가 주도 부문에 경쟁을 도입하면 업계의 고객이 비용 절감 및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조합 및 일부 사회 보장 프로그램, 특히 실업 수당을 보호하는 법률이 효율적인 노동 시장에 지장을 준다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과중하다고 알려진 이런 정책을 개선한 곳에서 바람직한 효과가 있었는지는 생산성 데이터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치적 방안은 문제의 근본 원인, 곧 기술적 변화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이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23 1990년대에 미국학자 폴 로머는 혁신과 지식이 노동과 자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 경제 성장에 대한 사고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그의 연구에 붙은 읽기도 힘든 이름 곧 ‘내생적 성장 이론' 은 교육을 강화하고, 과학 연구를 뒷받침하고, 기업 활동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 재정 적자와 세율로 속 썩는 것보다 경제 성장 증진에 훨씬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론이 전 세계 경제 부처를 휩쓸고 30년이 지난 뒤 로머는 자신이 옳았다고 더 이상 확신하지 않았다. 2015년에 그는 이렇게 인정했다. "지난 20년간 성장 이론은 사회적 공감대를 향한 과학적 진척이 전혀 없었다."
24 연대기상으로 봤을 때 황금기는 짧았다. 폐허의 세상어서 개화한 때로부터 상상치 못한 번영, 꾸준히 상승한 생활 수준, 그리고 완전 고용이 중간에 갑작스럽게 끝날 때까지 겨우 사반세기가 경과했을 뿐이다. 학자들은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알아내려 씨름하면서 지난 50년을 보냈다. 그러나 고칠 일은 아무것도 없고 길었던 호황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24 우리가 세계 경제를 최상의 상태로 회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지속될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의식을 바꿔놓았고, 21세기까지 줄곧 정치계를 지배해온 정부 회의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변화와 더불어 찾아온 것이 바로 사회 복지의 공동 책임에 관한 입장 변화다. 즉 국가 기관의 힘이 약해지면서 개개안은 의료 서비스, 교육 및 노령 비용과 위험 부담을 더 많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의 경제 변동이 세상을 우경화시켰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28 어쩌면 황금기와 함께 사라진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반세기 동안 모든 부국과 많은 빈국의 평범한 국민은 나날이 자신들의 삶이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희생과 고된 노동이 자손을 위한 굳건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임을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황금기가 추억이 되면서, 만인이 행보했던 시대의 무한한 낙관주의 역시 추억이 되었다.
31 하지만 많은 니라에서 그 내핍의 시대, 절박하기까지 했던 그 시절은 정치적 변화의 물결을 몰고 왔다. 바로 사회 복지 제도였다. 정부가 시민의 경제적 안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발상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37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전후의 호황은 1920년대 이래 처음 출현한 장기간의 번영이었다. 그 원인은 많았다. 분명 그중 하나는 다년간의 궁핍 이후 억눌렀던 수요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시의 억제책이 정상적인 기업 투자를 인위적으로 제한해왔고, 이것이 기업들로 하여금 건물과 설비의 신축 자금을 댈 수 있는 풍부한 이윤을 비축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193 이 모든 프로그램에는 돈이 들었다. 사회 복지 제도는 일반 시민과 정부의 관계를 바꿔놓았다. 정부가 그들에게 수당을 제공해서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에 사상 최초로 그들이 가진 소득의 상당 부분을 세금이라는 형태로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194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세율은 매우 높은 98퍼센트였다.
194 가장 먼저 미국이 행동에 나섰다. 1943년 노동자의 급여 봉투에서 세금을 원천 징수하라고 고용주들에게 요구한 것이다.
322 IMF의 대출에는 조건이 붙었다. IMF는 차관을 요망하는 나라에 1센트라도 넘겨주기 전에 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개발할 전문가팀을 파견했다.
323 IMF는 매우 정치적인 조직이었고, 차관을 희망하는 나라에 그들이 부과한 조건은 미국 및 유럽 관료의 시각을 반영했다. 관례상 총재는 유럽인이었다.
330 채무 위기 극복과 관련해 전형으로 여겨지는 나라가 딱 한 곳 있었다. 바로 한국이다.
330 그 저축이 더 이상 해외 차관을 들여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업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다. 한국은 재정 흑자 운영을 위해 공급 중시 사상과는 정반대로 세금을 인상했고, 지속적으로 경제 성과를 '미세 조정'하기 위해 세금과 정부 지출에 손을 댔다. 규제 해제, 민영화 및 해외 자본에 대한 개방은 정치적 의제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정부는 교육에 돈을 쏟아부었다. 한국은 새로운 통념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너무나 쟁쟁한 성과를 거둬 국가가 혹독한 군사 독재에서 시끌벅적한 선거민주주의로 전환되던 혼란의 와중에도 해외 부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347 이런 조치는 많은 사람을 더 잘살게 만들었다━잠시 동안 말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그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전후 사회 계약 체결에 참여하기엔 너무 어렸던 인구가 그 대가를 치르는 처지가 됐다. 많은 나라에서 이들은 도무지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철석같은 일자리의 안정을 제공하기 위해 과거에 고안했던 그 법률이 고용주로 하여금 해고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노동자를 선뜻 고용하길 꺼리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348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옹호하던 시장 지향 경제 정책도, 프랑수아 미테랑이 처음 착수한 것과 같은 국가통제주의적 개혁도 그런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입중됐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한때 전 세계인이 숨 막힐 듯 감탄하며 바라봤던 국가 주도의 어마어마한 투자 붐이 폭발적 경제 성장에 이어 생활 수준의 급속한 향상을 가져왔다―이번에도 잠시 동안이었다. 그러나 이들 경제국 역시 결국에는 궤도에서 이탈했고, 그들의 정치 지도자는 더 이상 기적을 일으킬 수 없었다.
349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이를 잘 표현했다. "20세기의 3분기는 경제 발전의 황금기였다. 그 시대는 모든 합리적 기대를 뛰어 넘었다. 그리고 우리가 머지 않아 그와 같은 시기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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