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L. 버거: 세속화냐? 탈세속화냐?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8. 28.
세속화냐? 탈세속화냐? - 피터 버거 지음, 김덕영.송재룡 옮김/대한기독교서회 |
머리말 ...5
옮긴이 머리말 ...7
1. 세상의 탈세속화: 개관 - 피터 버거 ...13
2.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의 로마 카톨릭 교회 - 조지 와이겔 ...37
3. 복음주의의 급증과 그 정치적 함의 - 데이비드 마틴 ...59
4. 현대 세계에서의 유대교와 정치 - 조나단 삭스 ...77
5. 유럽: 규칙을 입증하는 예외? - 그레이스 데이비 ...97
6. 의미의 추구: 중국 인민공하국에서의 종교 - 투 웨이밍 ...121
7. 국가정치와 국제관계에서의 정치적 이슬람교 - 압둘라히 안-나임 ...143
주 ...168
찾아보기 ...175
1. 세상의 탈세속화: 개관 - 피터 버거
15 '세속화론'이라는 용어는 1950-60년대의 학문적 작업들과 관련된 것이지만, 이론의 핵심 개념은 실제 계몽주의로까지 더듬어 올라갈 수 있다. 이는 아주 단순한 개념이다. 곧 근대화는 불가피하게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의식 차원 모두에서 종교의 쇠퇴를 낳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 핵심 개념은 오류로 드러났다. 물론 실제로 근대화가 특정 지역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어느 정도 더 세속화하는 결과를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세속화' 운동을 강력하게 자극하기도 했다 또 사회적 차원에서의 세속화가 반드시 개인의 의식 차원의 세속화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어떤 제도종교들은 사회적 권위와 영향력을 잃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구 종교 모두에서 해당 신앙과 의례가 개개인의 삶의 차원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때로 이들 종교는 새로운 제도적 형태를 취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종교적 열정의 강력한 폭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달리, 심지어 제도적으로 표명된 종교를 믿고 실천하는 신도가 거의 없을 때라도 제도종교는 사회적 및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적어도 종교와 모더니티 간의 관계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16 물론, 이론적으로는 모던적 관념과 가치를 거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부를 사람들의 일상속에 틀어박히게 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렇게 하려면 둘 중 하나의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는 종교 혁명 (religious revolution)이다. 이는 사회 전체를 떠맡아 모든 사람들에게 반모던적 종교를 의무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과 같은 현실세계에서는 실현되기가 아주 어렵다. (프랑코가 스페인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했으며, 이란 및 몇몇 회교 국가의 율법자들은 아직도 이에 열중하고 있다.) 이러한 혁명은 반드시 근대화와 관계를 갖게 되고 결국 아주 이질적인 사회를 낳게 되어, 문화 상호간의 의사소통에서 갑작스런 비약이 일어나게 된다 또 이들 두 요인은 다원주의를 선호하지, 종교적 독점주의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 모던적 관념과 가치를 거부하도록 하는 두 번째 방법은 '종교 하위문화집단'을 만들어 바깥 세상의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 혁명보다 어느 정도 가망성이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현실 세계에서는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현대 문화는 매우 강력한 침투력을 갖기 때문에, 빈틈없는 방어 체계를 구비한 고립된 (문화) 지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이 점은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의 아미쉬(암만) 교도(Amish)나, 아니면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지역에 있는 신비주의 유대교파(Hasidic rabbi) 를 참고해 보면 알게 된다.
세속화 이론은 제도종교에 의한 적응전략의 결과를 통해 볼 때에도 문제가 드러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고도로 세속화된 세상에서 살아왔다면, 제도종교들은 스스로가 세속성에 적응한 만큼만 살았을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점은 적응전략이 오랫동안 지지해 오던 경험적 가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은, 세속화된 사회의 요구에 스스로를 적응하려고 시도하지 않은 종교 공동체는 대부분 존속해 왔으며, 더 나아가 번성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세속화된 종교에 대한 실험은 거의 모두 실패했으며, 반동적 초자연주의적인 분위기(이는 자아 중심적인 종교 유형의 경계를 훨씬 넘어선다.)가 충만한 신앙과 의례를 수반한 종교운동들은 광범위하게 번성하고 있다.
20 세계의 종교 현황을 보면, 거의 어디에서나 상승 국면에 있는 종교운동은 대부분이 보수적이거나 정통파, 혹은 전통주의적이다. 이런 운동들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교리 현대화'라고 규정한 것을 거부했던 바로 그 종교운동들을 말한다. 반대로, 모더니티에 순응하려고 애쓰던 종교 운동과 제도들은 거의 어디에서나 쇠퇴 국면에 있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는데, 이는 소위 주류 신교도주의라고 불리는 종교들의 쇠퇴와 그와는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복음주의 종교에 의해 잘 예증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이는 신교도주의뿐만이 아니다. 요한 2세 통치하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보수주의파는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으며, 기존의 카톨릭 신지들을 개심시키는 커다란 결실을 이뤘다. 이러한 결실은 특히 비서방 국가들에서 나타났다. 구소련의 붕괴에 뒤이어, 러시아에서는 주목할 정도로 정교회가 부홍하였다. 이스라엘과 이국 땅에 사는 유대인 사이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는 유대교 집단들 또한 정통파이다. 이와 유사한 현황들은 여타의 주요 종교들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과 같은종교공동체에서도 보수주의 종교들이 급격히 증가해 왔으며, 이는 일본의 신토와 인도의 시크교와 같은 소규모 종교 공동체의 부흥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발전은 해당 국가의 사회 및 정치의 차원과 관련 해서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이들에게 하나같이 공통적인 것은 종교적 감화라는 요인이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현상들은 근대화와 세속화를 동류적 현상이라고 간주했던 모던적 개념이 갖는 심대한 오류를 드러내준다.
22 이슬람교의 급속한 증가는 그 선명한 정치적 색깔 때문에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단지 정치적 렌즈를 끼고 보려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이 현상은 단연코 종교적 헌신의 부홍이다. 그리고 이슬람교의 부흥은 지리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북아프리카에서부터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모든 이슬람교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사하라 사막이남 지역━이 지역은 종종 기독교와 정면적인 경쟁 상태에 있기도 하다━사람들을 계속해서 개종시키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싹트고 있는 이슬람교 공동체에서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미세한 정도이지만 북미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교 신앙뿐만 아니라 독특한 이슬람식의 생활방식의 부흥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슬람교의 부흥은 많은 점에서 직접적으로 모던적 관념들, 예컨대 종교와 국가의 관계라든지, 여성들의 역할, 또는 일상 행위의 도덕적 규준, 그리고 종교적 · 도덕적 관용의 경계 등과 관련된 근대 관념들에 모순되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부흥은 진보주의적 지성인들이 아직도 즐겨 주장하듯이 덜 근대화되거나 '후진' 지역의 국가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고도로 근대화된 도시에서도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의 경우 특히 서구식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집트와 터키의 경우 세속화된 전문 직업인들의 많은 딸들이 전통 베일과 이슬람식 정숙을 드러내는 복장들을 하고 있다.
26 탈세속화 테제에 대한 또다른 예외는 첫째보다는 명확하다. 세계에는 유럽식의 고등교육, 특히 이른바 세속화된 인문 · 사회과학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국제적 하위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이 하위문화는 진보적이고 계몽된 신념과 가치를 전달하는 주요 '전달자'이다. 이 문화집단의 구성원들은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지만, 그들이 특히 교육체계, 매스미디어 및 법체계의 상위기관과 같이 현실에 대한 '공식적' 견해를 제공하는 기관들을 지배(통제)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들 지식인들은 오랜 기간 존속해 왔기 때문에(물론, 특히 이슬람권 국기에서처럼, 이 하위문화집단에 대한 이반자들도 있지만), 오늘날 그 속성상 전세계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나는 이 굴에서 이런 식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세속화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는지를 고찰해 볼 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다. 단지 내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세계화된 엘리트 문화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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