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완 윌리엄스: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8. 28.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 로완 윌리엄스 지음, 민경찬.손승우 옮김/비아 |
캔터베리 대주교 서문
들어가며
01. 마르코 - 한밤중에 들리는 목소리
02. 마태오 - 추방당한 지혜
03. 루가 -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04. 요한 - 결단을 촉구하는 빛
05. 하느님의 밀정 -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교인
06. 말 없는 응답 - 예수와 심판관들
18 이 책의 의도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재판 이야기들과 관련한 역사비평적인 논의들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주제에 관련해서는 무수한 연구 문헌들이 나와 있습니다. 특히 지난 30년에 걸쳐서는 이 문제를 두고 학자들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분명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에 관한결론은 매우 다양해서, 한쪽 끝에서는 복음서 저자들이 로마와 유대 법정의 절차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고 이를 복음서에 반영했다고 자신감 있게 주장하는 한편, 다른 한쪽 끝에서는 복음서의 모든 구절에 의문을 제기하는 회의적인 모을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학자는 복음서가 예수의 재판 장면을 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 사회 지도층들의 책임을 (역사적 엄밀성을 가지고 판단하기보다) 무리하게 부각하는 이유는 로마 제국의 책임을 줄이려다 보니 생긴 결과라고 추정합니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예수가 로마 정부에 대항해 폭동을 선동하다가 처형되었다고 보고 복음서 때문에 본래 예수의 활동이 지닌 정치적인 요소들이 희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들로 인해 재판 이야기를 둘러싼 역사적 세부사항에 관한 논의는 더 복잡하고 방대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마르코, 마태오, 루가가 그 당시 유대 법정 절차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예수가 공식적으로 재판에 넘겨지고 선고를 받는 과정에서 유대 사회 지도층이 깊이 관여했다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다릅니다. 요한의 복음서에서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련된 지식을 갖고 있음을 자주 암시합니다 그가 대사제 공관에서 벌어진 공판을 그릴 때 예수에게 혐의를 부과하려고 허둥지둥 산만하게 이루어지는 심문 장면을 기술한 것은 좀 더 실제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신 예수가 성전 파괴를 기도한 혐의를 받았다고 언급하는 마르코, 마태오, 루가의 기록은 유대 대사제 집단 내부에서 저 문제를 두고 예수를 처벌할 방안을 꾀했다는 오랜 전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복음서가 기록한 예수와 빌라도 사이의 예사롭지 않은 대화가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날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저 대화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에만 골몰한다면 우리는 저 이야기의 핵심, 영감으로 기록된 이야기가 전하는, 예수와 우리가 나누어야 할 대화라는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사제들이 심문 과정에서 제기한 신성모독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예수가 뒤집어쓴 혐의, 그 정치적 함의의 핵심은 결국 그가 사회질서를 위협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은 바로 이런 경우에 내리는 법적처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처벌을 끌어내는 데는 오늘날 여러 탁월한 성서학자들이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주장하듯 성전과 관련된 혐의가 결정적이었습니다.
25 마르코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어떤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시간을 들여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연결점들을 살피고, 검토하고, 비교해보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마르코의 복음서는 다릅니다. 마르코는 숨 쉴 틈도 없이 계속 독자들을 몰아칩니다. 물론 마르코의 복음서도 시간을 들여서(어쩌면 평생)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연결점들을 살피고, 검토하고, 비교해보며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 문헌을 수세기에 걸쳐 그렇게 읽어 왔습니다. 그러나 첫인상이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지요. 마르코의 복음서는 긴박감으로 가득한 문헌입니다. 신약성서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라면 이 복음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그리스어 '유투스', 즉 '곧바로'라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치면 곧바로 뒤이어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르코의 복음서를 기준으로 예수의 활동 기간을 계산한다면 길어야 몇 주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59 마르코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영화처럼, 혹은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현대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낯선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침묵하고, 고요하게 멈추어 서 있는 한 인물입니다. 마르코의 복음서에 나오는 재판 장면은 바로 그가 자기 외에는 누구의 보장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떠한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세계가 멈춰서는 지점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63 마르코의 복음서에 나오는 법정 이야기에서 예수는 그전까지 이어오던 침묵과 비밀을 깨고 자신의 사명과 정체를 드러냅니다. 마르코와 달리 마태오가 그리는 예수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물론 마태오가 그리는 예수도 때로는 마르코의 복음서가 그랬듯 사람들을 치유해 준 다음 이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72 마르코의 복음서가 같은 장면에서 보여준 것처럼, 저 말들, 예수를 고발하며 사람들이 한 말들은 그 자체로는 진리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이 세계에서 사용되는 그 어떤 말도 예수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해주지 못합니다.
137 요한의 복음서는 내용 전체가 일종의 시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 전반에 걸쳐 적대자들은 예수에게 심문하듯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그러한 질문들을 불러일으키는 의혹과 불신을 폭로합니다. 그렇게, 예수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보이는, 자기를 기준으로 타자를 재단하려는 성향, 자신들의 기준과 생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경향을 거스르는 지점에 서서, 그들이 선 자리가 어디인지, 그들이 진정 누구인지를 새로이 규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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