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1)

 

2024.12.14 δ. 사통史通(1)

유지기, ⟪사통⟫(劉知幾, 史通)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shitong-0


오늘부터 중국 당나라 때 사관이었던 유지기劉知幾의 책인 《사통史通》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예전에 2012년에 오항년 교수가 번역해 놓은 이 책이 나왔을 때 바로 사서 한 번 읽고 언젠가는 한 번 꼼꼼하게 좀 더 다시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었던 터에 요즘에 보급판도 나오고 있고 했다. 중국은 철학이나 역사나 문학이 하나로 묶여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본격적인 의미의 역사가가 없는 건 아닌데, 어쨌든 이 책을 주석을 달아서 뭔가 설명하기에는 식견이 아주 많이 모자라고, 그냥 읽으면서, 서양의 역사철학을 전공한 처지지만 서양'사'를 전공한 건 아니다. 그리고 서양의 역사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 책도 읽어보고, 그러다 보니 중국의 역사철학이 뭐가 있나, 또 가끔 어깨 너머 들여다보면서, 예전에 학부에서나 또는 대학원에 다닐 때는 중국사상사를 반드시 수강을 해야만 했다. 갈조광의 《중국사상사》도 들여다보고 했던, 얕은 식견을 바탕으로 해서 중국사학통론에 해당하는 이 책을 한 번 제 생각을 덧붙여가면서, 그러니까 사통에 관해 오항년 교수가 번역도 하고 각주도 달아놓은 것을 읽어가면서 저의 생각을 덧붙여 보는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원래 2025년이 되면 시작을 해볼까 했는데, 2025년이든 2024년 12월이든 언제든 할 수 있을 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조금씩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오항년 교수가 사통을 번역하면서 앞에다가 「사통의 구조와 역사 비평」이라고 하는 해제를 적어둔 게 있다. 해제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그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시작을 한다. 전목이라는 중국인 역사학자, 이분은 역사학자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인 학자들은 역사학자인지 또는 문학가인지 또는 철학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전목 교수는 타이완 문화대학에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려대학교에서 중국철학을 강의하시던 김충렬 선생님께서 대만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학위까지 하고 그다음에 문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에서 오신 지 10년이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1981년 대학교 2학년 때 중국 고대 철학사, 그때는 중국 고대 철학사는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의 철학과를 다 다니면서 강의를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저도 중국 고대 철학사를 김충렬 선생한테 배웠었는데 그때 노트 필기해놓은 게 지금도 있다.  

오항년 교수가 전목 교수의 사통이라는 책에 대한 코멘트로 시작한다. 전목은 "『사통』은 중국 학술 관련 저작 가운데 이 사통은 매우 특수한 지위를 지닌다. 중국인들은 학문을 하면서 '통론' 종류의 책을 쓰는 경우가 매우 적은 것 같다. 예컨대 문학통론, 사학통론 같은 책 말이다. 중국인들은 실체적인 작업을 중시하므로 '통론'이나 '개론'을 쓰는 사람은 아주 적다. 『사통』은 중국의 사학통론에 해당하는 책으로, 아마도 중국 유일의 사학통론서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 얘기가 전목 선생의 《사학명저강의》의라는 책에 있다. 사실 중국 역사 책들에 대해서 공부를 하려면 전목 교수의 《사학명저강의》를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통론通論 같은 책을 쓰는 경우가 드물고", 통론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역사론이다. 역사론이 무엇인지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중국 사학통론서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전목 교수가 《사통史通》은 그런 것에 해당하는 것인데, 유지기에 대해서 평가하기를 "사서史書를 평론했고 역사를 평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 이렇게 역사 이론서는 있는데 유지기가 쓴 역사책은 없다. 역사를 이렇게 써야 한다 라고 말을 해놓고 정작 본인은 역사책을 안 쓴 것 같고 그래서 전목 교수는 좀 못마땅해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네 개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텍스트를 분류한다. 경사자집經史子集이라고 해서 경經은 유교 경전과 그것에 대한 주석서와 연구서이다. 그다음에 사史는 일반 역사책이나 전기나 정치 관련 문헌류, 정서류政書類라고 한다. 그다음에 子는 제자백가 관련된 책들이다. 그다음에 集은 시문집. 그러니까 이 안에는 모든 종류의 인문학,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 텍스트가 다 들어간다. 우리는 문사철文史哲로 나누는데 이들에게는 이제 경經이다. 그다음에 경론소經論疏라는 분류도 있다. 경經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논論이 있고 그다음에 소疏가 있는, 경론소經論疏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등급이고, 경사자집經史子集은 분야별로 나눠 놓은 것인데, 전목 교수에 따르면 역사적인 정황[사정史情]이 있고, 그다음에 그것에 배후에 있는 역사적 의미[사의史意], 일종의 의향意向을 밝혀내는 것이 역사적 의미이다. 사의史意를 발굴해내는 것,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야 사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통史通》이라는 책은 그런 사서와 역사 서술의 원칙에 관해서만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쓰는 법[사법史法]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진정으로 사학으로까지는 다가가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견식[사식史識]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사관에서 일을 했지만 직접 역사를 쓸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인데, 왜 그랬을까. 전목 교수는 이렇게 얘기를 한다. 유지이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만 읽었고 역사 그 자체는 주의하지 않았고, 배후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주의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서만을 좋아하고 경서를 읽지 않았다 라고 얘기를 한다. 그래서 학문의 근본적인 편견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경서라는 것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철학이겠다. 

오항년 교수는 「사통의 구조와 역사 비평」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한다. "전목은 유지기의 『사통』이 훌륭한 책이지만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史意)과 식견(史識)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역사가의 존재 이유로 전목이 인용했던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며, 일가의 견해를 이룬다(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라는 사마천의 『태자공자서』의 격조와 넓은 도량에 유지기가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항년 교수는 여기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철학적 지향을 배경에 깐 것으로 보이는 전목의 유지기 비판에 공감하지 않는다." 경서를 안 읽었다 라고 전목 교수가 비판하고 있는 지점이 이것이니까 그렇다. 이게 한 분야에 편중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제가 사통에 대해서 통달한 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전목 교수의 유지기 비판에 공감하는 쪽에 가깝다. 저는 역사철학적 지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렇다. 철학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라는 얘기겠다. 그런 점에서 저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태자공자서太史公自序』에 있는 사마천의 말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구천인지제究天人之際, 여기서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으로서의 하늘sky은 아니고, 그렇다고 지리적인 어떤 형세도 아니다. 여기서 천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를 가리키는 말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eidos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보편적인 원리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究, 궁리窮理하는 것이겠다. 우리가 플라톤의 이데아, 영원한 원리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그다음에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며"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변變이라고 하는 것도 그냥 변화라고 하기보다는 흐름, 예전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들을 다 집약해서 하고 있는 말로 생각된다. 그다음에 통通이라고 하는 것도 꿰뚫어 안다는 뜻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역사를 읽는 이유가 그런 거 아니겠는가. 폴리비오스의 《역사》를 읽는 이유도 폴리비오스는 포에니 전쟁 이후의 로마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것을 이렇게 중간을 질러가면서 로마 regime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그렇게 해서 성일가지언成一家之言, "일가의 견해를 이룬다." 여기서 언言이라고 하는 것도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통찰을 끄집어낸다. 그것이 역사가 해야 하는 일인가 라고 한다면, 사실은 오항녕 교수는 역사가니까 역사철학적 지향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건 좋지 않다. 그리고 이제 그 밑에 얘기를 해놓는다. "이 책이 비록 역사를 위주로 했지만, 여파가 미치는 데는 위로 왕도에 이르고 아래로는 인륜을 펴서 만물을 총괄하고 모든 존재를 포함할 것이다." 그러니까 유지기는 『자서』에서 나의 사통이라는 책이 "위로 왕도에 이르고 아래로는 인륜을 펴서 만물을 총괄하고 모든 존재를 포함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장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과연 과장이 아닌지 과장인지는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유지기의 말 "위로 왕도에 이르고 아래로는 인륜을 펴서 만물을 총괄하고 모든 존재를 포함할 것이다."라고 서문에 써놨는데, 그렇다면 비록 역사를 위주로 했지만, 이것 역시 역사철학 의도를 갖고 있다. 이 책이 역사 중심이지만 왕도도 얘기하고 있고, 인륜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고, 만물을 총괄하고 모든 존재를 포함한다 라고 얘기했으니까 이것은 철학적인 맥락까지도 펼쳐 보이겠다 라는 말이고, 그렇다면 유지기 또한 역사철학적 지향을 바탕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목 교수는 말로는 역사철학적 지향을 하고 있다고는 했는데 그것이 모자르다고 얘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저의 그 생각으로는 유지기는 "위로 왕도에 이르고 아래로는 인륜을 펴서 만물을 총괄하고 모든 존재를 포함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은 분명히 역사철학적인 의도를, 자기가 역사 쓰는 법에 대해서 썼지만 역사철학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전목 교수는 깊은 통찰과 식견에 이르지 못했다. 즉 역사철학적인 안목은 드러내 보이지 못했다 라고 말을 했으니까 유지기가 서문에다 쓴 것을 성취하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라고 코멘트를 하지 않았을까 한다. 과연 유지기가 그런 걸 성취를 못했는지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목 교수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하자.  

유지기의 《사통史通》은 2024년 말에 시작을 해서 언제까지는 모르겠는데 끝까지 한번 쭉 읽어볼 참이다. 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하나 잡고 그것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에는 오항녕 교수가 말하는 사통史通의 구조에 대해서, 들어가는 말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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