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실리오 피치노: 사랑에 관하여 ─ 플라톤의 <향연> 주해

 

사랑에 관하여 - 10점
마르실리오 피치노 지음, 조규홍 옮김/나남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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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권 조반니 카발칸티 해설(파이드로스의 연설) 25
두 번째 권 조반니 카발칸티 해설(파우사니아스의 연설) 41
세 번째 권 조반니 카발칸티 해설(에뤽시마코스의 연설) 75
네 번째 권 크리스토포로 란디노 해설
다섯 번째 권 카를로 마르수피니 해설(아가톤의 연설) 111
여섯 번째 권 토마소 벤치 해설(소크라테스의 연설) 151
일곱 번째 권 크리스토포로 마르수피니 해설

옮긴이 해제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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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멸할 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리고 종종 오랫동안 행하고 난 뒤에 비로소 그것들을 잘하게 됩니다. 자주 행하면 행할수록 그만큼 더 잘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연민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사랑에는 이러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사랑하지만, 그러나 거의 모두가 잘못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만큼 더 잘못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여 십만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제대로 사랑한다면, 이룰 일반적 풍속으로 여기면서 신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괴한 실수가 (우리에게 너무 애석한 일이지만) 발생되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여행의 목적지와 그 여정 중에 겪게 될 난관들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전에 무분별하게 먼저 그 힘든 사랑의 여행을 시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행이 계속되면 될수록 (오, 얼마나 가련한 재앙인가!) 그만큼 그 목적지로부터 멀어지는 커다란 피해를 입고 맙니다. 그래서 그런 여정을 걷는 사람의 숫자나 그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다른 여행의 경우보다 이 같은 어두운 숲속을 벗어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신의 섭리가 빚어내는 최고의 사랑은 일찍이 우리 안에서 실종된 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에 가장 순결한 한 여사제 디오티마(Diotima)를 보내셨습니다. 신에게서 파견된 그녀는 온갖 사랑에 취해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발견하고 그 뜨거운 열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최악의 상태에 떨어질 수 있으며, 또 〔반대로〕 어떤 경로를 통해서 최선의 상태에 오를 수 있는지 그에게 분명하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런 거룩한 (사랑의) 신비를 우리의 플라톤에게 밝혀주었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욱 경건했던 철학자 플라톤은 즉시 그리스인들을 치유할 목적으로 한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나도 라틴어를 아는 사람들을 치유할 방책으로 그리스어로 된 플라톤의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이로 인해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로렌조 대공으로부터 치하까지 받았지만, 이 책 가운데 주해하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로 그 신비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하늘로부터 디오티마에게 보내진 그 구원의 양식인 만나(Manna)가 많은 일반백성과 천민들에게까지 주어지길 원하였기에, 나는 플라톤의 신비에다 나의 주해를 덧붙여서 라틴어에서 토스카나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나는 먼저 이 책을 내게 가장 소중한 벗들인 베르나르도 델 네로와 안토니오 마넷띠에게 보냅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벗)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그대들에게 전달하는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이 분명하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이 책을 읽게 될 사람이 누구든 간에 나태함과 증오심을 가지고 읽을 경우 결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작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이 나태함이나 증오심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성실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디오티마가 신의 사랑을 알아보도록 섭리하신 거룩한 영께서 우리의 정신에도 빛을 비추시고 우리의 의지를 불타오르게 하시어, 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아름다운 작품들 안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또 그분 안에서 모든 작품들을 사랑함으로써 항구히 그분의 끝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시길 빕니다. 

177 모든 사랑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관조적 인간의 사랑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정신으로 올라갑니다. 〔반면〕 욕정적 인간의 사랑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손으로 만지는(=관능적인) 것으로 추락합니다. 활동적 인간의 사랑은 바라보는 것에만 가만히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이 활동적 인간의 사랑은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욕정적 인간보다는 훨씬 더 많이 고상한 정령을 향해 자신을 지켜내겠지만, 맨 밀바닥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사랑은 고상한 정신을 바라보는 활동적 인간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빗나가버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활동적 인간의 사랑은 앞선 두 사랑(관조적 인간의 사랑과 욕정적 인간의 사랑) 사이에 같은 거리로 떨어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들 세 가지 사랑을 우리는 세 가지 이름으로 구별하여 부릅니다. 곧 관조적 인간의 사랑은 '신적 사랑'으로 활동적 인간의 사랑은 '인간적 사랑'으로, 그리고 욕정적 인간의 사랑은 '동물적 사랑'으로 표지합니다. 

199 디오티마에 의해서도 사랑은 "지혜와 무지 사이 중간"에 위치합니다. 과연 사랑은 아름다운 것들을 뒤쫓습니다.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지혜(sapientia) 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지혜를 추구합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자는 〔아직〕 그것을 전적으로 소유하지 못한 셈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현재 지닌 것을 굳이 또 찾아 나서겠습니까? 사랑은 그렇지만 결코 전직으로 결핍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적어도 한 가지 그의 무지를 인식할 정도의 지혜로움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무지만큼 사실 자체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그가 지식을 갖춘 자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만큼, 결코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사랑은 한편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다른 한편 〔무지를 아는 만큼 은〕 지혜롭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점에서 지혜와 무지 그 중간에 위치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디오티마가 말한 사랑의 속성입니다. 한편 "아름다움 자체의" 본성, 곧 최고 아름다움의 본성은 "섬세함과 완전함, 그리고 복됨"으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섬세한" 것은 모든 것들의 욕구를 자신에게 끌어 들일 만큼 그의 달콤함 때문에 그러하며, "완전한" 것은 자신에게 끌어당긴 그 모든 것을 그의 빛으로 조명하여 완전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하며, 〔끝으로〕 "복된" 것은 〔그렇듯〕 조명받은 것들을 영원한 선(善)으로 채워주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200 한편 디오티마는 사랑의 기원과 그의 속성 자체가 무엇인지 설명한 다음 이제 사랑이 어디로 데려가고 또 그것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롭게 하는지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어떤 것을 가지려고 욕구하는데, 그것은 단지 〔한번쯤〕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지니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멸하는 것들의 개별적인 선한 것은 변하고 또 사라져버립니다. 사라져버리는 것의 자리에 새로운 것이 매일같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은 재빨리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항상 우리 곁에 두기 위해서 우리는 소멸되는 것을 재생(재창조)하는 데에 정열을 쏟아야 합니다. 재창조는 낳음(generatio)으로 이루어 집니다. 이로써 세상 만물에는 낳음의 본능이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낳음은 사멸할 것들이 살아가는 동안 신적 생명과의 닮음을 재현하는 것이요, 확실히 신적 선물입니다. 

228 그러므로 그대는 〔온갖〕 도덕들의 이런 한 가지 진리이자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빛을 가장 먼저 좋아하십시오! 그리고 그대가 만일 이것(=영혼의 아름다움)을 가장 훌륭한 도덕들을 통해 교육받은 자에게 적용하고(=인정하고) 나아가 도덕적 삶이 제공하는 가장 올바른 규범이 그런 것(=도덕)들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고려하게 된다면, 그런 도덕들 너머의 지혜와 학문과 지식이라는 가장 밝은 진리를 향해 직접 올라가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는 점도 깨닫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대가 〔손수〕 지혜와 학문과 지식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들을 꼼꼼하게 살필지라도, 그 모든 것들 안에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두고 유사하게 '아름답다'고 일컫게끔 하는 진리의 유일한 빛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그대에게 이(=빛)를 영혼의 고상한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극진히 사랑할 것을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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