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욱희, 권헌익: 글로벌 냉전과 동아시아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12. 9.
글로벌 냉전과 동아시아 - 신욱희.권헌익 엮음/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머리말
제1장 몰락에서 평화로: 전후 유럽 냉전사(1945-75) _ 이동기
제2장 냉전과 열전의 지역적 기원: 유럽과 동아시아 냉전의 비교역사사회학 _ 김학재
제3장 동북아 냉전체제의 형성: 사건과 주체성 _ 신욱희
제4장 냉전의 개념사적 이해: 베트남의 두 전쟁을 중심으로 _ 권헌익
제5장 중동 냉전과 초국가 정체성의 정치적 영향력 _ 김강석
제6장 라틴아메리카의 ‘열띤 냉전’과 대외의존의 심화(1945-75) _ 박구병
제7장 탈식민화와 냉전의 지리학: 탈식민 세계 재배치하기 _ 크리스토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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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42 제2차 세계대전이 이렇게 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에 마찬가지로 엄청난 물적·인적 피해를 남겼지만, 전후 두 지역에서 가장 우선시되고 중요하게 여겨진 문제는 서로 달랐다. 먼저 유럽에서는 가공할 피해를 남긴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고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당면 문제였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에 처해있던 동아시아에서는 전후 처리나 평화보다는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것이 유럽과 동아시아 냉전에서 사전 조건의 첫 번째 차이점이자 가장 기초적인 차이점이다. 즉 유럽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국민국가들이 형성되어 있었고, 냉전을 주도한 미국이나 소련이 신생 강대국으로 여겨졌다면, 아시아의 대다수 국가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경험으로 독립된 국민국가 건설이 지연되어 있었던 것이다.
43 유럽에서는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군사시설과 경제력을 무력화시키고 탈나치화·탈군사화·민주화하는 것이 연합군 측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를 위해 카사블랑카 회의, 테헤란 회의, 모스크바 회담, 얄타 회담에 이르기까지 열강들의 중요 회담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독일은 4개국의 분할 점령으로 분단되었다. 유럽에서 독일과의 전쟁은 주로 소련이 주도함에 따라 전후처리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매우 컸고, 여러 번의 전쟁 피해를 입은 프랑스도 깊이 개입했으며, 무엇보다 독일을 분할하자는 의견은 영국이 먼저 제시했다. 미국을 포함해 독일의 전후처리에 관여한 모든 국가들은 독일의 분할에 찬성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전후처리는 곧 일본 문제였다. 그런데 독일 문제는 영국, 프랑스, 소련이 함께 관여한 데 반해, 일본 문제는 일본과 주로 교전했던 미국이 단독으로 처리했다. 일본 문제 처리에는 중국, 한국, 대만, 소련이 거의 관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탈식민화가 되자마자 내전이 재개된 중국 문제, 소련과 분할 점령을 하며 독일보다도 먼저 분단국가가 수립된 한국 문제 등 추가적인 갈등 사안이 존재했다.
44 유럽에서는 냉전이 시작되며 초강대국의 압도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유럽연합 구축이 시도되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초강대국의 직접적인 개입과 영향 하에서 냉전 이념을 정당성의 자원으로 삼은 적대적 국가들이 수립되어, 미국과 소련 사 이의 '제3 세력'으로서의아시아 개념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지역 자체의 행위성에 주목할 때 이 점은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46 먼저 규명해야 할 것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냉전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냉전의 균열구조가 제도화되는 결정적 국면까지의 기간이다. 우선 유럽 냉전은 트루먼 독트린을 계기로 1947년 가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아시아의 냉전이 1949년 후반까지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즉 1949년까지는 트루먼 정부가 유럽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감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을 본다면 일본 중심적인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한반도는 이미 1945년 가을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각각 분할 점령되었으며, 남북한의 분단 정부는 동서독이 수립되기 1년 전인 1948년 가을에 수립되었고, 한국전쟁 이전에도 38선 일대에서 수많은 군사적 분쟁이 발생하고 있었다. 즉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유럽과 마찬가지로 늦어도 1947년 즈음에 냉전 갈등이 본격화되었으며, 이후 냉전 갈등의 양상은 오히려 유럽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47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 동서독은 1947년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냉전구도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본격화된 첫 번째 계기는 1948년 6월 서방연합국이 점령 지역에서 화폐개혁을 진행하자 소련에 의해 단행된 베를린 봉쇄였다. 베를린 봉쇄 위기로 동서 갈등이 본격화되자 동서독은 각각 분단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 갔다. 1948년 7월 서독이 헌법을 제정하기 시작했고, 1949년 5월 23일 기본법을 공포했다. 서독에서는 1949년 8월 14일 총선을 치르고 독일연방공화국이 출범했다. 동독은 1948년 10월에 헌법을 만들었고, 1949년 10월 7일 헌법이 발효되면서 독일민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48 유럽에서는 동서독의 주권을 통제하며 다자주의적 안보기구로 편입시키는 과정이 수년간 진행되었지만, 동아시아의 탈식민 국가들은 바로 주권을 회복하며 자체 군대와 방위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이 과정에서 어떤 형태의 다자주의적 안보기구와도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 예컨대 남북한 정부 수립 이후 미국은 1948 년 9월부터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시작했고, 소련도 비슷한 시기에 북한에서 소련군을 철수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대륙에서는 일본 패망 이후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내전이 재개되었고, 1948년 11월 만주에서 공산당이 전세를 역전한 이후 1949년에는 베이징, 난징, 상하이를 차지하며 결국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그해 12월 장제스는 대만으로 후퇴했다.
49 한국전쟁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글로벌한 차원에서 냉전의 군사화와 군비 경쟁 제도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예컨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독 재무장 정책에 대한 여론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서독의 재무장을 지지했던 미국과 유럽 내 세력들은 한국전쟁을 목격하고, 동독이 서독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더 공세적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즉 한국전쟁은 미국의 서유럽 정책에서 독일의 재무장 문제를 핵심 문제로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58 사실 1960년대 냉전사에서 유럽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에게는 베트남전쟁과 아프리카의 수많은 탈식민 전쟁들, 끝없는 중동의 분쟁들, 그리고 중소 분쟁 이후 소련으로부터 독립된 주체로 국제 무대에 등장한 중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이 시기 동아시아 냉전 위기를 이해하는 데 중소 갈등 문제는 특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직접 대립보다는 중국이라는 지역 강대국과 미국의 권력 경쟁이 냉전 전개에 가장 큰 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 냉전의 관점과 사회주의 내부의 균열을 주목할 때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큰 위기는 1962-69년의 중소 분쟁, 1964년의 중국 핵 개발, 그리고 1965-72년의 베트남전쟁이다.
63 베트남전쟁은 이처럼 미중 화해와 미소 화해를 촉발하고, 미국 내에서는 반전운동이, 유럽에서는 서독이 주도하는 데탕트가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베트남전쟁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아닌 중국이 주도하는 다양한 국가 간 관계가 형성되었다. 중미 화해는 중일 수교로도 이어졌다. 한국전쟁이 동아시아 냉전 질서를 초기 제도화하는 결정적 계기였다면, 베트남전쟁은 세계적 차원에서 탈냉전과 화해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권력과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베트남전쟁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에 미국에 의해 형성된 배제적인 불인정 정책을 넘어섰고, 국제 무대와 유엔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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