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무로 신이치: 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키메라 - 10점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책과함께

옮긴이의 말

서장: 만주국에 대한 시선
제1장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
제2장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가 될지니
제3장 세계정치의 모범이 되려 함
제4장 경방의 장책은 항상 일본제국과 협력동심
종장: 키메라, 그 실상과 허상

후기
보론: 만주와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증보판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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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일찍이 만주국이라는국가가 있었다. 
1932년 3월 1일 중국 동북지방에 홀연히 나타나, 1945년 8월 18일 황제 푸이의 퇴위 선언과 함께 졸연히 모습을 감춘 국가, 만주국.  


그 생명은 겨우 13년 5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기서 살았던 일본인에게는 오히려 국가의 종언이야말로 진정한 만주국 체험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련군의 침공, 본국 귀환, 혹은 시베리아 억류 ─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처참한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개개인은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던가, 그 자신은 만주국에 어떻게 관계해 왔던가 하는 물음을 되물으며 다양한 만주국상을 그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만주국의 다종다양한 형상의 편린들은 수많은 수기와 회상록 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지금도 우리들은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겨우 13년반이라는 만주국의 존속기간 보다 몇 배가 긴 세월이 지난 지금, 이미 국민 대다수에게 만주국은 언젠가 들어본 적은 있어도 이미지를 떠올릴 어떤 방법도 없는 역사적 명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반세기에 이르는 시간은 많은 일들을 체험에서 기억에서 역사로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것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신산스러운 체험조차 향수로 순화되고, 눈 뜨고 볼 수조차 없을 정도의 죄업조차 백일몽처럼 잊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일본에 사는 일본인이 아무리 만주국을 추억 속에 가두고 망각의 심연에 빠뜨리려 해도, 또한 무지가 상식이 되더라도, 만주국이 남긴 상흔은, 때로는 중국 '잔류' 고아 문제로, 그리고 때로는 잔류 부인 문제로 그 땅에서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또한 만주국이 소멸 되었어도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들에게 만주국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그들을 아프게 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 일본은 거의 반세기에 걸쳐 중국 · 러시아(소련)와 쟁탈전을벌였던 만주를 정복했다. 수많은 국가가 승인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괴뢰국가였고, 2차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궤멸되었다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독립 국가 형식을 취하면서도 그 정부가 자국민의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국의 의사에 따라 통치를 행하는 것을 괴뢰국가라고 한다면 (누가 누구를 어떻게 조종하여 통치했는가 하는 실태는 접어두고), 만주국이 괴뢰국가이고, 국가형태를 취한 식민지지배의 통치 양식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경작하던 토지와 허리띠를 졸라가며 모은 재산을 가차없이 빼앗겨 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그 국가의 이념이 아무리 아름답고 고매한 언어로 치장되어 있더라도 자기의 생명과 생활을 위협한다는 그 한가지 사실 때문에 국가로서의 정당성 따위는 도저히 승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만주국에 관한 한, 그것은 결코 단순한 괴뢰국가, 식민지국가가 아니라,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를 배제하고 아시아에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의 장이었다. 만주국 건설은 일종의 유토피아 실현의 시도였다는 시각이 1945년 이후에도 견고하게 존재해 왔다는 것도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25 특히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일본 제국이 위압적으로 개인 앞에 군림하고, 사람들이 폐색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던 쇼와 초기, 당시 일본인들에게 건국과 나라 만들기라는 말에는 일종의 해방감을 주고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힘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을 "만주로 이끌어 온 것은 결코 이욕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었다. 새로운 천지를 열고,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참가하는 순수한 마음이었다"라는 증언도 허위의식으로서 완전히 부정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주관적 심정에서는 진정으로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무사 · 무상의 주관적 선의가 반드시 결과적으로도 선행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선을 행하려 하면서도 악을 행하는 것 역시 정치 세계에서 피하기 어려운 숙업이다. 또한 결과 책임이 문제가 되는 정치 세계에서는 그 행위가 아무리 지고지순한 정열에서 나왔다고 해도 그 때문에 져야 할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이상이 상대방에게는 참기 힘든 위선이자 압박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는 아무리 이욕과 명예를 떠난 이상의 추구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행해진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는 침략과 억압으로 간주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과연 어떠한 의미에서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가, 식민지국가였던가. 아니면 그런 시각 자체가 승전국의 독단적 견해와 그에 영합한 '포츠담선언사관' 또는 '도쿄재판사관'에 의한 곡해에 불과하고, 다민족 공존의 도덕국가 건설이야말로 만주국의 역사적 진상이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가가와 도요히코가 말했던 것처럼 "일본이 행한 침략가운데 만주국만은 낭만이 있습니다"라고 해야할 것인가. 

그에 대한 평가를 서두르기 전에 우리는 우선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하는 건국 이유로 되돌아 그 궤적을 따라가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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