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규: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52가지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11. 25.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52가지 - 최은규 지음/소울메이트 |
지은이의 말 _ 한 권으로 엮어낸 클래식 입문서
1장 악기와 오케스트라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2장 알면 더 즐길 수 있다, 클래식 용어 풀어보기
3장 세상을 뒤흔든 작곡가와 명곡 이야기
4장 감상의 묘미를 더하는 클래식 에세이
5장 신화의 세계를 담아낸 클래식 이야기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52가지』 저자와의 인터뷰
350 16세기 말의 음악,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16세기 말에는 음악에 있어서 세기말적인 혼란스러운 현상이 일어났다기보다는 이전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구분해주는 전환적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흔히 '바로크'라고 불리는 새로운 음악 양식이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크라는 말은 '불규칙한 형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비정상적이고 괴이하다는 등의 헐뜯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예술이 실제로 괴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17세기의 새로운 예술 경향에 반감을 가졌던 비평가들이 이를 조롱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16세기 말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 틴토레토나 이를 계승한 엘 그레코는 바로크의 특징을 보여주는 혁신적인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당시의 베네치아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단순한 형태와 색채에 불만을 느끼고 긴장감과 극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새로운 화법을 보여준다. 틴토레토의 그림 속에서 성경 속의 인물들은 더이상 성스럽고 고귀하게 미소짓고 있지 않다. 얼핏 보기에 혼란스럽고 번잡한 그의 그림은 질서 있게 배열된 인물상 대신 무시무시할 정도로 생생하고 실감나게 인물들을 표현한다.
회화에서의 이러한 경향은 음악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16세기 말의 중요한 양식 중 하나였던 마드리갈이다. 16세기 초 이태리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던 마드리갈은 16세기 말에 이르러 마렌치오, 제수알도, 그리고 몬테베르디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되는데, 그들의 마드리갈은 음악이 가사를 생생하고 실감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예술적 경향을 드러낸다. 가사의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작곡가들은 더욱 모험스럽고 반음계적인 화성을 사용한다. 특히 '음악가인 동시에 살인자'로 알려진 제수알도의 마드리갈은 바그너를 연상시키는 반음계주의의 극단을 보여준다.
마드리갈을 통해 생생하고 탄력 있는 음악 어법이 성장했다는 점은 17세기 바로크 음악을 향한 16세기 말의 중요한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마드리갈의 발전은 음악적 관심이 점차 세속음악으로 향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종교개혁 이후 신교 교회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중요한 교회음악이 작곡되고, 새롭게 개혁을 거친 로마 가톨릭 교회음악은 라쏘와 팔레스트리나 등에 의해 쓰여졌으나 이 시기의 주요 흐름은 세속음악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352 18세기 말의 음악,
자아를 음악으로 표출하다
18세기 말은 프랑스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특권층에 의해 지배되던 구체제가 파괴되고,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 의해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근대적 사회로의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혁명기의 음악은 그 내용에 있어서 그렇게 '혁명적'이지는 않았다. 혁명기의 음악은 이전의 음악사적 전통 속에 준비되어 왔고, 이제까지 사용되던 음악적 관습이나 구체적인 음악언어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국민 계몽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 대부분의 노래들은 단조로운 선율과 리듬을 반복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는 진부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대부분의 음악사학자들은 프랑스 혁명기의 음악 전체를 너무 단순하게 군대음악으로 분류해버리기도 한다. 혁명음악은 단지 노래나 찬가 둥의 행사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케루비니나 그레트리 등의 수준 높은 오페라와 고섹과 메율 등의 다양한 기악곡들도 포함하기 때문에 혁명기의 음악을 단순하고 진부한 군대음악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음악양식에 있어서 혁명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혁명기 음악에서의 혁명적 특성은 오히려 사회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혁명으로 인해 이제까지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사회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즉 군주와 귀족이 몰락하게 되면서 이들에게 종속되었던 음악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전개하게 되고, 이전까지는 귀족들에 의해 독점되던 음악회장도 일반 시민들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직업 음악가들이 등장하게 되고, 대규모 청중을 위해 새로운 음악형식과 새로운 음악언어를 사용한 '쉬운' 음악이 작곡된다. 고전주의의 밝고 명쾌한 규칙성은 당시 요구되었던 음악적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자유로운 직업 음악가들의 출현은 음악의 주관적 표현 원리를 부추기게 되면서 낭만주의로 향하고 있었다. 18세기말 중산계층의 대규모 청중이 늘어나고, 개인적 후원자가 사라지게 되면서 직업 음악가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대규모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청중을 만족시키는 대중적 음악가들은 쓸모없고 가벼운 음악을 대량생산했던 반면, 양심적인 예술기들은 그런 저질성을 경멸하고 스스로에게 음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인류에게 제시하는 임무를 받았다는 우쭐한 작곡가 개념에 빠져들었다.
355 19세기 말의 음악,
벨 에포크와 조성의 해체
문예사적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벨 에포크', 즉 '아름다운 시대'라 불린다. 이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풍요로워진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특징적인 문예의 시대를 가리키며, 환희에 들뜬 인생의 다양한 느낌을 표현한 춤, 그림, 의상, 조각, 건축, 시, 연극 등이 어우러진 시대를 말한다. 주로 프랑스 파리가 중심 무대였으나 영국의 런던, 독일의 베를린과 뮌헨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벨 에포크의 문예사조가 다른 시대의 그것과 구분되는 점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과잉상태에 이르게 된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에 있다. 이 시기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문화가 그 화려한 꽃을 피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그 자체에 내재된 모순들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던 시대였다.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물질문명의 팽배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구체제의 반동적인 정치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수많은 사상들이 난립해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예술가들은 세계관의 변혁에 따른 정신적 불안감을 느끼고 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그 중 가장 주도적인 흐름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 속에 나타난 자본주의에 대한 도피, 그리고 허무와 죽음의 이미지다. 버나드 쇼는 바그너의 〈지그프리트〉가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을 알레고리화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바그너의 손자인 빌란트 바그너 역시 "인간으로서의 바그너는 어떠한 부르주아적 삶의 양식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은 극단적으로 마술적이며 에로틱한 음악으로 형상화되었으며 1900년경의 새로운 시대정신, 즉 반유태주의, 성적 악마주의, 비합리주의로 드러난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몇몇 주요 작품들과 아돌프 아피아의 무대 장치, 보들레르의 시상, 호프만슈탈과 슈테판 게오르게의 문학은 바로 이러한 세기말적 퇴폐성과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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