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11. 18.
교회란 무엇인가 - 한스 큉 지음, 이홍근 옮김/분도출판사 |
우리말 판에 부쳐
머리말
변하는 교회
교회를 믿을 것인가?
교회의 근원
교회와 하느님 나라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단일성
보편성 · 성성 · 사도성
교회 내의 봉사
세계 속의 교회
21 2세기의 호교론자들은 유스티누스의 몇 구절을 제외하면 "에클레시아ekklesia"라는 말을 전혀 사용한 일이 없으나─그들의 호교론은 교회가 아니라 유일신과 그리스도를 옹호하기 위한것이었다─. 그후의 교부들에게는 교회가 신학 연구와 신 · 구약 성서 주석의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 처음 거기 동안의 교회성은 적대적인 이교도 국가와 교회와의─온갖 박해 속에서 성취와 좌절을 동시에 맛보던─대립관계로 나타난 반면에, 그후의 교회관은 승리의 열매를 맺은 국교적 교회와 그리스도교적 제국과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규정되었다.
23 3세기 알렉산드리아신학, 특히 오리게네스는 신자들의 "일반사제직"을 강조했다. 평신자와 성직자의 구별보다는 사려 없는 불완전한 신자와 지각(gnosis, 영지) 있는 완전한 신자의 구별을 중요시했고 교회 박사들이야말로 교회 내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했다(여기서는 교회의 직무란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직무였다). 한편 같은 시대의 아프리카와 특히 로마의 신학에서는 직무 관념과 그 법적 성격을 강조했다. 일반 사제직과 교회 내의 카리스마적 요소를 등한시했으며 교회의 최고 권위를 주교들에게 돌렸다.
24 직무 신학은 또다시, 교회일치를 보존하는 기능이 일차적으로 주교직에 있다고 보느냐 아니면 로마 주교에게 있다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전자의 견해로는 인간 베드로는 교회일치의 상징이고 그의 후계자들은 일종의 명예직으로서의 수반 자격이 있을 뿐이며(키프리아누스등, 특히 동방신학자들), 후자에 있어서는 베드로 자신이 바로 교회일치의 수임자로 통하며 그 후임자들에게는 법적 수위권이 인정되고 있다.
31 교회론은 그 근원인 "교회의 근원"에서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한다. 이 근원은 단순히 역사적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철학적으로 성립 또는 해석되는 초월적인─교회사의 방향을 좌우하는─"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전혀 구체적으로 "주어진" 것이요 "제정된" 것이며 "맡겨진" 것이다. 교회가 이해하는 신앙에 따라, 역사 안에 활동하는 하느님 자신의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안에, 인간을 위해, 결국 인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활동에 의해 결정된 이 교회의 근원은 단순히 역사의 첫 순간 또는 첫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든 순간의 온 역사를 규정한다. 교회의 본질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현실 교회는 그 근원을 등한시하거나 거기서 완전히 멀어질 수 없다. 이 근원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과 모든 변화와 모든 일시적 우연성 속에 항상 참되고 계속 타당한 것이 주어진다. 교회의 본질은 주어져 있을 뿐 아니라 맡겨져 있다.
131 애초에 "가톨릭 교회"라는 말은 논쟁적 의미 없이 주교(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와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푸스)의 지방교회와 구별되는 온 교회, 전체교회를 뜻했다. "가톨릭"이라는 말의 본래 용법은 신약성서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에클레시아는 언제나 어디서나 원칙적으로 지방 공동체, 지방교회다. 그러나 이 지방교회들은 어디까지나 포괄적 · 일반적인 온 교회, 즉 전체교회의 발현 · 표현 · 실현으로서의 지방교회다. 물론 각 지방교회도 온전히 교회이지만 그것이 온 교회는 아니다. 온 교회는 어디까지나 모든 지방교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외적으로 집합 ·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하느님 · 주님 · 성령 안에서 같은복음, 같은 세례와 성찬, 같은 신앙에 의하여 내적으로 일치된다. 전체교회는 지방교회들 안에 발현 · 표현 · 실현되는 교회다. 이렇게 교회가 전체교회로서의 온 교회일 때, 본래 의미로 "가톨릭" 교회라고 불릴 수 있다. 본래 의미의 가톨릭 교회는 일반적 · 포괄적인 온 교회다. 가톨릭성(보편성)의 근본은 전체성에 있다.
132 단순히 공간적 외연만으로 교회가 가톨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성은 일차적으로 지리학적 개념이 아니다! 교회가 아무리 온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한들 그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인가. 순전히 세속적인 정책수단으로, 더구나 하나의 정신적 제국주의 수법으로 당당한 국제적 세력을 얻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런 세계 교회가온 가톨릭 교회를 실현하는가.
151 사도 전래의, 사도 계승의 교회다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도직은 전체적으로 일회적이며 반복 불가능하다. 직접 부활한 주님을 목격했고 직접 주님의 사자로서의 임무를 받은, 원시교회의 일원인 그들을 후계자가 대신 또는 대리할 수는 없다. 사도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을 직접 만났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어떤 모양으로든 주님을 죽었다가 살아난분으로 체험했다. 부활한 주님의 직접 목격은, 그것이 후대의 교회에서는 계속적인 그리스도의 발현에 의하여 거듭 확인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증언 전승에 의해서 거듭 선포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일회적인 사건이다.
207 교회가 볼 때 세계는 근본적으로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덧없고 허무한 동시에, 창조주에 의하여 좋은 본성이 보존되어 있고 종말의 약속이 주어져 있는 세계다. 죄악과 죽음의 지배가 인간을 속박하려는 공간인 동시에, 항상 하느님이 좋게 만드시고 결코 버리거나 배척하시지 않는 세상이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해되고 구원된 피조물이며, 인간들이 전력을 다하여 뜻있게 건설해 나가야 하는 생활 영역이다.
208 처음 3세기 동안의 교회는 세상 참여를 사회적으로 실현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박해시대에는 계속해서 모든 세속 영역과의 거리를 지켰고, 일부에서는 세상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콘스탄티누스의 전환"은 문화적 · 정치적 사회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세상을 향한 전환을 뜻했다. 그 결과는─이미 여러 곳에서 자주 언급한 바 있는─세속 세계의 신성화였다. 오늘날 교회 내에 아직도 세상의 세속화를 개탄하고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그들은 근대의 세속화 과정이란 근본적으로 저 중세 전성기에 절정에 이르러 변증법적 방향전환을 겪은 신성화 과정의 결과에 불과함을 간과하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교회는 널리 세속화된 사회에, 속세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세속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충동과 인식과 형태를 성장· 발전 · 변형시켜 온 세상이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드류 세이어: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5) | 2024.11.18 |
---|---|
칼 만하임: 재건시대의 인간과 사회 (0) | 2024.11.18 |
사카이 데쓰야: 근대일본의 국제질서론 (0) | 2024.11.11 |
테리 이글턴: 더 리얼 씽 ─ 문학 형식에 대한 성찰 (0) | 2024.11.11 |
블라디미르 로스키: 동방교회의 신비신학 (0) | 2024.11.11 |
메리 비어드: 로마 황제는 어떻게 살았는가 (0) | 2024.11.04 |
존 베일리스 외: 세계정치론 (0) | 2024.11.04 |
루시아 임펠루소: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0) | 2024.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