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데쓰야: 근대일본의 국제질서론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11. 11.
근대일본의 국제질서론 - 사카이 데쓰야 지음, 장인성 옮김/연암서가 |
한국어판 서문
서장 국제 질서론과 근대 일본 연구
제1장 전후 외교론의 형성-'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계보학적 고찰
제2장 고전 외교론자와 전간기 국제 질서: 시노부 준페이의 경우
제3장 ‘동아 협동체론’에서 ‘근대화론’으로:
제4장 무정부주의적 상상력과 국제 질서: 다치바나 시라키의 경우
제5장 ‘제국 질서’와 ‘국제 질서’: 식민 정책학에서의 매개의 논리
종장 일본 외교사의 ‘낡음’과 ‘새로움’-오카 요시타케 「국민적 독립과 국가 이성」 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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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930년대 일본의 국제질서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패권주의적인 지역주의론'이란 성격을 지닌다. 여기에는 일본을 맹주로 상정한 관계가 전제된다는 점에서 말그대로 패권주의적 성격이 있지만, 동시에 내셔널리즘과 국가 주권의 절대성을 넘어선 원리로서 지역주의적 레토릭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의적인 레토릭은 흔히 무정부주의적인 사회 연대론과 지역주의적인 복지정책의 논리로 정당화되곤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1930년대 일본의 국계질서론은 근대 일본의 '조숙한 트랜스내셔널리즘'이 자유주의 적인 국제주의로 '성숙'하기 전에 제국질서로 희수된 사례라 하겠다. 그렇지만 전중기 일본에서도 전후 국제질서론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던 점 역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 종주국은 퇴장하였고 이에 따라 동남아의 탈식민지화 쟁점이 부상하였다. 해군과 대동아성은 '아시아해방'이란 명분과는 정반대로 일본의 주도국 지위를 고집했고 동남아국가들에게 독립을 부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반면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을 중심으로 한 외무성은 형식적으로는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대등한 국가관계를 설정하고 보편적 이념을 내세운 지역 평화 기구를 설립함으로써 아시아외교의 주도권을 되찾고자 했다. 이러한 정부내 정치는 이론적으로는 광역질서론에서 국가 평등 개념의 위상을 둘러싼 논쟁으로 나타났다.
45 만주사변의 발발은 요시노가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기초로 삼았던 보편주의 국재정치관에 대한 도전이었다. 만주사변과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는 보편적 국제 기구에 기초한 안전 보장 체제의 결함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현지 주둔 일본군의 행동을 자위권 행사로 정당화했고 부전조약 적용을 회피하는 법적 접근을 취함으로써 현행 국제법 질서와의 조정을 꾀했지만, 이는 사태를 호도하는 시도에 불과했다. 요시노와 더불어 만주사변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소수의 지식인들 가운데 한사람이 한스 켈젠의 영향을 받아 규범주의 국제법학을 전개한 요코타 기사부로였다는 사실은 만주사변이 기존 국제법 질서에 미친 충격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82 인본이 제창한 대동아 공영권은 어떠한 법칙 구성으로 되어 있었을까. 대동아 공영권의 법적 구성에서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근대 국제법의 근본원리인 국가 평등 관념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근대 국제법에서 주권국가는 적어도 법적 주체로서는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보며, 여기에서 근대 국제법의 원자론적 성격이 도출된다. 그런데 공영권은 무엇보다도 원자론적 구성을 지양한 게마인샤프트로 파악되기 때문에, 여기서 기계적 평등 · 원자론적 자유는 근대 국제관계의 나쁜 속성으로 부정된다. 쇼와 10년대에 전형적이었던 "각자 지리를 얻는다"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유기적 결합 관계는 공영권의 본질로 여겨졌다.
91 국제법 질서는 모든 국가들이 국가 형태로 존재하는 한 국제법 관계를 형성할 수 있 는, 바깥에 대해 자유롭게 열린, 통일적이며 한계를 모르는 질서인 것이다. 또한 조약 준수의 원칙도 조약의 타당성을 현실적으로 제약하는 각자의 객관적 가치가 갖는 특수성을 사상하고 조약 준수라는 공통면을 추상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세가 실재적인 것이 아니며 국제법 관계의 성립을 현실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조약은 조약이기 때문에 준수해야 한다는 의식이 근대 국제법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된다 해 도, 이는 단지 근대 국제법의 형식적인 일반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지 근대 국제법 자체가 공통 가치에 기초한 하나의 질서로 통일성을 갖는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130 시노부는 세계대전기 자급 자족주의의 여파와 더불어 보호관세주의가 대두한 전후세계에서 국제연맹이 무역 균형 문제에 유효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눈을 돌리면 유럽에도 불안정 요인이 만연해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적국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중심이 된 대독일 보복주의는 이해 타산을 넘어 존속하고 있고, 독일의 경제 부흥은 궤도에 오르지 않고 있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된 뒤 새로 채용된 민족자결 원칙은 유럽대륙 전체의 발칸화를 가져왔다.
245 국제관계론의 역사에서 식민 정책학은 어떠한 위치에 있을까 '잊혀져 있다'는 말이 하나의 유력한 답일 것이다. 슈미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 국제관계론의 성립 과정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그는 20세기 초반 미국 정치학계에서 식민 통치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확대되는 과정을 논하면서 "흔히 무시되거나 거의 주목받지 못하지만, 정치학에서 식민 통치는 국제정치 언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국제관계론의 잊혀진 계보로서 식민 정책학을 상정하고 있다.
252 '제국주의'와 '국제주의'의 양립은 서구 국가 체계의 핵심인 문명 개념의 야누스적 성격일 수도 있다. 주지하듯이 근대 국제법은 문명국 표준주의를 채용하였다. 서구국가들은 법전 정비 등 일정 요건을 채우지 못한 국가에 대해서는 완전한 법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치외 법권을 설정하는 등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으며, 식민지 대상으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문명의 발전 단계라는 시간적 차이를 '서구'와 '비서구'라는 공간적 차이에 투영시켰을 때 '국제주의'와 '제국주의'는 문명의 도달 단계에 조응하는 대응으로서 모순 없이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른다.
260 근린 아시아국가들에 대해서는 문명 개념으로써 일본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의론이었다. 말하자면 서구에 대해서는 문화 상대주의를,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단선형 문명 발전론을 선택적으로 채용한 것이 특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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