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3 -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arte(아르테) |
I. 독일 관념주의 9
1. 피히테 — Gaetano Rametta 14
2. 역사, 과거, 고전주의 혹은 낭만주의 미학의 주제들 — Paola Giacomoni 44
3. 셸링 — Tonino Griffero 51
4. 헤겔 — Remo Bodei 76
II. 헤겔 이후의 철학과 마르크스 101
1. 사회적 유토피아 — Laura Barletta, Antonio Senta 106
2.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 Francesco Tomasoni 114
3. 카를 마르크스 — Salvatore Veca 123
III. 체계적 철학에 대한 비판 145
1. 쇠렌 키르케고르 — Matteo d’Alfonso, Valentina Pisanty 150
2.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Matteo d’Alfonso 159
3.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Giuliano Campioni 179
IV. 실증주의 철학과 사회적 발전 209
1. 오귀스트 콩트와 실증주의 — Ferdinando Vidoni 214
2.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 Alessandra Facchi 231
3. 존 스튜어트 밀 — Dino Buzzetti 238
4. 알렉시 드 토크빌과 자유주의 사상 — Vittorio Beonio Brocchieri 249
V. 과학과 진화론 267
1. 찰스 다윈 — Pietro Corsi 272
2. 19세기 물리학의 기초 개념들 — Mauro Dorato 289
3. 19세기의 논리학 — Mario Piazza 301
VI. 인문학의 세계 321
1. 민족학과 문화인류학 — Ugo Fabietti 326
2. 19세기의 교육학 — Gabriella Seveso 344
3. 언어학 — Tullio de Mauro 359
4. 과학적 심리학의 탄생 — Luciano Mecacci 368
5. 사회학 사상의 발전 — Gianfranco Poggi 388
VII. 19세기와 20세기 사이의 철학 409
1. 통일 이탈리아의 철학 — Giovanni Rota 414
2. 볼차노와 브렌타노 — Riccardo Martinelli 424
3. 빌헬름 딜타이와 독일의 역사주의 — Giuseppe Cacciatore 436
4. 퍼스와 실용주의 — Giampaolo Proni 442
5. 윌리엄 제임스와 19세기의 미국 철학 — Giorgio Bertolotti 461
6. 앙리 베르그송 — Caterina Zanfi 470
7. 아베나리우스, 마흐, 경험비판론 — Margherita Arcangeli 479
VIII. 20세기 사유의 양식과 모형 493
1. 신칸트주의 — Massimo Ferrari 498
2. 신관념주의 — Amedeo Vigorelli 511
3. 후설과 현상학 — Stefano Bracaletti 528
4. 정신주의와 인격주의 — Paolo Salandini 556
5. 신스콜라철학 — Alessandro Ghisalberti 570
6. 논리실증주의, 빈학파, 칼 포퍼 — Roberto Limonta 584
7.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의 발전 — Giovanni Rota 596
8. 마르틴 하이데거 — Costantino Esposito 608
9. 실존주의 — Giovanni Rota 633
10. 현대 마르크스주의 — Stefano Bracaletti 653
11. 구조주의 — Umberto Eco 667
12.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타자의 윤리학 — Luca Pinzolo 672
13. 푸코와 권력의 고고학 — Luca Pinzolo 677
14. 자크 데리다와 해체주의 — Maurizio Ferraris 683
15. 들뢰즈, 차이의 존재론에서 뿌리줄기의 논리학으로 — Luca Pinzolo 689
16. 분석철학 — Marco Santambrogio 693
17.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적 형식과 언어 게임 — Carlo Penco 716
18. 해석학과 해석의 발전 경로 — Maurizio Ferraris 730
IX. 20세기의 철학과 과학 757
1. 독자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사 — Luca Bianchi 762
2. 과학적 탐구의 역사적 가치 — Pietro Corsi 773
3. 기호학 — Valentina Pisanty 787
4. 20세기의 커뮤니케이션 — Umberto Eco 803
5. 존재론 — Pietro Kobau 825
6. 미학 — Elio Franzini 831
7. 20세기의 신학 이론 — Giovanni Rota 842
8. 과학철학 — Mauro Dorato 853
9. 물리학자들의 철학 — Alberto De Gregorio 866
10. 수학자들의 철학 — Mario Piazza 892
11. 20세기의 논리학 — Marcello Frixione 904
12. 인지과학 — Roberto Cordeschi 921
13. 심리철학 — Riccardo Fedriga, Luca Pinzolo 933
14. 인식론 — Nicla Vassallo 955
15. 사회학 — Roberta Sassatelli 991
16. 새로운 윤리학 이론 — Roberto Lolli 1001
17. 정치철학 — Giovanni Rota 1019
18. 경제철학 — Riccardo Viale 1032
19. 권리와 민주주의 — Stefano Rodotà 1040
20. 시민의 존재 — Gustavo Zagrebelsky 1061
역자의 글 움베르토 에코에 관한 오해 1074
참고 문헌 1080
찾아보기 1084
독자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사
762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 1부에서 자신을 앞서간 철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하는 부분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과거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종의 철학사를 염두에 두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심은 오히려 과거의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이론들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논박하거나 자신의 사상적 체계가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들을 발견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 테오프라스토스를 비롯해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후세대의 철학자들에게 일종의 서술 모형, 즉 철학자들의 의견들을 편찬하는 양식의 기틀을 제공했다. 이러한 유형의 글들은 다양한 철학이론을 사상의 발전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대신 '학파'를 기준으로 분류하고 소개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특징은 이 글들이 처음부터 이론의 구축과 교육을 목적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다시 말해 특정 학파를 대표하는 스승들의 사상이나 경쟁관계에 놓인 학파의 철학자들과 이들의 사상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고유의 학파가 지니는 이론적인 차원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쓰였던 것이다.
766 헤겔의 철학사적 관점이 낳은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결과들은 관념주의를 수용한 이탈리아 철학자들의 사유에서 구체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상이한 이론적 전제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철학자 크로체와 젠틸레는 모두 철학의 역사가 궁극적으로는 철학 자체와 일치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철학은 관념주의 철학의 '예비 단계'로 인식되었고 관념주의와 무관한 요소들은 본질적인 철학과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되었다. 추상적인 구도를 바탕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재구성된 철학사의 전개 과정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 다시 말해 '논리적' 연관성을 지닐 뿐인 개념들의 '사슬'을 구축하며 형성되는 사유의 역사전체가 수렴되어야 할 지점이 바로 관념주의였다.
767 헤겔이 남긴 유산의 또 다른 측면이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된 곳은 독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헤겔은 철학을 절대정신의 지고한 형식으로 간주하면서 한편으로는 철학이론들이 특정 시대의 정신적 삶을 표현하는 예술이나 종교 같은 형식은 물론 정치사회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특징에 주목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철학을 일종의 상부구조로 해석하면서 철학이 경제사회적 구조와 유지하는 관계를 비롯해 이에 뒤따르는 철학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강조했다. 즉 지배 계층의 권력 유지를 정당화하거나 피지배 계층의 의식을 표현하는 기능이 철학의 주요 기능들 가운데 하나라고 본 것이다. 반면에 딜타이 이후의 역사주의자들은 예술, 종교, 철학을 특정 시대의 모든 문화적 형식들을 포괄하는 동일한 세계관의 다양한 표현으로 이해했다.
768 흔히 '개념의 역사'라고 불리는 분야 역시, 적어도 첫 단계에서는, 이와 유사한 결과를 가져왔다. 유럽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한 이 연구 분야를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한 인물은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러브조이다. 1936년에 출판된 대표적 저서 『존재의 거대한 사슬: 한개념의 역사연구』에서 러브조이는 더 이상 다양한 철학의 이론 적 구조가 아니라 철학적 이론들을 구성하는요소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는 '단위개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브조이에 따르면 역사학자의 과제는, 화학 분석과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개념들의 실재를 찾아내고 이 개념들이 철학뿐 아니라 예술, 문학, 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지식인들은 철학사에 대한 상당히 모순적이고 모호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에는 철학의 역사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중세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시대의 철학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이루어지면서, 대학의 전문과정으로 정착되고 문화기관과 출판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로 성장한 철학사의 이미지가 있었던 반면 다른 한편에는 자율성과 특수성을 상실한 철학사의 이미지, 다시 말해 철학사를 철학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념주의적인 관점이나 경제사회사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간주하는 편협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또는 방대한 문화사의 일부로만 간주하는 역사주의적 관점이나 내재적 논리와 일관성을 지닌 이론적 체계의 재구성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 지적 맥락에서 진행되는 '단위개념들'의 조합과 해체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개념사적 관점에 의해 크게 훼손된 철학사의 이미지가 존재했다.
20세기의 신학 이론
842 20세기 신학의 역사는 종교를 위한 공간이 점점 더 사라지는 이른바 세속화 과정 및 문화와의 지속적인 대조 속에서 전개되었다. 종교와 역사의 관계, 그리스도교와 현대 사회의 관계, 신앙과 문화의 관계 등에 주목하며 중재를 시도하는 것이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의 우선적인 과제였다. 상당히 다양하고 이질적인 성향의 학자들로 구성된 이 복합적인 사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사이에 개신교 내부에서 형성되었다. 20세기의 신학에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년)의 저서 『로마서』(1919년)다. 이른바 '위기의 신학' 혹은 '변증신학'의 시작을 알린 이 저서에서 바르트는 신의 절대적 초월성과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무상성을 주장하면서 신의 절대성은 오로지 성서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역사와 신앙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가톨릭세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년)를 계기로 신학적인 차원의 변혁을 시도하며 현대 문화를 열린 자세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유대교 신학에서는 쇼아를 계기로 극적인 형태의 변화가 일어났고, 20세기에 유럽 한복판에서 유대인들이 경험한 전대미문의 재난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신이 맡은 역할과 신의 존재 혹은 본질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질문들을 불러일으켰다.
키르케고르는 일찍이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영원한 구원의 역사를 구축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 역설적인 질문에는 현대가 당면한 다양한 신학적 문제들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다. '시간' 속의 '영원함'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스도교가 절대성과 직결되고 역사가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상대성의 왕국과 직결된다고 볼 때 어떤 식으로 그리스도교와 역사의 조화를 도모해야 하는가? 키르케고르의 질문은 종교가 시대정신에 자리를 내주며 고유의 공간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세속화 과정으로서의 서구역사에서 그리스도교가 지니는 의미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찍이 계몽주의는 복음서의 내용을 일종의 윤리적 메시지로 해석하는 관점에 주목했고, 그런 식으로 신의 아들을 단순한 도덕 선생으로 이해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반면 헤겔은 그리스도교의 지적이고 철학적인 해석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는 예수의 역사적 구체성이 완전히 도외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좀더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역사주의 철학의 영향 하에,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표현이 세속적인 차원의 구도를 바탕으로 재해석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19세기에는 성서에 대한 세련된 역사-비평적 탐구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유지되어 온 그리스도교와 역사의 공존관계를 위기에 빠트렸다.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발전적인 성과를 이루었지만 이로 인해 복음서의 메시지가 상대화되고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특징들이 부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표현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도들에게 '임박한 종말'의 기다림을 의미했다면 그리스도교가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라는 기관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근거는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신학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모순에서 비롯된 불안정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고 점점 더 독립적인 형태로 발전하던 철학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예를 들어,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무신론의 형태로 발전한 철학들, 예를 들어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니체의 철학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844 20세기 초반에 개신교 신학 사상을 지배했던 것은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다. 상당히 다양한 부류의 신학자들이 자유주의를 표명했지만 신학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은 당연히 에른스트 트뢸치(1865~1923년)다. 트뢸치는 역사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종교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인정했던 학자다.
844 트뢸치는 그리스도교가 매순간의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 좌우되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에 깊이 연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현대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러한 예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사회적 조건을 수용하면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 개신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역사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조합, 현대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학자들이 주목했던 것처럼 이러한 조합은 오로지 그리스도교 복음의 변형을 통해서만, 즉 세상과의 타협이 가능하도록 내용을 좀 더 가볍게 만들고 신앙의 근본은 성서에 적힌 신의 말씀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있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845 반면에 『로마서』의 저자 칼 바르트의 신학은 현대 문화와의 화합과 타협에 전혀 주목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바르트의 『로마서』와 함께 시작된 것이 바로 '변증적 신학' 혹은 '위기의 신학’이다 바르트의 신학은 "시간과 영원성 사이에 무한한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키르케고르의 관점, 즉 역사와 종교, 문화와 신앙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관점을 무조건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인다. 바르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신의 절대적 초월성과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한 구원의 무상성이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시도하면서, 종교의 근원이 신앙의 주체나 인간의 의식 속에 있다면 성서는 과연 무엇에 쓰여야 하는가, 종교의 근원이 의식이라는 관점은 그리스도교만의 특수성을 상실하게 만들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바르트의 신학은 불편하고 비이성적이며 제안적인 성격의 신학이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가장 엄격한 전통 신학에서 파생한 바르트의 신학은 신의 절대성이 역사나 윤리, 이성이나 감성 혹은 인간의 주체적 의식이 아니라 오로지 성서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사실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에서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러한 측면이다.
846 루돌프 불트만(1884~1976년)은 초기에만 바르트의 관점에 근접해 있었을 뿐 점차적으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범주들을 참조하며 고유의 신학적 체계를 발전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트만의 신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탈신화화'의 개념이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구축되는 것은 현대인이 바르트의 엄격한 성서주의에서 벗어나 성서의 깊은 의미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석학적 방법론이다. 나치의 등극으로 인해 대학의 교수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폴 틸리히 (1886~1965년)도 그리스도교와 현대 문화의 새로운 조화를 시도했던 인물이다. 틸리히는 실존주의 철학,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와의 대조를 통해 고유의 신학적 체계를 정립했고 당대의 정치적 차원과 사회적 변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나치에 반대하며 저항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년)는 그리스도교의 '세속화'를 "어른이 된" 인간에게 자율성을 허락하는 신의 배려로 해석했다.
846 가톨릭세계에서 신학적 성찰은 교회가 제시하는 교리적, 학문적 틀과 계율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른바 '근대주의' 신학 사상, 즉 여러 측면에서 개신교의 자유주의 신학과 유사한 성격을 유지했던 신학적 근대주의는 20세기 초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그리스도교와 현대 사상의 대화라는 지평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근대주의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종교와 진화론의 조화를 꾀했던 프랑스의 예수회 철학자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1881~1955년)을 향한 교회 지도자들의 의혹도 신학자들이 겪었던 어려움의 또 다른 예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교황 요한 23세가 1962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세계 내부에서도 신앙의 기반을 수호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편협한 태도에서 벗어나 현대 문화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열린 자세를 촉구했던 신학자들 가운데 주목해야 할 인물은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1905~1988년)와 카를 라너 (1904~1984년)다. 발타자르는 바티칸 공의회의 몇몇 결론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고 라너는 현대 철학의 인류학적인 관점에 호소하며 인간은 결국 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는 은밀한 자세를 갖춘 존재라는 관점에서 신학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한스 큉 같은 신학자는 개신교 세계를 향한 열린 자세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가톨릭의 위계적인 문화와 경직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이러한 유형의 성찰과 입장들을 수용하고 근본적인 차원의 원칙으로 받아들인 신학 사조가 바로 '해방신학'이다. 이 복합적인 신학 운동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1960년대 말에 유럽이 아닌 라틴아메리카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방신학은 뿌리 깊은 가난과 극심한 빈부격차와 열악한 삶의 조건을 토양으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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