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노부유끼: 유교란 무엇인가

 

유교란 무엇인가 - 10점
가지노부유끼 지음, 김태준 옮김/지영사

한국어판 서문
책머리에
서장 유교에서 말하는 죽음
1장 유교의 종교성
2장 유교 문화권
3장 유교의 성립
4장 경학시대(상)
5장 경학시대(하)
6장 유교와 현대
마지막장 유교와 현대
저자 후기
역자 후기

 


26 동북아시아를 보기로 하자. 중국, 한국, 일본 ─ 이들 나라는 서아시아인 중근동이나 남아시아인 인도보다는 훨씬 살기 좋은 데다가, 다신교의 나라들이다. 그 대표라고 할 중국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처럼 이 세상은 괴로운 세계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기독교처럼 인간이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중국 사람들은 이 세상을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점이 인도 사람이나 중근동의 사막지방 사람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가와타 데이치에 따르면 리앙수밍은 처음에 불교를 연구했고 뒤에 유교를 연구했는데, 『논어』를 읽었을 때 "즐겁다, 즐겁다"는 말이 넘치고 있음에 놀랐다고 한다. 분명히 『논어』는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의 세계이다.  

32 이 결과로, 여기에 한 가지 전환이 일어난다. 나의 생명이란 것은 실은 아버지의 생명이고, 조부의 생명이며, 나아가서는 참으로 아득한 조상의 생명이 되는 것으로, 가계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은 실은 백년 전에도 분명히 자신은 살아 있었다는 셈이기도 하다. 아니 백년은 물론이고, 천년 전, 일 만년 전, 십만년 전에도, 더 나아가서는 생명의 근원이었던 곳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자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이는 '혈맥(血脈)' 또는 '피의 사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편으로는 자손과 일족이 있으며, 백년 뒤, 천년 뒤, 일만년 뒤로, 만일 자손과 일족이 이어지면 자신은 개체로서는 죽더라도, 육체가 죽은 뒤에도 자손의 생명과 이어짐으로써 계속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32 결국, 효도를 다함으로 해서 나의 생명이 영원하다는 가능성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죽음의 공포나 불안도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영원한 생명 ─ 이것이야말로 현세의 쾌락을 긍정하는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중국 사람이 가장 바라는 것이었다. 이는 한(漢)민족에 대한 죽음의 설명으로써 가장 정리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이론은 거꾸로 말하자면 영원한 생명을 인정하고자 하는 생명론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명론에서 보자면 부모를 몽둥이로 살해한다든지 임신중절로 자식을 살해하는 일은, 실은 나의 생명을 끊는 셈이 된다. 생명론 ─ 이것이 효의 본질이다. '유'는 초혼의례라는 동서고금에 어디든지 있는 주술을 생명론으로 구성했으며, 죽음의 공포나 불안을 해소하는 설명을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생명론으로써 '죽음의 설명'을 받아들인 사람이야말로, 일반의 중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158 그 공통되는 중요한 문제가 몇 가지 있지만, 중요 요점은 '죽음에 관한 것'이다. 죽음 ─ 그 공포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야말로, 종교에서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벌써 말한 바와 같이 불교는 윤회전생을 말하고, 유교는 초혼재생을 말한다. 그러면 도교는 어떻게 말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음에 대한 공포의 해결로, 도교는 불로장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교의 재생이론은 삶과 죽음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실감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그에 대하여 그런대로 마음에 편안한 설명을 찾던 결과의 산물이었다.  

170 그런데 이런 종류의 논쟁이 위진남북조시대로부터 수당시대까지 약 6, 7백 년 이어졌지만, 11세기 송대가 되면서 유교 쪽에서 약했던 우주론 · 형이상학을 보충하려고 하게 되었다. 그 구실을 담당한 것이 송학(宋學)이다. 송학이란 송대에 나온 이런 새로운 경향의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고, 신유학이라고도 불린다. 그 중심 인물이 주자이기 때문에, 송학을 주자학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주자학은 주자 개인의 사상을 나타낼 뿐만이 아니라, 송학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것이다. 

185 주자는 선배인 장재가 쓴 귀신론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세계의 물의 질료는 기이다. 이 기가 모이면 삶의 상태가 되며, 기가 흩어져 버리면 죽음의 상태가 된다고 했다. 인간의 기 가운데도 뛰어난 기, 곧 정기를 모은 것이 있지만, 그것은 어쨌든 죽으면 기가 흩어져 버린다.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혼이 지하로 돌아가는 것도 그 기가 흩어져 가는 모습이며, 혼은 '신', 백(魄)은 '귀'라고 이름을 바꾼다. 그러나 기는 반드시 흩어져 버리고, 두 번 다시 모일 수는 없다고 한다. 여기서 두 번 다시 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것은 불교의 윤회전생이라는 재생산을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197 1. 유교란 무엇인가 ─ 이 책은 그 역사를 (1)발생기의 원유시대 (2) 유교 원리를 기초 정립한 유교 성립시대 (3) 그 기초 이론을 발전시킨 경학시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요컨대 유교는 예교성 (표층)과 종교성(심층)으로 되어 있으며, 크게 말하자면 (1)은 예교성과 종교성의 혼합시대, (2)는 두 가지의 이중구조 성립시대, (3)은 두 가지의 분열과 그 진행의 시대이다. 그 예교성은 공적 ; 사회적(다만 가족 밖이 중심) · 지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인(독서인) · 관료(사대부)를 중심으로 심화되었다. 한편 종교성은 사적 · 사회적(다만 가족안이 중심) · 정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 서민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다만 예교성과 종교성은 가족론과 겹치면서 이어져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203 문제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여러 사상과 종교에서 죽음에 대한 관념은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죽은 뒤 사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육체로부터 빠져나와 따로 있는 것이라는 관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또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는 생각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이 혼을 현세에 불러들여 재생시키는 초혼의례 또한 예로부터 널리 이루어져 왔다. 이른바 조상숭배는 그 전형이다. 다시 되 풀이해 말하자면 유교는 ①한 가족이 죽은 조상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일, 곧 초혼재생의례, ②살아 있는 부모를 받드는 일, ③조상 이래의 생명을 전하기 위해 자손을 낳는 일(인구의 적절한 증가를 요구하는 인구론도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 세 가지 를 합하여 '효'라고 하며, 유교 윤리 의 바탕으로 삼았다. 효란 조상이라는 과거, 부모라는 현재, 자손이라는 미래에 걸쳐서 생명이 연속하는 점에 따른 사상이지, 현재의 부모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203 그렇다면 조상의 영은 초혼의례에 의지해서 이 그리운 이생에 다시 돌아올 수가 있으며, 거꾸로 현재의 우리들로 하여금 먼 과거에도 살았던 점을 알게 한다 현재 우리들이 존재하는 일, 곧 반대로 말하자면 조상이 있다는 일은 우리들이 이른바 백년 전 혹은 다시 천년 전, 만년 전에 분명하게 어딘가에서 개체로 존재했으며 살았다는 점을 뜻한다. 이처럼 유교에서 말하는 효는 생명의 연속을 주장하는 생명론인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