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파노프스키: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1. 19.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 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 김율 옮김/한길사 |
철학의 첨탑, 첨탑의 철학│김율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Ⅰ
Ⅱ
Ⅲ
Ⅳ
Ⅴ
도판
에필로그: 파노프스키가 예술작품에서 보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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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프스키 연보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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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성과 신앙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원리가 탐구되고 공식화되기 이전에, 란프랑쿠스(1005년경 ~89)와 안셀무스(1109년에 사망)는 이미 그런 갈등을 해결하려는 선구적인 시도를 행한 바 있다. 그런 원리에 관한 탐구와 분명한 진술을 처음으로 시도한 인물은 길베르투스 포레타누스(1080년경 ~1154)와 아벨라르두스(1142 년 사망)이다. 그리하여 초기 스콜라철학은 생-드니에서 쉬제(Suger)에 의해 탄생한 초기 고딕건축과 동일한 시점에 동일한 환경에서 탄생하였다. 물론 쉬제가 자신의 장인들에 대해 썼던 표현처럼 이 새로운 건축양식은 '여러 국가에서 온 수많은 명장들'에 의해 생겨났고 곧이어 참된 의미의 국제적 운동으로 전개되었지만, 어쨌든 새로운 사유 양식과 새로운 건축양식이 공히 파리를 중심으로 반경 100마일 이내의 지역에서부터 퍼져나간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양식들이 각지로 퍼져나간 이후에도] 약 한 세기 반 동안 그 지역은 여전히 그 양식들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다.
6 샤르트르 대성당의 서쪽 파사드에 새겨진 초기 고딕상들을 그에 앞선 로마네스크 양식과 구별해주는 차분한 활기가, 여러 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영혼론에 대한 관심의 부활을 반영한다는 지적은 올바르다. 그러나 영혼론은 여전히 '생명의 숨결'과 '땅의 진흙'을 가르는 성서적─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적인─이분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랭스, 아미앵, 스트라스부르, 나움부르크 대성당의─아직 초상화같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살아 있는 듯한 전성기 고딕 조각상들 그리고 전성기 고딕 장식의─아직 자연주의적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자연스러운 동식물상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승리를 선포한다. 인간의 영혼은 여전히 불멸하는 존재자로 파악되었지만, 이제 신체로부터 독립해 있는 실체라기보다 신체 자체를 조직하고 통일하는 원리로 간주되었다. 식물은 식물의 이데아에 대한 모사로서가 아니라 식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다. 신의 존재는 선험적(a priori) 방식이 아니라 그가 만든 피조물에 의거해 증명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13 이러한 새로운 흐름의 공통분모가 주관주의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시인과 인문주의자에게서는 미학적 주관주의이고, 신비주의자에게서는 종교적 주관주의이며, 유명론자에게서는 인식론적 주관주의이다. 사실 신비주의와 유명론이라는 두 극단은 어떤 의미에서는 동전의 양면과 다를 바가 없다. 신비주의와 유명론 모두 이성과 신앙의 연결을 끊어놓는다. 물론 신비주의─타울러(1300년경~61), 하인리히 소이세(1295년경 ~1366), 얀 반 루이스브뤼크(1293/4~1381)의 시대가 되면 신비주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시대보다 스콜라철학에서 훨씬 더 뚜렷하게 갈라져 나온다─는 종교적 정감의 온전성을 구해내기 위해 이러한 단절을 행했으며, 유명론은 이성적 사유와 경험적 관찰의 온전성을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단절을 행했다(오캄은 '논리학, 자연학, 문법학'을 신학의 통제에 종속시키려는 그 모든 시도가 '무모한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비난한다).
18 내가 보기에는, 이 놀랄만큼 동시적인 발전과정이 '집중된' 시기, 곧 1130~40년경부터 1270년경까지의 시기에 우리는 고딕 예술과 스콜라 철학 사이에서 단순한 '평행현상'보다 더 구체적인 연결, 그리고 화가나 조각가나 건축가에게 학식 있는 조언자가 주기 마련인 개별적인 (그리고 매우 중요한) '영향들'보다 더 전면적인 연결을 목격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이 연결은, 단순한 평행(parallelism)과는 다른 본래적 의미의 원인-결과 관계(cause and effect relation)이다. 그런데 이 원인-결과 관계는 직접적 충격보다는 오히려 확산에 의해 생겨난다는 점에서 개별적 영향과 대비된다. 이런 관계는, 더 나은 용어를 찾을 수 없는 궁여지책의 표현이긴 하지만, 일종의 심적 습성(mental habit) 이라 일컬을 수 있는 어떤 것이 퍼져나감으로써 생겨난다. 심적 습성이라는 말은 과도하게 남용되는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 표현의 정확한 스콜라철학적 의미, 곧 '행위를 규제하는 원리'(principle that regulates the act, principium importans ordinem ad actum)라는의 미로 돌아가자. 이런 심적 습성은 모든 문명에서 작용한다. [예컨대] 근대의 모든 역사서에는 진화라는 관념 (이제까지 수행된 연구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고 바로 지금 아주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되는 관념)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생화학이나 정신분석에 관한 참한 지식이 없어도 비타민 결핍이니 알레르기니 모성고착이니 열등감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아무 주저함 없이 쉽게 이야기한다.
19 습성을 형성하는 여러 요인 중에서 한 가지 요인을 끄집어내고 그 전파 경로를 그려 낸다는 것은 흔히 쉽지 않으며 또는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1130~40년경부터 1270년경까지의 '파리 주변 반경 100마일 지역'은 예외다. 대단히 좁은 이 지역에서 스콜라철학은 교육에서 독점적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지적 훈련은 대수도원 부설학교에서 다른 교육기관으로, 즉 지방적이기보다는 도시적이고, 지역적이기보다는 국제적이며, 말하자면 기껏해야 준교회적 성격을 갖는 교육기관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대성당 부설 학교, 대학, 새로운 탁발수도회의 신학원들 (studia)─이것들은 거의 모두 13세기의 산물이다─이 바로 그런 교육기관이었다.
23 이 진행 방식은, 모든 작용의 방식이 그러하듯이 존재의 방식(modus essendi)을 따른다. 그리고 이 존재 방식은 초기와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존재의 이유(raison d'etre)를 따른다. 초기와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존재 이유는 진리의 통일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12~13 세기 사람들은 그들의 선행자들이 아직 명확하게 구상하지 못했던 과업,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들 곧 신비주의자들과 유명론자들이 아쉽게도 포기하고 말았던 과업을 이루고자 시도했다. 과업이란 바로 신앙과 이성의 항구적인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룩한 가르침은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되,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가르침 안에서 진술되는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히기(manifestare)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 인간 이성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 구조, 신의 육화, 창조의 시간적 유한성 등등 신앙 조항들에 대해 결코 직접적인 증명을 제공할 수 없다.
25 명백하게 함(manifestratio), 그러니까 해명 또는 명료화야말로 내가 초기와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첫 번째 규제 원리(first controlling principle)라고 부르고 싶은 바로 그것이ek. 그러나 이 원리가 가능한 최고도의 수준─이성에 의한 신앙의 해명─에서 작용하기 위해서, 그 원리는 이성 그 자체에 적용되어야 했다. 만일 계시의 영역과 분리되어 자기 한계 안에서 완결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사유 체계에 의해 신앙이 '명백해져야' 한다면, 우선 사유 체계 자체의 완결성, 자기 충족성, 한계가 '명백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문헌 서술의 도식(a schema of literary presentation)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74 조심스러운 독자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왓슨 박사가 셜록 홈스의 계통 발생 이론에 대해 갖는 그런 느낌('그것은 비현실적 공상이야')이 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서 내가 묘사한 발전이 헤겔의 '정반합' 도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전개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사람들에 따르면] 헤겔의 '정반합' 도식은 프랑스 중심부에서 진행된 초기에서 전성기에 이르는 고딕 양식의 전개 과정에 적용될 뿐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그 밖의 다른 발전 과정들(예컨대 1400년대 플로렌스 회화의 발전이나 심지어 예술가 개인의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고딕건축의 발전 과정에는 그것과 비교되는 여타의 현상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이 존재한다. 첫째는 특출한 일관성이며, 둘째는''~라고 생각된다' (videtur quod), '그러나 반대로'(sed contra),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고 나는 답한다'(respondeo dicendum)는 원리가 철저히 의식적으로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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