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엔도르프: 헤지카즘의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

 

헤지카즘의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 - 10점
존 메이엔도르프 지음, 박노양 옮김/정교회출판사

▣ 서문 ▪7
동방 수도승들의 영적 전통▪11
초기 수도원 운동 ▪11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와 순수기도 ▪22
이집트 성 마카리오스와 마음의 신비 ▪28
예수 기도 ▪38
신화 교리 : 니싸의 그레고리오스와 고백자 막시모스 ▪50
신신학자 시메온(917-1022) ▪61
13~14세기 비잔틴 헤지카즘 ▪71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 헤지카즘의 신학자 ▪91
젊은 시절 ▪91
발람, 그리고 아킨디노스와의 논쟁 ▪107
헤지카즘 신학 ▪136
그리스도교적 실존주의(existentialisme chrétien) ▪152
팔라마스 이후의 헤지카즘 ▪169
14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동방 그리스도교 헤지카즘 ▪169
러시아의 헤지카스트 전통 ▪188
결 론 ▪225
▣ 연대기 ▪235
▣ 색인 ▪241
▣ 참고 문헌 ▪251

 


7 성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에게 바쳐 진 이 성가는 사순대제 두 번째 주일 전례에서 불려진다. 이를 통하여 정교회는 비잔틴 제국의 멸망 약 백 년 전, '헤지카즘(hesychasme)'이라는 동방 그리스도교의 관상 수도원 전통을 정교회 교리와 종합해냈던 이 성인을 공경한다. 

헤지카즘은 그 기원이 사막 교부 시대에 맞닿아 있는 수도원 운동이다. 물론 '정교 신앙의 신비'를 대표하는 것이 이것만은 아니다. 그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신앙의 신비가 알려져 왔다. 특별히 팔라마스가 '정교회 신비 신앙'의 박사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가 그저 '하나의 영성파'라는 틀 안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과 그의 저작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비의 본질 그 자체를 되살려냈다는 점 때문이다. 

팔라마스 시대에, 동방 그리스도교의 수도 운동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위대한 영성의 박사들은 그에게 방대한 문헌을 남겨주었다. 그는 그들이 겪은 영적 싸움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크게 존경받았다. 과거 전통의 이 모든 유산을 팔라마스는 주저함 없이 모두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이 과거에서 변함없는 영적 · 교리적 요소를 발굴해 내는 것이었다. 그것도 르네상스의 정신이 비잔틴 제국에 불어오기 시작했고 서방 그리스도인들이 그 역사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들 중 하나를 겪고 있었던 시기에 말이다. 근대는 중세가 절대화했던 그 많은 가치를 결정적으로 황폐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붕괴시켜 버리고 말 것인가? 이 새로운 도성은, 지성과 피조세계의 자율성을 획득한 뒤에도,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적 성취들과는 관계없이 가져오신 초자연적인 생명에 조금의 여지라도 남겨둘 것인가? 

팔라마스의 저작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동방교회가 14세기 비잔틴에서 그가 이룩해 낸 교리적 승리를 어떤 특별한 신비 운동의 승리가 아니라 정교신앙 자체의 승리로 여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해서 교회의 선언은 순전히 수도원적인 영성 전통 안에 영속적이고 보편적으로 존재해 온 요소들을 밝히 드러냈다. 


72 헤지카즘과 관련된 논의의 중심에는 분명 헤지카스트 니케포로스라는 이름이 자리하고 있다. 팔라마스는 그에 대해서 이탈리아인으로서 정교회 신자로 개종했으며 미카엘 8세 팔레올로고스 황제(1261-1282)의 동서방 교회 일치 정책에 대한 반대자 중의 하나로 활약하다 후에 아토스 산의 수도승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시기 정교회로 개종한 많은 이탈리아인처럼 니케포로스 또한 칼라브리아나 시칠리아의 그리스인이었을 것이다. 『마음의 간수에 대하여』라는 짧은 저술을 남겼다는 것과 비잔틴 교회의 영적 권위자 가운데 제자를 많이 두었다는 것 말고는 딱히 그의 생애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없다. 아토스 성산의 수도인 카리에스 가까이에 그가 살았던 암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78 사실, 니케포로스에 의해 제안된 육체의 훈련은 "모든 정신 활동은 육체적 반향을 가진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비록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육체는 감각을 통해서 감정, 추상적 사고, 의욕, 심지어 초월적 체험 등과 같은 영혼의 모든 운동에 참여한다." 니케포로스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의 몇몇 설명이 전제하고 있는 순전히 인체 생리학적 개념들이다. 이 인체 생리학 자체도 사실 성경의 생리학과 매우 가깝다. "마음은 주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몸 전체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112 우선 라틴 신학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들고 나온 발람의 이 유명론적 불가지론은, 곧 아토스 산의 성 사바스 수도원의 은수도승이었던 팔라마스의 비판에 부닥친다. 아토스 산에 은둔해 수도 생활을 하고 있던 팔라마스는, 콘스탄티노플과 테살로니키로, 한편으로는 그의 옛 제자 중의 한사람인 아킨디노스에게, 또 한편으로는 칼라브리 아 출신의 철학자인 발람에게 거듭 편지를 보낸다. '하느님은 물론 알 수 없지만 그분은 자신을 계시하지 않는가? 육화하신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지성적 지식과는 구별되는, 탁월하게 실제적이고 모든 철학적 지식보다도 참된 초자연적인 지식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시지 않는가?'라는 내용이었다. 서방에서 스콜라적인 토마스 신학의 지성적 실재론을 거부했던 발람은 이렇게 동방에서 수도승들의 신비적 실재론과 충돌하게 되었다. 

113 발람에 대항하여 발표된 최초의 공식적인─혹은 반(半)공식적인─문서는 팔라마스가 작성하고 1340~41년경 아토스 성산의 수도원장들과 수도승들이 카리에스의 프로타톤에서 가진 회의를 거쳐 서명 동의한 『아토스 성산의 선언』이다. 아토스의 수도원들은 모두가 발람의 유명론적 인문주의의 반대편에 서서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야말로 자신들의 진정한 대변자라고 선언했다. 『세 편의 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언』에서도 팔라마스는 그리스도교 신비를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위치시켰다. 하느님은 실제적으로 볼 수 있는 분이 되신다. 왜냐하면 다가올 하느님 나라가 교회 안에서 이미 선취되고 있듯이, 그리스도는 구약의 의인들에게 이미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138 팔라마스는 하느님 지식에 대한 고대 철학자들의 주장에는 최소한의 신뢰도 부여하길 거부한다. 반대로 그는 모든 감각적 경험과는 독립된 초자연적 지식의 실재에 관한 교리를 발전시킨다. 이 초자연적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인적으로(영혼과 몸)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고, 인간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으로 지금 이곳에서부터 궁극적 신화(神化 deification)와 견신(見神 vision de Dieu)의 맏물을 접할 수 있다. 헤지카스트 박사는 인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발람의 인간학이 바탕으로 삼은 플라톤주의적 정신주의와 대립시킴으로써 정신-신체적 기도방법을 정당화한다. 성경적 인간학에서 몸은 영혼의 감옥이 아니라 오히려 성사들의 은총을 받아 누리고 궁극적으로 부활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왜 몸이 '순수기도'에 참여할 수 없단 말인가? 

146 우리는 헤지카스트 신비 영성과 힌두교의 니르바나 영성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비가가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새 생명이며, 그것은 그 존재 전체의 생명이다. 그리스도교 신비가는 세례와 성체성혈의 은총을 통해 이미 이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안다. 또한 그는 자기 안에서 이 생명을 찾는다. 바로 이것이 14세기 헤지카스트 운동이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적인 영성을 권장하기보다는 교회의 성사주의를 되살려내는 이유다.  

158 모든 계시, 모든 참여, 모든 신화가 가능한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다. 즉, 그것은 '하느님의 에네르기아'다. 하지만 하느님 자신은 이 행위 자체와 완전히 동일한 분은 아니다. 하느님은 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이 계시 행위 너머에 머물러 계신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소유하시고 그것에 자신의 생명을 주시지만, 피조물은 항상 유일한 행위자로 계시는 하느님을 소유할 수 없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질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이 될 것이다. 팔라마스가 자신의 신학에서 추구하고자 한 목표는, 교부 전통과 뗄 수 없는 일체를 이루고 있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 사실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228 헤지카스트들은 이 일원론적 인간론의 틀 안에서 교부들의 신화 교리를 탐구했다. 신화는 단지 지성의 초자연적인 속성인 것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비물질도 전제하지 않는다. 이집트의 마카리오스 성인으로부터 사로브의 세라핌 성인에 이르기까지, 동방 그리스도교 신비가들은, 하느님과의 교제는 (몸과 영혼으로 구성된) 인간 전체를 포괄하고, 하느님의 빛은 종종 신화된 인간의 몸에서 빛나기도 하며, 이 빛은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의 선취라고 주장해 왔다. 이것이 과연 영적인 범주로는 올라갈 수 없는 조잡한 물질주의일 뿐인가? 물론 그 정반대다. 헤지카스트들의 '물질주의'는 하느님의 초월성에 대한 성경적 확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하느님은 단지 물질을 초월해 계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지성도 초월하신다. 물질보다 창조된 지성이 하느님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위엄과 전능 앞에서는 둘 다 지극히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역으로 하느님은 원하신다면 지성만큼이나 쉽게 육안에도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다.  

229 팔라마스의 승리는 르네상스의 이교적 휴머니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의 승리였다. 이 논쟁의 중대성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논쟁을 후대 역사에 비추어서 고찰해야 한다. 14 세기 동방교회 앞에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선택이 놓여 있었다. 성경에 바탕을 둔 통일된 인간 개념, 구속의 은총의 즉각적인 효과는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을 망라한다는 주장이 한 편을 이루고, 다른 한편에는 물질에 대하여 인간 지성의 독립성 혹은 적어도 자치성을 주장하면서 이 지상에서부터 실제적인 신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했던 지성적 정신주의가 있었다. 근대의 세속주의가 이 후자의 입장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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