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 보르헤스 전집 2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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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민음사 |
1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서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알모따심에로의 접근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원형의 폐허들
바빌로니아의 복권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바벨의 도서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2부기교들
서문
1956년의 후기
기억의 천재 푸네스
칼의 형상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죽음과 나침반
비밀의 기적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끝
불사조 교파
남부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보
15 서문
방대한 양의 책을 쓴다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나간 짓이다. 단 몇 분에 걸쳐 말로 완벽하게 표현해 보일 수 있는 어떤 생각을 500 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는 짓. 보다 나은 방법은 이미 그러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책들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하나의 코멘트, 즉 그것들의 요약을 제시하는 척하는 것이다. 칼라일이 자신의 저서 『다시 재단한 복장』에서 그러했다. 버블러 또한 『좋은 피난처』에서 그렇게 했다. 이런 작품들은 책이 되기에 불충분하지만 책이 되었던 작품들만큼이나 동어반복적이다. 보다 그럴 듯하고, 보다 무능력하고, 보다 게으르게도 나는 상상의 책 위에 씌어진 주석으로서의 글쓰기를 선호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186 17세기에 로크는 각 사물, 각 돌, 각 새, 각 나뭇가지가 고유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불가능한 언어를 가정했다(거부했다). 푸네스는 한때 그와 비슷한 유의 언어를 계획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작업이 지나치게 막연하고, 지나치게 애매모호했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했다. 사실, 푸네스는 모든 숲의 모든 나무들의 모든 나뭇잎들 뿐만 아니라 그가 그것들을 지각했거나 그것들을 다시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 날들의 하나하나를 7천 개의 기억들로 축약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다음 그는 기호들을 가지고 그 기억들을 정의해 보려고 했다. 두 가지 이유가 그로 하여금 그것을 포기하도록 설복했다. 그 작업은 끝이 없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해보았자 쓸모가 없을 거라는 생각. 그는 죽을 때까지 한다 해도 심지어 어린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분류하는 일조차 끝을 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88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푸네스의 풍요로운 세계에는 단지 거의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들 밖에 없었다.
189 새벽의 주도면밀한 빛이 지상의 정원에 찾아들었다. 그때서야 나는 밤새 내게 말을 했던 목소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레네오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는 1868년에 태어났다. 그는 마치 청동상처럼 기념비적이고, 이집트보다 더 오래되고, 예언과 피라미드들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했던 한마디 한마디가 (내가 했던 몸짓 하나하나가) 그의 완고한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괜스레 쓸대없는 몸짓들을 종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까마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레네오 푸네스는 1889년 폐울혈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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