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 피렌체사 1

 

피렌체사 1 - 10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경희.신철희 옮김/박영사

헌정사
서 문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역자 해제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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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피렌체인들이 국내외에서 행했던 일들에 대하여 쓰기로 처음 작정했을 때, 나의 의도는 코지모와 그의 아버지 조반니의 공적으로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어느 누구보다도 큰 권위를 획득한 서기 1434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1434년 이전에 발생한 모든 이야기는 두 명의 위대한 역사가인 아레초의 레오나르도와 포조가 상세하게 말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모방함으로써 나의 역사책이 독자들로부터 더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하여, 그들이 어떤 질서와 방식(ordini e modi)으로 글을 썼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저작들을 면밀하게 읽었다. 그들은 피렌체인들이 외국인 군주들이나 인민들과 벌인 전쟁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묘사했으나, 시민들 사이의 불화와 내부의 증오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침묵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효과와 관련해서는 매우 간략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즐거움이나 유익을 주지 못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쓴 이유를 시민들 사이의 불화와 내부의 증오의 정도가 너무 약해서 글로 남길 가치가 없다고 여겼거나, 아니면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비난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자손들의 심기를 거스르기를 꺼렸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유는 말할 나위 없이 뛰어난 이 작가들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 역사가 즐거움이나 교훈을 준다면 그것은 상세하게 진술된 사건들일 것이고, 공화국을 통치하는 시민들에게 유익한 독서가 있다면, 그것은 도시의 불화와 분열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보여주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이와 같은 지혜를 배운 그들이 시민들 사이의 연합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한 공화국의 사례가 감동적이라면, 자선의 도시의 사례를 읽을 때에는 더욱 감동적이고 유익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공화국의 분열보다 피렌체의 분열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대다수의 공회국들은 하나의 분열에 만족하고, 우연한 사건에 따라 그 분열이 때로는 세력을 확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시를 망하게 하기도 했는데, 피렌체는 하나의 분열에 만족하지 못하고 많은 분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로마에서는 왕들이 쫓겨난 후 귀족과 평민 사이의 분열이 발생하여 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그 분열이 유지되었다. 아테네에서도, 당시에 번성한 다른 모든 공화국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피렌체에서는 처음에 귀족들끼리, 다음에는 귀족과 포폴로 사이에, 마지막에는 포폴로와 평민 사이에 분열이 발생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승리한 쪽이 다시 둘로 나뉘었다. 그러한 분열들로 인하여 우리가 기억하는 그 어떤 도시에서 발생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망명, 그리고 많은 가문들의 멸망이 있었다. 내 판단으로는 참으로, 그 어떤 위대하고 강력한 도시라도 소멸시켜 버렸을 힘(forza)을 가지고 있었던 이 분열들로부터 발생한 역량 (potenza) 보다 우리 도시의 역량을 더 잘 보여주는 다른 사례는 없어 보인다. 분열에도 불구하고 우리 도시의 역량은 더 강해졌다. 그 분열에서 살아남은 피렌체 시민들의 능력, 즉 피렌체인들과 그들의 조국 피렌체를 위대하게 만든 지성과 정선의 힘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열로부터 살아남은 소수는 피렌체를 약화시킨 그 사건들의 해악이 피렌체를 압도하지 못하도록 그 사건들이 보여준 자신들의 역량을 사용하여 피렌체를 고양시킬 수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후 피렌체가 단결을 유지할 수 있는 정부 형태를 획득할 수 있을 정도로 번영했다면, 내가 아는 현대나 고대의 어떤 공화국도 역량(virtu)과 군사력과 근면함으로 가득 찬 피렌체보다 우월할 수 없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렌체는 토스카나와 롬바르디아를 기벨린파로 가독 채울 정도로 많은 기벨린파를 확실하게 몰아냈으며, 캄팔디노 전투 일 년 전인 1288년 아레초와의 전쟁에서 구엘프파는 시민들 중에서 1천 2백 명의 전사와 1만 2천 명의 보병을 선발했던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피렌체인들은 기댈 군대가 없어서 그 대신에 자신들의 근면을 시험할 수밖에 없었던(이 당시에 군대가 다 소진되었으므로), 밀라노 공작 필리포 비스콘티와의 전쟁에서 5년 동안 350만 플로린을 사용했다. 전쟁이 끝난 후 피렌체인들은 평화에 만족하지 않고 도시의 힘을 더욱 과시하고자 루카에 있는 들판으로 진격했다. 그래서 나는 이 분열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만약 매우 저명한 그 저술가들이 자신들이 논구해야 하는 인물들에 대한 기억에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 자제했다면, 그들은 큰 실수를 한 것이며 자신뿐 아니라 조상들의 이름을 영원토록 기리고자 하는 인간의 야망과 욕망에 대해서도 거의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칭송받을 만한 행위로 명성(fama)을 얻을 기회가 없는 경우 경멸할 만한 일들로라도 그것을 얻고자 획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잊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자체로 위대한 행위는, 정부와 국가에 관련된 행동이 그러하듯,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든 혹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인간에게 항상 비난보다는 명예(onore)를 더 가져다주는 것 같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러한 일들을 숙고한 후, 나는 계획을 변경하여 역사 서술의 시작을 우리 도시의 기원으로 정했다. 다른 사람들을 대체하는 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므로, 1434년까지는 도시 내부에서 발생한 일들만 상세하게 묘사하고, 도시 외부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서는 내부의 일들을 아는데 도움이 되는 것만 말하도록 하겠다. 1434년 이후에 대해서는 도시 내부와 외부의 일 모두를 상세하게 기록하겠다. 덧붙여, 피렌체를 다루기 전에, 나의 역사 서술이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더 잘 이해될 수 있도록 이탈리아가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었던 세력권으로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지 먼저 설명할 것이다. 피렌체뿐 아니라 이탈리아에 관련된 일들은 네 권의 분량을 차지한다. 1권은 로마제국의 쇠퇴 이후 1434년까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예측 불가능했던 모든 사건들을 간략하게 말할 것이다. 2권은 피렌체의 시작으로부터 아테네 공작의 추방 이후 교황과의 전쟁까지를 다룰 것이다. 3권은 1414년 나폴리의 라디슬라오 왕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4권은 1434년까지 다루고, 그 이후 우리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피렌체 내부와 외부에서 발생한 일들을 상세하게 묘사할 것이다.  

제3권 

1. 민과 귀족 사이에 존재하는 심각하고 자연스러운 적대감은 귀족의 지배하려는 열망과 민의 복종하지 않으려는 열망에 의해 발생하는데, 도시 안에 발생하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이러한 상반되는 성향(umori)으로부터 공화국들을 뒤흔드는 모든 것들이 자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이것이 로마를 분열시켰고, 만약 큰 것에 작은 것을 견줄 수 있다면, 비록 로마와 피렌체에서의 효과는 달랐지만, 피렌체를 분열시켜왔다. 로마 초기에 평민과 귀족 사이의 적대감은 논쟁으로 해결됐지만, 피렌체에서는 전투로 해결되었다. 로마에서 평민과 귀족 사이의 증오는 법의 제정으로 귀결됐지만, 피렌체에서는 많은 시민들의 망명과 죽음으로 끝이 났다. 평민과 귀족 사이의 적대감이 언제나 로마에서는 군사적 역량(virtu)을 강화시켰지만, 피렌체에서는 완전히 그것을 말살시켜 버렸다. 평민과 귀족 사이의 증오가 로마에서는 도시의 시민들 사이의 평등을 매우 큰 불평등으로 바꾸었지만, 피렌체에서는 불평등에서 놀라운 평등으로 옮겼다. 이런 상이한 결과는 로마와 피렌체의 민이 가지고 있는 상이한 목적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로마의 민은 귀족과 함께 최고의 명예를 누리고자 했던 반면, 피렌체의 민은 귀족의 참여 없이 정부를 독점하고자 했다. 로마에서 민의 욕망은 더 합리적이고 귀족에 대한 공격도 더 참을 만하여 귀족은 쉽게 굴복하고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의 의견의 불일치 후에 그들은 민이 만족하고 귀족은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법을 함께 제정했다. 반면, 피렌체에서 민의 욕망은 모욕적이고 부당하여 귀족은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 더 큰 군사력을 갖추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희생과 망명이 발생했고, 이후 제정되는 법은 공익이 아니라 승리한 쪽에 유리하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로마는 법 제정 이후에도 민의 승리로 역량이 더욱 강해졌는데, 민이 귀족과 함께 행정관, 군대, 통치의 업무에 참여하면서 귀족들과 동일한 역량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도시는 역량이 성장하자 세력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렌체에서는 민이 승리하자 귀족의 행정권을 박탈당했고, 귀족이 권한을 되찾으려면 행동, 정신, 삶의 방식에 있어 민과 실제로 유사할 뿐 아니라 유사한 것이 드러나 보여야 했다. 이로부터 귀족은 민처럼 보이기 위해 군대의 기와 가문의 이름을 바꿔야 했다. 귀족에게 있던 군사적 능력과 정신의 관대함이 사라졌고, 이런 것들이 원래 없었던 민에게서는 나타날리 없었다. 따라서 피렌체는 더 비참해지고 비굴해졌다. 그리하여 로마는 미덕(virtu)이 교만으로 변하여 도시가 큰 고난에 처해서 군주 없이는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는 위대함의 극치에 도달했지만, 피렌체는 영리한 입법자에 의해 어떤 형태의 정부로도 쉽게 바뀔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피렌체의 탄생, 피렌체 분열의 원인, 피렌체 자유의 시작, 귀족과 민의 당파가 아테네 공작의 독재를 끝낸 방법, 귀족의 몰락을 보여준 2권을 읽으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제 포폴로와 평민 사이의 적대감과 그것이 발생시킨 다양한 사건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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