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티스트 구리나: 스토아주의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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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주의 - ![]() 장바티스트 구리나 지음, 김유석 옮김/글항아리 |
한국어판 서문 │ 서론
제1장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주의
Ⅰ. 학파의 역사와 진화
제논과 학파의 창립 │ 스토아학파: 클레안테스에서 파나이티오스까지
Ⅱ. 스토아 체계의 고전적 형식: 크뤼십포스
수련과 체계로서의 철학 │ 논리학 │ 윤리학 │ 자연학
제2장 로마 시대의 스토아주의(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Ⅰ. 서기전 1세기와 스토아주의의 탈중심화
Ⅱ. 계승과 혁신: 파나이티오스에서 세네카까지
Ⅲ. 스토아주의의 쇄신: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제3장 스토아주의의 후손들, 그리고 현재성
Ⅰ. 스토아주의의 유산
Ⅱ. 유스투스 립시우스와 학자들의 스토아주의
Ⅲ. 르네상스부터 18세기까지의 “신스토아주의”
Ⅳ. 스토아주의가 남긴 것
스토아학파 연표
부록 1│단순하지 않은 명제의 추론 분석
부록 2│스토아철학의 주요 개념들
옮긴이의 말 │ 참고문헌 │ 인명 찾아보기
13 "스토아주의stoicisme"라는 말은 보통명사인 동시에 하나의 철학 학파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전들은 그 철학 학파를 준거로 삼아 이 보통명사를 정의하고 있다. 예컨대 『리트레 사전』에 따르면, 스토아주의란 "고통 속에서 스토아주의자들이 보여줬던 것과 같은 그런 의연함"을 뜻한다. 그러한 스토아주의의 사례는 고대 스토아주의자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고문을 감내했던 에픽테토스라든가, 사형선고를 받고서, 눈물 흘리는 친구들을 위로해준 뒤 정맥을 끊었던 세네카가 그렇다.
그렇듯 고통과 축음 앞에서의 초연함을 다룬 일화들은 스토아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것을 보통명사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스토아주의의 대중적인 이미지, 그것은 그 자체로 현자의 이미지였다. 즉 "스토아식으로stoique" 머물 줄 아는, 다시 말해 고통과 죽음 앞에서 초연하고 의연하며, 자기 자신의 처지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든 차가운 머리와 고요한 정신을 유지하며, 쾌락과 부와 명예에 무관심하고, 무감동에 가까운 의연함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무엇보다도 운명을 감내하는 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스토아적인 지혜와 관련된 이러한 이미지들 가운데 몇몇은 물론 참이다. 그러나 그 지혜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고, 과장되거나 희화화된 이미지들 역시 적지 않다. 예컨대 스토아 철학자는 숙명론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안일한 논변"을 숙명론자의 논변이라하여 거부했다. 또 그들은 "마치 조각상처럼 무감각하게 있기"를 원치도 않았다.
스토아학파는 서기전 3세기 초에 키티온 출신의 제논이 아테네에 설립했다. 제논은 아고라의 주랑 아래에서 강의를 열곤했는데, 기둥들이 다채롭게 채색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을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te"(채색 주랑)라고 불렀다. 그의 초창기 제자들은 한때 "제논주의자들"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그들이 모였던 장소의 이름으로 그들을 부르는 데 익숙해졌고, 그런 이유로 이 학파는 주랑을 뜻하는 "스토아Stoa"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그 추종자들은 "주랑에 모인 사람들"을 뜻하는 "호이 스토이코이hoi stoikoi"라 불리게 되었다. 프랑스어에서도 처음에는 단순히 "스토아 사람들stoiques"이라고 말하다가, 17세기에 이르러 "만사에 무관심한 사람들"로부터 "스토아철학의 추종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스토아주의자stoiciens"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이 학파는 학원의 형태로 서기전 1세기까지 지속됐고, 그다음에는 로마제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서기 3세기 중엽에 사라졌다.
17 적극적인 철학 사조로서 스토아학파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스토아주의는 역사의 우연을 넘어 보편적인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여러 차례 다시 출현하기도 했는데,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그랬다. 그 이후로 스토아학파의 재출현은 문헌 독해와 함께 학파 설립자들의 학설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와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스토아주의 가운데 교의적이지 않은 개념들은 전문가들이 역사적 스토아주의를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개념적으로 그렇듯, 역사적으로도 스토아주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스토아주의, 즉 인내와 끈기, 무감동의 형식으로서 혹은 실존적인 태도로서의 스토아주의가 있다. 그런가 하면 학원의 역사와 함께했던, 고대의 철학 학파로서의 스토아주의가 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교의들에 대한 철학적 아바타들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다양한 스토아주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스토아주의들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된 본질도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토아주의"라는 말은 이 용어에 깃든 대중적인 의미에서 볼 때, 그 자체로 어떤 적법성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고대부터 스토아주의는 순수하게 이론적인 체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에픽테토스가 말했던 것과 같다. "만일 누군가가 내게 '크뤼십포스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부합하는 행동을 보여줄 수 없을 때 얼굴을 붉히게 된다"(『엥케이리디온』 49)
요컨대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실존적 태도로서의 스토아주의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철학적 학설로서의 스토아주의의 한 부분에 속하는 셈이다. 또한 실존적 태도로서의 스토아주의에 깃든 심오한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철학적 운동으로서의 스토아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하겠다.
189 그럼 지금은? 스토아주의와 관련해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철학학파로서 스토아주의는 과거의 철학이 되었다. 학파가 사라지면서 스토아주의는 자신을 묶어놨던 역사적인 우연들로부터도 자유로워졌고, 그럼으로써 사상적 본질만이 남게 되었다.
스토아철학은 매우 완결적이고 대단히 정합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자연학, 논리학, 윤리학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분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논리학에서 스토아주의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스토아주의주자가 되는데 필수는 아니라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아리스톤은 논리학을 거부했고, 세네카는 그의 학원에서 논리적 형식주의에 집착하는 모습을 비웃었다. 자연학과 관련해서 분명한 것은, 신적인 숨결에서 출발하는 스토아주의 학설의 많은 부분이 더 이상 별로 믿을 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논리학과 마찬가지로, 스토아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자연학을 믿는 것이 필수적인 일은 아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가 스토아적인 삶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섭리나 원자들의 존재를 믿는 것은 거의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않는다고 했다 (IV, 3, 5). "만일 인도하는 것이 신이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연이라면, 너 또한 우연하게 있는 셈이다."(IX, 28) 어떠한 것도 결정론과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믿음은 의심할 바 없이 스토아주의의 구성 요소다. 그러나 에픽테토스는 우리에게 달린 것과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을 구별하라고 주장하면서, 스토아주의 안에다 일정한 변화를 도입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내면의 자율성을 강화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스토아주의의 본질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들은 바로 그 도덕적 결론들이라 하겠다. 도덕에 있어서 스토아주의자들은 인간 삶의 목적이 본성에 부합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고유한 개별성을 지지하는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보편적인 관점에 종속시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는 분명 스토아주의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확신, 즉 우리 자신은 이 세계와 비교하여 거의 아무런 중요성도 없으며, 일상의 좋은 것들은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기에 부서지기 쉽고 무관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짐으로써 삶의 시험을 견뎌내는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유일한 좋음이 내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나머지 것들은 내가 그 주인이 아닌 이상, 나와 무관할 뿐이다. 적어도 이 역시 하나의 이론적 논제로서, 이 논제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그 영혼을 평화롭게 하는 기능을 목적으로 한다. 만일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건강하지 못할 때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만일 내가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 경우 나는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갖는 고유한 일관성 속에서 어떤 종류의 만족감, 어떤 종류의 위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무관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건강처럼 선호할 만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들은 건강한 상태가 아픈 것보다 낫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리에게 질병과 죽음을 견디는 수단들을 제공하고자 모색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철학이 그렇듯이, 그들의 철학 역시 그것들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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