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누스: 아름다움에 관하여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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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관하여 - ![]() 플로티누스 지음, 송유레 옮김/아카넷 |
‘정암고전총서’를 펴내며
작품 내용 구분
일러두기
약어
1장 아름다움의 다양성
2장 물체의 아름다움
3장 감각적 아름다움의 판단
4장 비감각적 아름다움의 경험
5장 비감각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6장 영혼의 아름다움
7장 거룩한 아름다움
8장 귀향
9장 심미안
주석
작품 안내
참고 문헌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9장 심미안
38 그렇다면 저 내적인 시각은 무엇을 보는가? 그것이 갓 일깨워졌을 때에는 밝은 것들을 전혀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영혼 자체가 우선 아름다운 행실을 보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다음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보는 데, 기술이 만들어 내는 것 말고, 이른바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을 보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고나서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영혼을 보라.
그렇다면 좋은 영혼이 어떤 아름다움을 갖는지 어떻게 너는 볼 수 있는가? 너에게로 되돌아가서 보라. 그리고 만약 네 자
신이 아직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면, 마치 아름답게 되어야만 할 조각상의 재작자처럼 조각상에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낼 때까지 여기를 깎아 내고 저기를 다듬고 이것을 매끈하게 하고 저것을 깨끗하게 하듯이, 그렇게 너도 넘치는 것은 모두 덜어 내고 굽은 것은 모두 펴고, 어두운 것은 모두 맑고 밝게 만들라. 그리고 신적인 덕의 광영이 네게 비치고, 절제가 거룩한 좌대에 좌정하는 것을 네가 볼 때까지 너 자신의 상(像)을 조각하는 작업을 멈추지 마라.
만약 네가 그렇게 되어서 그것을 보고, 순수하게 네 자신과 함께한다면, 아무것도 그런 식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막지 않고, 네 자신이 내적으로 어떤 다른 것과도 섞이지 않은 재, 네 자신 전부가 오로지 참된 빛이라면, 어떤 크기로도 측정될 수 없고 어떤 모양으로도 작게 한정될 수 없으며, 다시금 무한히 크게 증가될 수 없고, 오히려 모든 척도보다 더 크고, 모든 양보다 더 많기에 전적으로 측정 불가하다면. 만약 네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을 본다면, 네가 이미 시각이 되었고, 자신감을 얻었으며, 거기에 이미 올라가 있기에 더 이상 가리키는 자가 필요하지 않으니, 집중해서 보라. 왜냐하면 오직 그 눈만이 위대한 아름다움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악덕으로 인해 눈이 흐려진 채, 정화되지 않았거나 약한 상태로, 비겁함으로 인해 아주 밝은 것들을 볼 수 없으면서도 관조에 임한다면, 설령 다른 이가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한다. 사실, 보는 것은 보이는 것과 동류이자 닮은 것으로 만들어지고 나서 관조에 뛰어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눈도 태양을 닮지 않고서는 결코 태양을 볼 수 없듯이, 어떤 영혼도 아름답게 되지 않고서는 아름다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신과 아름다움을 보려 한다면, 실로 먼저 오롯이 신을 닮고 오롯이 아름답게 되도록 하라. 사실, 그는 올라가서 먼저 정신에 이르고, 거기에서 형상들이 모두 아름답다는 것을 볼 것이며, 아름다움이 이것, 즉 형상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은 그것들에 의해, 즉 정신과 존재의 산물들에 의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의 저 너머에 자리한 것을 '좋음의 본성'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아름다움을 자신 앞에 펼쳐진 것으로 지니고 있다. 그래서 거칠게 말해서 그것이 첫 번째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가지적인 것들을 구분하는 자는 가지적 아름다움은 형상들의 장소이고, 좋음은 저 너머에 자리한 것, 아름다움의 원천과 시원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는 좋음과 첫 번째 아름다움을 같은 곳에 놓을 것이다. 아무튼 아름다움은 저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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