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프라이스: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 10점
로저 프라이스 지음, 김경근, 서이자 옮김/개마고원

- 서문

제1부 - 중세 및 근대초 프랑스
1. 산업화 이전 프랑스의 인구와 자원
2. 중세 프랑스의 사회와 정치
3. 근대 초 프랑스의 사회와 정치

제2부 - 이중혁명 : 근대 및 현대 프랑스
4. 혁명과 제정
5. 19세기 : 지속과 변화
6. 위기의 시대, 1914~1945
7. 재건과 혁신 : "영광의 30년"과 그 후

-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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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라는 실체는 수백 년에 걸친 긴 변화의 산물이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지역들이 군주, 각료 그리고 군인들의 정치적 행동과 영토 확장욕구에 의해 통합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미리 예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 과정이 단선적으로 전개되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설명하는 데 목적론적 접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중심축은 일-드-프랑스(파리를 둘러 싼 주변지역)에 비교적 강력한 국가가 출현하여 그 권위를 확장해 나간 과정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과제이다. 

12 여기서 제기되는 중심 문제는 정치권력에 관한 것으로서, 그것이 왜 중요한가? 누가 소유했는가?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이용되는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또 인민들은 지배자의 행동, 예를 들어 지주나 기업가들이 자원을 요구할 경우, 아니면 국가기구의 징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등이다. 집단적 저항의 가능성은 권리와 정의에 대한 기존의 인식, 조직 역량, 항의의 기회, 성공 가능성 혹은 탄압에 대한 전망에 따라 결정되고 사회구조 및 관계와 제도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정치적 변화는 왜 일어나는가? 

그것은 명백히 정치구조와 행동뿐 아니라 사회체제와도 관련된 문제이다. 실로 사회질서란 국가 활동뿐 아니라 가족과 지역공동체를 포함 종교 · 교육 · 자선기구, 그리고 토지 · 노동 관계 등을 통해 짜여지는 광범위한 사회제도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빈곤층에 만연한 무력감과 그들에게 요구되는 인내는, 비록 공공연한 대립으로 표출되지 않을지라도 사회 · 정치적 긴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가가 행사하는 통제의 형태는 주로 일상 생활에서의 태도, 말하자면 사회구조뿐 아니라 연령과 집단의 관계 그리고 국가와 사회 엘리트들이 활용하는 자원에 의해 결정된다. 일부사회집단이 항상 역사 연구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어떤 집단들은 무시된다. 그러나 유행은 바뀌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남성 역사가들은 성에 맹목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 문제에 관해 분석적 범주로서의 성에 반대해 공동체나 계급의 미덕을 칭송하거나, 아니면 성을 하나의 개념으로서 프랑스사에 도입하는 문제를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여기서는 명백한 사실 즉 남성과 여성은 공동의 체험뿐 아니라 각기 고유의 체험을 가지며, 성에 관한 인식은 경제적 · 사회적 · 정치적 담론의 전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역사가는 "성에 의해 규정된 어떤 체험도 더 광범위한 사회적 · 경제적 틀 속에 통합시킨다"는 (0. 후프턴)는 목표를 품어야 할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 책에서 우리가 무시하게 될 또 하나의 측면은 공간에 관한 것인데, 이는 과거 브로델이 역사와 지리의 결합이라는 프랑스의 전통을 반영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바 있다. 반면 경제와 정치 활동 및 사상의 전파를 제한하거나 촉진시키는, 교통과 통신의 본질적인 중요성은 이 책에서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짧은 서문의 주된 목표는 프랑스 역사에서 어떤 연속성을 생각해봄으로써 논의의 장을 꾸며보는 것이다. 

14 프랑스(근대 프랑스의 경계를 기준으로 할 때)의 분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리적 다양성이다. 지리학자 필리프 팽슈멜은 프랑스를 다섯 개의 지역으로 구분했다. 우선 온대 해양성 지역인 북서부는 방데에서 샹파뉴에 이르는 저지대로서 강우량이 풍부하고 비옥한토양이 두껍게 덮여 있다. 북동부지역은 석회암 케스타 지형의 고원지대로서 비옥한 토양과 척박한 토양이 섞여 있는 곳으로 심한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평야, 언덕, 고원으로 이루어진 남서부 지역은 남동부에 비해 목초지가 더 많으며 비옥하고 암반 지형도 드물다. 남동부는 리무쟁에서 프로방스 평원, 루시옹에서 사온 강유역의 평원에 이르는 지역으로서 팽슈멜은 이 지역을 척박한 석회암 고원, 가파른 비탈 사이로 소규모의 비옥한 평야와 계곡이 간헐적으로 산재한 지중해성 기후의 "다채로운 지형으로 가득 찬 모자이크"라고 묘사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는 중부 산악지대, 쥐라, 알프스 그리고 피레네 등 산악지역으로서 토양이 척박하고 생육 기간이 짧으며 인간과 재화의 이동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크게 보면 북부는 온화한 기후에 속하고 남부는 고온 건조한 여름 날씨의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지만 산악 지형 때문에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하며 특히 북부의 기후적 특징이 남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게다가 내륙으로 갈수록 해양성 기후의 특징은 대륙성 기후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결국 기후 면에서 프랑스는 지역적 편차가 크며 계절에 따라 기온과 강우량이 불규칙하다는 특징을 나타낸다. 선사 시대 이래로 생산성이 낮은 농업체제와 지역적 고립이 지속되었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불리한 기후 조건, 즉 북부의 다습한 여름과 남부의 가뭄은 빈지들에게 식량기근, 나아가 그 이상의 위험을 초래했다. 부족한 자원의 관리와 토지 및 식량공급의 확대라는 중심 문제는 갈수록 절박해졌다. 기근은 사회적 긴장을 강화시킴으로써 중대한 정치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16 규모상의 변화는 있었을 망정 중세 말 이래 정착의 기본 구조는 대단히 영속적이었다. 두터운 울타리나 화강암 벽은 토지의 경계 표지이자 동물들에 대한 보호막이었으며 종종 복잡한 지하통로를 통해 들판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노르망디 저지대와 브르타뉴, 앙주, 멘 그리고 방데에서는 저지대의 곡물 경작이 고지대의 목축 및 숲 자원의 활용과 결합된 독특한 형태가 나타났다. 경작방식보다는 토양의 구조와 천연자원이 해당지역의 인구 부양 능력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인구밀도도 생활 수준만큼이나 편차가 컸다. 또한 비록 근대적 요소들이 첨가되긴 했지만 전통적 건축양식은 과거 지역적 특성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철도, 자동차 수송 그리고 수송 비용의 감소는 건축자재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건축의 획일성을 초래했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벽돌과 콘크리트가 석재나 목재를 대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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