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시영: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 읽기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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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 읽기 - ![]() 문시영 지음/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머리말·5
I. 왜, 『삼위일체론』인가·11
1. 『삼위일체론』을 읽는 이유·11
2. 『삼위일체론』의 구조와 흐름·23
II. 『삼위일체론』, 힘닿는 데까지·29
1. 오류를 넘어서 (I-VII권)·29
2. 안으로 들어가라! (VIII-XIV권)·56
3. 영원을 향하여 (XV권)·90
III. 『삼위일체론』, 교리에서 윤리로·101
1. 사변적 교리에서 실천적 윤리로·101
2. 『삼위일체론』, 은혜의 관점에서 ·110
13 『삼위일체론 De Trinitate』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큰 의의가 있다. 『고백록』이 열정의 책이라면, 『삼위일체론』은 정제된 책이다. 그가 복음에 의해 회심하였을 때, 감격과 열정을 담아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라면, 그토록 감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표현한 것이 되는 셈이다.
질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삼위일체'인가? 아우구스티누스가 만난 기독교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 아니신가? 맞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부인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유일신론'은 자연종교에도 해당한다. '삼위일체'는 계시종교의 진리로서, 기독교의 정체성이자 근간이다.
다시 말해, 삼위 일체론은 의도적으로 고안된 사변적 장난이 아니다. 또는 초대교회 역사에 나타난 이단과의 논쟁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 삼위 일체론은 교회가 고백한 신앙의 내용이다. 물론, 기독교 교리 확립 과정에서 이단과의 논쟁이 불가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혹은 고안된 별도의 장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15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공인되었고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확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의 신앙 고백인 사도신경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구원의 관점에서 고백하고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강복을 선언하는 것도 삼위일체론이 교회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론은 성경에서 비롯된다. 창세기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 삼위일체의 근거들은 삼위일체론이 철학적 사변의 결과물이 아님을 말해 준다. 우선,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오실 것을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6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의 정체성에 속한다. 여타의 자연종교에서는 삼위일체를 말하지 않는다. 아니, 관심이 없거나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은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 고유 신앙에 속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론은 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다.
17 단일신론, 군주신론, 양태론,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 로고스 등등 대학원 시험이 단순 암기 내지는 연결형으로 치러졌던 추억은 지금도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할 정도이다. 게다가 이레네우스, 터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등 교부들의 이름까지 결합하면 시험문제는 더 복잡해졌던 것 같다. 다소간 복잡한 역사적 과정들을 통해 삼위일체의 기본적인 개념들과 기본구도가 자리를 잡은 셈이다.
18 오리게네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성부만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아닌 존재로 설명하였다.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시라는 고백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 『삼위일체론』을 읽어 가면서, 삼위일체 교리의 형성과정에 나타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사상적 발전을 엿볼 수 있다. 동방교회의 오리게네스, 사벨리우스를 비롯하여 아리우스파와 니케아 신조 사이의 대립에 나타난 신학적 논변은 물론이고, 서방교회의 터툴리아누스, 노바티아누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참고했던 힐라리우스 등에 이르기까지 교부들의 이름이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논쟁에 동장한다.
20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교회가 말하는 ‘하나의 본질, 세 위격'을 수용한다. 교회는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본질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의 관점이 신앙고백에 더 적합하다고 인정했지만, 이것을 좀 더 분명하게 확립할 필요가 대두되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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