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모비 딕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4. 3. 21.
모비 딕 -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작가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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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배
109 '피쿼드'는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지금은 고대 메디아 사람처럼 절멸한 매사추세츠의 유명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었다.
109 '피쿼드'호는 좀 작은 구식 배였는데, 갈고리 모양의 다리가 달린 구식 가구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사대양의 태풍과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단련되고 비바람에 시달리며 얼룩진 선체의 빛깔은 이집트와 시베리아에서 싸운 프랑스 척탄병의 얼굴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오래된 뱃머리는 턱수염이 난 것처럼 보였다. 돛대들은 옛날 쾰른의 세 왕의 등뼈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낡은 갑판은 토머스 베케트가 피를 흘려 죽은 뒤 순례자들의 경재 대상이 된 캔터베리 대성당의 포석처럼 닳고 주름져 있었다.
110 고귀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한 배! 고귀한 것들은 모두 그런 기미를 띠고 있는 법이다.
41장 모비딕
241 한 뼘 길이의 칼날로 한 길 깊이에 있는 고래의 생명에 닿으려고 애썼다. 그 선장이 바로 에이해브였다.
242 에이해브는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낀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그 고래의 하얀 혹 위에 쌓아 올려, 마치 자기의 가슴이 대포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뜨거워진 포탄을 그곳에다 겨누고 폭발시켰던 것이다.
245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백발노인, 증오심에 가득차서 욥의 고래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노인이 있었고, 그의 부하 선원들은 주로 더러운 배반자와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그리고 식인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14장 도금장이
585 "아아, 풀이 우거진 숲 속의 빈터여! 아아, 영혼 속에 끝없이 펼쳐진 봄날 풍경이여. 그대 안에서 ━ 지상 생활의 지독한 가물에 시달려 이미 오래 전에 바짝 말라버렸지만 그대 안에서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클로버 밭에서 뒹구는 망아지들처럼 뒹굴 수 있고, 덧없이 지나가는 몇 분 동안이나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차가운 이슬을 몸에 느낄 것이다. 하느님, 이 축복받은 평온이 오래 지속되게 해주옵소서. 하지만 뒤섞이고 뒤엉킨 삶의 실오라기는 날줄과 씨줄로 엮이고, 평온한 날씨는 반드시 폭풍과 교차한다. 우리의 삶에도 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해진 단계를 거쳐 나아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즉 유년기의 무의식적인 도취, 소년시절의 맹신, 청춘시절의 의심 (모든 사람에 게 공통된 운명), 이어서 회의, 그다음에는 불신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만약에'를 심사숙고하는 성년기의 평정 단계에서 정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 단계를 다 거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가서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 '만약에'를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닻을 올리지 않을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지친 사람도 싫증내지 않을 세계는 어떤 황홀한 창공을 항해하고 있는가? 버려진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우리의 영혼은 아이를 낳다가 숨진 미혼모가 남긴 고아와도 같다.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비밀은 어머니의 무덤 속에 있으니, 그것을 알려면 무덤으로 가야한다."
132장 교향곡
643 스타벅! 얼마나 잔잔하고 온화한 바람인가. 그리고 얼마나 온화해 보이는 하늘인가. 이렇게 좋은 날 - 정말로 이렇게 아름다운 날 나는 난생처음 고래를 잡았지. 열여덟의 소년 작살잡이었어. 40년... 40년... 40년 전이야. 옛날이지! 40년 동안 계속 고래를 잡았어. 40년 동안의 고난과 위험과 폭풍우, 40년 동안 냉혹한 바다에서 살았지. 40년 동안 에이해브는 평화로운 육지를 버렸고, 40년 동안 바다의 공포와 싸웠다네 정말이야, 스터벅. 그 40년 가운데 육지에서 보낸 날은 3년도 안 돼.
644 사람이라기 보다는 악마야! 아아! 얼마나 어리석은 40년이었던가! 바보. 늙은 에이해브는 얼마나 바보였던가! 고래를 추적하는 이 투쟁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왜 지치고 마비된 팔로 노를 젓고 작살을 잡고 창을 던지는가? 지금 에이해브는 얼마나 더 부유해지고 더 좋아졌는가?
644 오오, 선장님! 고귀한 영혼이여! 위대한 정신이여! 그 가증스러운 고래를 무엇 때문에 추적해야 합니까? 저와 함께 갑시다! 이 치명적인 바다에서 도망칩시다! 집으로 돌아갑시다! 스타벅에게도 처자식이 있습니다. 형제자매처럼 정답고 어린 시절의 놀이친구 같은 처자식입니다. 선장님은 늘그막에 얻은 처자식을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깊이 사랑하고 간절히 보고 싶어 하시죠! 갑시! 함께 돌아갑시다!
645 이건 뭐지?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 같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이것은 도대체 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만적인 주인, 자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등지도록 강요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줄곧 나 자신을 떠밀고 강요하고 밀어붙인다. 내 본연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짓을 기꺼이 하도록 무모하게 몰아세우는 것일까?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하지만 위대한 태양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는 심부름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면, 스스로 회전할 수 있는 별은 단 하나도 없고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모든 별을 움직인다면, 이 보잘것없는 심장은 어떻게 고동칠 수 있고, 이 작은 두뇌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니라 신이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두뇌를 돌아가게 하고,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다. 이보게, 우리 인간은 저기 있는 양묘기처럼 세상을 빙글빙글 돌려지고, 운명은 그 기계를 돌리는 지레라네. 저 미소 짓는 하늘과 깊이를 잴 수 없는 바다를 보라! 저기 있는 다랑어를 보라! 다랑어가 저 날치를 쫓아가서 물어뜯게 하는 것은 누구인가? 살인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재판관 자신이 법정에 끌려나와 재판을 받게 되면 판결은 누가 내리는가? 하지만 참으로 온화한 바람이고, 온화해 보이는 하늘이구나. 공기는 이제 머나먼 초원에서 불어온 듯 향기롭구나.
134장 추적 - 둘째날
667 에이해브는 영원히 에이해브야. 이 법령은 모두 그대로 공포되고, 절대로 변경할 수 없어. 그건 이 바다가 물결치기 10억 년 전에 자네와 내가 예행연습을 마친 거야. 바보 같으니! 나는 운명의 부하다. 나는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135장 추적 - 셋째날
672 내 영혼의 배는 세 번째로 향해를 떠난다네, 스타벅.
예, 선장님은 그걸 원하시겠지요.
어떤 배는 항구를 떠난 뒤 영영 행방불명이 된다네, 스타벅
그건 사실입니다, 선장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어떤 자는 썰물에도 죽는다. 어떤 자는 얕은 물에도 빠져 죽고, 어떤 자는 홍수에도 죽는다. 나는 지금 가장 높은 물마루에 도달한 파도 같은 기분일세. 스타벅, 나는 이제 늙었네. 자, 악수하세.
그들은 손을 맞잡고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스타벅의 눈물은 끈적끈적한 아교 같았다.
681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관도, 관대도 모두 같은 웅덩이에 가라앉혀라! 어떤 관도, 어떤 관대도 내 것일 수는 없으니까. 빌어먹을 고래여, 나는 너한테 묶여서도 여전히 너를 추적하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다. 그래서 나는 창을 포기한다!
683 이제 작은 바다새들이 아직도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소용돌이 위를 울부짖으며 날아다녔다. 음산한 흰 파도가 그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에 부딪혔다. 이윽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바다라는 거대한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결치고 있었다.
에필로그
683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 [욥기]
연극은 끝났다. 그렇다면 또 누군가가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난파에서 한 사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684 둘째 날, 배 한 척이 다가와서 마침내 나를 건져주었다. 그 배는 구불구불 항해하고 있던 '레이첼'호였다.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 헤매다가 엉뚱한 고아를 발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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