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5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2
- 강의노트/책을 읽다보면 2017-18
- 2018. 11. 8.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arte(아르테) |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1027_51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2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앞서서 사실 인간은 오랜 진화의 결과로 인간은 어려운 과제를 뒤로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고 한다. 미적미적하는 것.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앞서서 철학이란 뭐고 무엇을 배우는가. 책을 펼치면 처음에 에코가 왜 철학인가라는 글을 10페이지 정도 써놨다. 실망인 것이 철학은 무엇이고 무엇을 배우는가를 써야 하는데 '왜 철학인가'라고 했다. 이런 질문은 처음이다. 사실 철학이라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쓸모없는 학문이고, 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마해온 것이긴 한데 무엇을 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다. 에코도 '왜 철학인가'에서 첫 문장이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는 어원적인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사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로워진다."고 써놓았다. 75학번도 아니고 75년부터 교수를 한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니다. 입학할 때는 이런 것을 배우겠지 하고 기대하고 들어가는데 졸업할 무렵에는 저런 걸 배우는 것이다. 그만큼 시대적인 이유가 있다. 에코의 '왜 철학인가'의 두 번째 문장이 "철학이라는 말의 의미 역시 수세기에 걸쳐 다양하게 변화했다." 말의 의미가 변화했다는 것은 철학이라는 학문 영역에서 다루고 있는 영역의 내용이 변화했다는 얘기겠다.
8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는 어원적인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사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그 이유는 물론 철학이라는 말의 의미 역시 수세기에 걸쳐 다양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철학의 본질을 가장 드러내는 텍스트 중에 하나가 노자 <도덕경>의 11장이라고 생각한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비어있는 바퀴 통 하나가 있으니까 그 바퀴 통이 비어있기 때문에 바퀴살이 쓸모가 있다. 그 비어있는 것이 핵심. 뭔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비어 있어서 핵심인 것. 그 다음이 흙으로 빚어 그릇을 만드나 그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빈 곳에 뭔가를 담으니까 그릇이 쓸모가 있고, 그 다음이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드는데, 그 내부가 비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이것을 다 총괄해서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이 이롭다 하려면 없는 것이 그 이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이다.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비어있는 것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비어있는 것이 철학이라기 보다는 그릇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물이 있는데 물을 생각의 컨텐츠라고 한다면 그것을 종이컵에 담는 것과 도자기에 담는 것이 다르다. 어떤 방식으로 담을 것인가. 이 컵에 담으면 훨씬 더 쓸모 있을거라는 컵을 만들어주는 학문이 철학이 아닌가 한다. 어떤 그릇을 또는 어떤 축대를 또는 어떤 방을,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이런 방에서 살며 좋아요 라며 방을 만들어주고 할 때 설계도를 그리고 어떤 재료로 집을 짓고 하는 것에 대해서 설계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는 학문이 철학이 아닌가 한다.
그래도 이제 철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보자. 다른 데에서는 하지 않는 고유한 것이 있는데 크게 보면 일단 윤리학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가. 제대로 사는 것에 대한 기준. 윤리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져 있는 것이라 보는데 악인의 수가 늘면서 점차 이런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가라고 물었는데 예전에는 어떻게 살아야 착하게 사는가를 물었다. 질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것일 수 있다. 착한 일을 하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은 틀린 것이다. 물음이 좀 더 중립적이고 좀 더 근원적으로 내려갔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윤리학의 주제인데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닥친 문제일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해야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는지 조언하는 게 철학이겠다.
두번째로 지금 제대로 사는 것이 뭐냐고 물었을 때 물음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음을 구성하는 원리나 테크닉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만들어지는 우리의 대답과 앎,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인식론이다. 윤리학과 인식론이 철학의 2대 분과이다. 요즘에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예전에는 철학자들의 연구 영역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뇌과학이나 인지과학의 영역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데카르트의 <성찰>에 나와있는 우리 뇌에서 이런 것이 작동한다는 얘기들이 다 폐기되고 인지과학으로 넘어갔다. 성선설이나 성악설도 한 때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식론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어졌는가. 그것은 아니고 아직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을 철학이 천착하기도 하지만 과연 우리의 앎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고 없어지고 또 전달되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의미가 있을까는 여전히 따져 묻을 수 있겠다. 인식론이라는 학문이 순수한 의미에서 과학이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식으로 사회 속에서 집단 속에서 반응하는가도 따져 묻을 수 있으니 요즘에는 이런 쪽으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어렵고 대답도 없는데 계속 붙들고 있는 문제가 '나는 누구인가'이다. who are you가 아닌 what are you가 본질을 묻는 것. 항상 우리가 자기자신에 대해서 규정할 수 있는 요소를 다 동원해도 뭔가 남는 것이 있다. 이것이 종교와 철학의 차이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는 '너는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안된다. 너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고, 이미 정해져 있다. 깔고 들어가는 것이 있다. what is를 하는 것이다. 철학의 근본물음이다. 윤리란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하는 윤리적인 행위, 인식 추구활동,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적 인간학이라고 하기도 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넓혀보면 존재란 무엇인가가 된다. 존재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따지기 시작하면 존재론이고, 초월적인 영역과의 관계 속에서 따지면 형이상학이다. 이것이 세 번째이다.
윤리학의 물음, 인식론의 물음, 그리고 존재론의 물음 이렇게 세 가지가 철학 고유의 학문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런 물음들에 대해서 간단히 한번 읽어본다고 하면 에드워드 크레이그의 <철학>이라는 책이 있다. 옥스퍼드 A Very Short Introduction시리즈에 나온 책으로 참조해보면 좋다.
다음 주부터는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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