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5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10점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arte(아르테)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1020_50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오늘부터 읽을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이다. 전부가 아니라 '고대 중세'편인 1권이다. 여러 명의 학자들이 쓴 책이고, 읽어볼만한 부분을 정해서 읽어보려고 한다. 원제가 Storia Della Filosofia, 철학의 역사다. 번역본에 '경이로운'을 넣어놨다. 모든 인간은 앎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경이로운'이다. 철학의 역사가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철학을 하는 것이 경이로운 일이다. 움베르트 에코 아래를 보면 저자 중에 리카르도 페드리가가 있다. 에코가 너무 알려져서 그렇지 이 분들도 초일진이다. 


이 책 자체가 경이로운 게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쓴 글을 모아서 두툼한 철학사를 만들어낸 것을 본 적이 없다. 에코급은 되어야 이런 책이 나오는 것. 보통 철학사라는 장르라는 것 자체가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사를 쓴 사람이 헤겔인데 필생의 업적처럼 한 사람이 쓴 것이다. 즉 철학사를 쓴다고 하는 것 자체가 나의 철학을 선대의 철학자들의 철학을 빌려서 나의 철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대개 철학사를 쓴다. 헤겔이 특히 시초로 해버리는 바람에 한 명의 철학자가 철학을 보는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두고 저술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헤겔 이후에 철학사로는 유명한 것이 현대 철학사로는 빈델반트 철학사가 있다. 빌헬름 빈델반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가톨릭 신부이기도 한 코플스턴 철학사도 있다. 코플스턴 철학사는 원서로도 10권 분량으로 따로 나왔다. 90년대를 풍미했던 힐쉬베르거 철학사도 있다. 빨간 책으로 속된 말로 간지가 있는 책으로 석박사과정 때 교과서였다. 그 다음에 철학사라고 하면 러셀 철학사가 있다. 사실 러셀 철학사는 흔히 말하는 정통 철학사 장르에서 보자면 에세이에 가깝다. 러셀의 특징이 좋은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다. 주관성이 강하고, 에세이에 가깝다. 은사께서는 어떤 철학자에 대해서 공부할 때 그 사람의 편에 서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는 보기 드문 형식을 가지고 있다. 철학의 이론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철학사라기 보다는 특정한 시대상황 속에서 철학이론의 등장한 배경이나 그 배경 속에서 그런 자신들이 직면한 현실을 당대의 지성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태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과 당대의 지성들이 중요하다고 여긴 사태들이 다르다, 그런 것을 다루는 것을 지성사라고 한다.


철학사, 지성사, 사상사. 일단 우리는 지성사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예수가 가르친 것이 철학사야, 지성사야, 사상사야, 또는 신학사야 라고 물어보면 그것에 대해서 대답할 때 “예수가 태어났을 때 역사적 상황이 어떻지”라고 물어보기 시작하면 지성사적인 탐구가 시작하는 것이다. “그 양반이 무슨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어느 시대 어느 동네에서 나온 말이야”라고 묻기 시작하면 지성사이다. 그런데 성서 요한복음을 읽었다고 할 때 요한이 썼는지 누가 썼는지 알 것 없고 그냥 텍스트 자체의 논리적인 정합성이라든가 술어의 정밀함이라든가 이런 것만을 따지면 철학사이다. 사상사는 이 텍스트가 어떤 텍스트에 영향을 받았냐, Q문서가 있었냐, 마태 특수문서와는 어떤 관계가 있었나 이런 텍스트들끼리의 대화를 따져 물으면 사상사가 된다. 예수의 사유는 철학적 관념적 개념적 사유는 아니었기 때문에 지성사로 읽는 것이 좋다. 


가령 게리 윌스가 말하는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라든가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이런 책은 다 지성사에 속한다. 지성사를 읽으면 화끈한 맛은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맥락 환원주의에 빠질 수 있다. 그 시대의 그 장소이니까 그런 얘기가 가능한 거 아냐, 지금은 시대와 장소가 달라졌으니 굳이 읽을 필요가 없지 않아 이렇게 되어버린 것. 지성사에서 출발해서 철학사를 가야한다. 그 다음에 아주 독창적인 것은 아닐 테니까 전후 맥락의 사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상사까지 보면 완성이 되는 것. 예수를 읽을 때 지성사적인 접근이 없으면 공허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성사만 읽고 끝내버리면 그냥 옛날 얘기, 위인전이 되고 만다.


철학의 역사는 발전하는 역사인가. 발전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질문을 했을 때 그러면 말이죠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기 전에 물어보는 말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는 역사인가. 물질문명의 특징에서는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악인의 숫자는 비율로 봐도 늘어났다. 인간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학도 발전하지 않고, 사상과 관련된 모든 학문은 인간의 발전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특정 시기에는 인간이 놀랍게도 발전했고, 그러면 철학도 발전하는 것.


이 책이 제시하는 철학이론들이 있다. 그것을 충실하게 소화해서 집약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지성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맥락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에코가 사실 지성사에 강한 사람이니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이론적인 사유보다는 시대적인 맥락이 강점이다. 이 책이 두꺼우니 꽤 오래 읽게 될 텐데 이 책을 읽어보려는 까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전화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한국사회가 문명의 대전환기는 아니지만 해방 이후에 한국 현대사가 70년 정도 진행되면서 기본 바탕에 놓여있던 사회적인 토대들이 바뀌고 있고 민주정에 대한 생각도 자각적으로 민주정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뭔가 다른 방식의 사유 틀이 제시될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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