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5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5
- 강의노트/책을 읽다보면 2017-18
- 2018. 12. 2.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arte(아르테) |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1117_54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5
철학에서는 신화에서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어 있다. 사실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철학개론 책을 보면 철학은 신화적 사유에서 벗어나서 이성적 사유로 이행하면서 발생하였다고 말한다. 철학은 신화적 사유를 팽개치는 것이 철학인데 철학 연구자가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철학연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예전에 <철학고전강의>를 하면서 왜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 라고 생각해서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를 철학책으로 읽어 본 적이 있다.
철학은 세상의 근본원리와 삶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풀어간다면 신화라고 하는 것은 상징들을 놓고 꾸며낸 이야기. 둘이 서로 독자적인지 병존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간섭할 수 없는 영역에 각자 놓여있는 것인지 철학은 신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에서는 신화가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신화를 단순하게 옛날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고, 뭔가 권위있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고, 시대에 따라서 의미가 달리 제시되고 그에 따라 여러 측면에서 신화가 재조명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신화라고 하면 헛된 이야기라는 패턴을 버리고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와 같은 고대 서사시의 시대에는 미토스라고 하면 권위있는 사람이 말하는 권위있는 이야기였다. 그냥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뭔가 이것은 쎈 이야기였다. 당연히 거기 나오는 얘기를 따라서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는 굵고 짧게 인생을 살았다. 희랍의 젊은이들이 아킬레우스를 본받아 굵고 짧게 살겠다는 것이 당연한 삶의 본으로 권장되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나 플라톤, 투키디데스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신화를 따르면 안된다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게 철학의 시대이다. 그래서 플라톤의 <국가>를 보면 신화의 귄위를 이야기하는 게 시인이다. 대개 오해하는 것이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문학과 예술을 증오한 사람이라는 패턴으로 이해되는데, 그것이 아니라 사실은 플라톤과 호메로스의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즉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는 서사시의 권위를 폐기하고,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철학의 이야기를 들어라 라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종의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담론을 무엇으로 교체할 것인가 하는 담론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것을 시인 추방론으로 이해하면 안되고 신화적 권위에서 벗어나서 철학적 귄위로 대체하려는 시도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43 그리스 문학의 태동기, 즉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대에 '신화'는 허구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사건들로 가득한 '담론' 혹은 '이야기'가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권위 있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44 신화란 결국 귄위 있는 인물들의 발언으로 전달되는 귄위 있는 담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희랍에서는 신화라는 것이 굉장히 권위있는 이야기였는데 중세에 들어와서는 당연히 기독교의 시대가 되었으니까 하느님 이외의 신에 관한 이야기가 우화, 웃기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를 거치면서 신화라고 하는 것은 누가 말해도 그냥 헛된 이야기이고, 성서에 나와있지 않은 것은 다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탈리아의 비코와 독일의 시인 하이네가 신화라고 하는 것이 헛소리가 아니라 상징적인 이야기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이다. 상당히 복잡하고 세련된 동시에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런 것들을 파헤쳐 내는 것이 고대의 지혜를 되살리는 것이다 라고 한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이라는 책이 있다. 역사철학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책인데 이 책이야말로 신화적 사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거기에 들어있는 상징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되살려낸 것이다.
44 신화라는 말이 근대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피려면 먼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의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가리키기 위해 신화라는 단어 대신 우화, 즉 라틴어의 '파불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44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그리스어 mythos를 18세기에 다시부활시킨 인물은 이탈리아의 비코와 독일의 하이네다. 18세기 이후로 신화라는 용어는 다난한 변신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제 '신화'는 더 이상 환상적인 이야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세련된 동시에 매력적인 의미를 내포하거나 상징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독일 사람들은 신화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가진 상징적인 측면에 주목을 했다는 것에 그치면 되는데 독일사람들은 약간 더 나아간다. 도이칠란드 우월주의에 빠져드는 경향에 있었다.
과학 혁명의 시대에 들어서면 두 가지 양상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하나는 이것도 나름대로 고대적인 이성적 사유의 방식이 있다고 하여 그것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노선이 있고, 다른 하나는 그저 단순히 여흥으로 즐기던 것일뿐이다 라고 하여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타협을 해서 신화라는 말이 굉장히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어떤 사람이 신화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우리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냥 옛날 이야기라는 의미로 쓸 수도 있고, 단순한 헛소리로 보는 사람도 있고, 또는 하나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 전통적인 이야기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또는 특정한 상황 맥락에서는 의미가 있었을 전통적인 이야기로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 희랍에서는 신화가 권위있는 이가 말하는 권위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권위가 그 이야기를 통해서 펼쳐졌는가를 얘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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