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5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9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10점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arte(아르테)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1215_58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9

철학 이야기를 하면서 원리와 원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성삼위일체를 들어서 굳이 이야기하면 성삼위일체에서 성령이 원리에 해당할 테고 원질은 성부와 성자가 원질일 텐데 성부가 먼저이고, 그것이 자기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상황에 따라서 변형된 것이 성자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라는 사람은 무엇을 탐구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 궤변론자라고 불리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일파 사이의 이른바 진영대결에서 처음으로 철학의 역사에서 부각되었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의 다툼에는 속된 말로 '어깨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 일파와 당시 철학자로 자처한 사람들의 논쟁 이전에 무엇이 철학적인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글의 형식을 둘러싼 것이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 같은 사람들, 즉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신들의 계보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문학작품이다. 철학과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산문시에 속하는 것인데 어중간한 사람들이 있다. 파르메니데스라든가 엠페도클레스는 철학자로 분류된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는 철학자로 분류되고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는 시인으로 분류되는데 그 사람들이 사용한 글의 형식은 똑같다. 내용이 이쪽은 철학적이고 저쪽은 서사적이고 시적이다. 형식이 같기 때문에 내용을 앞에 넣어서 이 사람들은 신화적 서사시, 이 사람은 철학적 서사시 이렇게 분류한다.


67 '철학적 서시시'는 문학과 철학의 중간에 위치하는 특별한 장르를 가리키는 말로, 좀 더 정확하게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처럼 6행 단위로 쓰인 장편의 철학적 산문시를 가리킨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의 논쟁은 본격적으로 내용에 관한 것이라면 이것은 형식에 관한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나 엠페도클레스는 <자연에 관하여>라는 글을 썼는데,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뜻도 있다. 사태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설명은 서사시처럼 6행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를 끝으로 해서 그게 끊어졌다. 그래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형식으로는 철학적인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꽤나 오랫동안 시의 형식으로 철학책을 쓰는 것이 고대 아테나이에서는 엠페도클레스 이후로는 없어졌다. 그러다가 로마의 루크레티우스가 다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썼는데 이 전통을 되살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가령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엠테도클레스는 고대 아테나의 철학자로 나오는데 루크레티우스는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로 나온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시로 규정하는 것이다. 다시 철학적인 서사시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적 서사시가 엠테도클레스의 전통을 되살린 것인데 그런데도 엠테도클레스는 시인이라는 호칭을 받지 않고 루크레티우스는 시인의 호칭을 받는다.


74 로마에서는 루크레티우스가 에피쿠로스 철학과 6행 서사시를 접목시킨 형태로 마지막 철학적 서사시를 쓰게 된다.


서기전 6세기 소크라테스 무렵에 등장한 철학자들은 시라는 형식이 철학을 설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배척을 했다. 형식만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내용을 철학자들이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신화는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삶과 우주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철학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형식을 얘기하다 보니 그 형식에 맞는 주제라는 것이 나오게 된다. 동시에 철학자라는 직업 자체가 시인들에 비하면 사회적으로 대접 자체가 낮은 직업이었다. 시의 형식을 빌려서 하기에는 아류로 취급될 수 있었다. 따라서 형식의 혁신을 들고 나오는, 시인의 지위를 탐내서 그것을 탈취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는 담론투쟁이라고 흔히 얘기하는데 사실 담론투쟁이라고 하는 것이 밥그릇 싸움이다. 내 말빨이 더 세다는 것. 이것들이 시인과 철학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것이다. 어쨌든 소크라테스는 글을 써서 진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호메로스의 구전 전통에 충실했던 것은 사실이다.


69 기원전 6세기경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현자들, 즉 철학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지혜를 요구하면서 '견해'를 뛰어넘어 '진실'을 탐구하고 즐거움 밖에는 선사하지 못하는 신화적인 서술을 철학적 담론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철학자들은 시인들을, 특히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비판했다. 플라톤이 시와 철학 사이를 오래된 '적대관계'로 규정하면서 불거진 논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런 담론투쟁들이 서기 전 5-6세기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이다. 시인들의 위세를 뚫고 철학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플라톤은 구전이 가진 힘을 신뢰하면서도 스승에게 동조를 하면서도 그러면서도 플라톤은 양으로 승부했다. 방대한 대화편을 써서 남긴 것. 플라톤이 참으로 기이한 데가 있는데 '대화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비극드라마처럼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까 호메로스 서사시 시대가 끝나고, 서정시 시대가 끝나고, 비극의 시대가 왔을 때 이 시대에 플라톤이 등장한 것이다. 정말 그들의 위세를 꺾기 위해서 비극시인의 형식을 빌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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