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5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2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10점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arte(아르테)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90105_61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2

지난 시간에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중에서 아테나이의 민주정치에 얽힌 철학적 배경과 논점에 대해 읽었다. 그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에게는 지중해 세계 전체가 세계 전체였다. 그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은 자기네의 민주정이 문명의 표준이라고 생각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세계를 생각해보면 1919년 3·1운동 시대의 문명의 표준을 보면,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발달된 전쟁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침략하면서 자기네들이 진보했고 자기네들이 문명의 표준이라 했다. 올해가 3·1운동 백주년인데 이것만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1919년에는 무엇이 문명의 표준이었는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이 문명의 표준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서구 여러 나라들은 싸움을 잘하는 나라가 문명의 표준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치장하기 위해서 만국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만국공법을 주장했다. 그런 만국공법에 가장 먼저 혹독하게 당한 나라가 중국이고, 일본은 당할 뻔하다가 자기네가 불평등조약을 맺은 다음에 일본은 러일전쟁을 이기면서 자기네가 만국공법의 체제 속에 들어갔다. 사실 한국은 잘 읽지는 않지만 그 당시 일본에서 나왔던 문명론에 관한 여러 논의들을 읽어보면 자기네는 중화질서에 떨어져 나와있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가 그 다음에 서양에서 제시하는 또는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문명의 표준에 주눅들어있다가 러일전쟁에 이기면서 문명의 표준으로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대동아공영권으로 간다. 


일본은 러일전쟁이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그것에서 세계 문명의 표준이 되었고, 그 다음에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서 중일전쟁이 벌어졌다. 일본은 아시아에 있으면서도 자기네가 아시아의 나라가 아니라 서구 국가라고 생각했고 중국을 문명화 시키려고 들어간다고 말을 꺼낸다. 스스로가 문명국이라고 자부했던 것인데 백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일본을 문명의 표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1919년의 한국은 전혀 문명 국가가 아니었지만 지금 백 년 후의 우리는 적어도 세계에서 문명의 표준으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접근해있는 반면에 일본은 접근하지 못했다. 문명의 표준이 늘 바뀌기는 하지만 그에 따라 교양인의 표준도 늘 바뀌지만 1919년 이후에 백 년 후인 2019년에 철학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문명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문명에 따른 교양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한다. 


어쨌든 오늘은 아테나이 시대부터 고대 세계가 끝나는 기독교의 발흥시기, 철학의 역사에서는 기독교가 등장하면서 고대가 끝난다. 교육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는 파이데이아라고 하는데,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능력과 가치관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과정을 말한다. 파이라는 단어가 어린아이라는 말이고, 데이아가 교육과 관련된 것을 말한다. 놀이를 하던 애를 공부하는 애로 만드는 과정을 파이데이아라고 할 수 있다.  


268 흔히 '교육'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파이데이아 paideia(어두 '파이스 pais'는 아이를 뜻한다)는 가족과 선생과 사회기구의 관리 하에 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능력과 가치관을 점차적으로 취득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총제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파이스'로 시작되는 또 하나의 용어 파이디아 paidia는 놀이를 뜻한다. '파이데이아'는 바로 유아적 놀이의 세계에서 진지한 활동의 세계로 인도하는 과정을 뜻한다.


희랍에서는 우선 시민들이 정치적인 군사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진지한 활동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군대가고 참정권이 생기면 어른이다. 그런 것이 시민의 활동적인 삶, 나중에 라틴어로 규정되는 것이 비타 악티바 vita activa, 활동적인 삶, active life이다. 이런 활동적인 삶, 공적인 영역의 삶의 교과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이다.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에서 나타나는 영웅들, 책임감을 알고 남을 지도하고, 필요할 때는 목숨도 바치는 사람들, 여기에 등장하는 삶의 표준이었다. 마찬가지로 소피스트의 교육이라는 것도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적인 삶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정 사회에서 요구되는 교양을 가르치는 것이 소피스트들이다. 변증법의 1차적인 의미가 논쟁기술이다. 변증법을 잘한다는 것이 말싸움을 잘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시민으로서의 활동적인 삶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반성, 즉 반성하는 삶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주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관조하는 삶, 관상하는 삶, 그래서 비타 콘템플라티바 vita contemplativa이다. 


269 소피스트들의 교육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특성과 여러 종류의 담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질문에 답하는 능력과 다양한 논쟁 형태에 적응할 수 있는 능 력을 키우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이러한 지식을 활용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담론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환경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재판이 나 정치 집회에 대해), 아울러 담론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의 감성적이고 지적인 수준과 특성에 대해서도 숙지 할 필요가 있었다.


철학의 역사에서 잘 거론되지 않는 사람이 이소크라테스가 있다. 이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인데, 이소크라테스는 명백하게 소피스트의 후계자이다. 그래서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플라톤처럼 초월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잘 교양을 닦아서 살아갈 수 있는가,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의견을 탐구하는 것이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플라톤보다 이소크라테스가 그 당시 널리 받아들여졌고, 이소크라테스의 텍스트를 읽으면 오늘날에도 훌륭한 정치적인 논설로서 읽을만한 것이 많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오면 교양이라고 하는 것은 관상적인 삶이 아니고 또는 희랍사람들의 활동적인 삶도 아니고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 교양인이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경우는 아테나이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다. 무기를 마련할 필요도 없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같이 읽으면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백과사전적인 지식이라는 것은 굉장히 속편한 것임을 한 편으로는 생각해야 한다. 


274 일반인들 역시 전문가들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곧장 대두되는 또 다른 문제가 존재했다. 이미 전문화되어 있고 상당히 복잡하게 세분화되어 있는 분야의 전문 지식을 어느 정도까지 습득해야 하고 철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를 얼마나 높은 수준으로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전통적인 답변은 이른바 '폴리마티아 polymathia', 말 그대로 '많은 것들을 이해했다'는 뜻의 백과사전적인 앎이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 시대가 되면 시민의 정치참여라든가 활동적인 삶이라든가 이런 말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 유명한 디오게네스라는 통 속의 철학자가 등장하게 된다. 멋지다고 생각되지만 완전한 의미에서의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희랍세계에서는 훌륭한 시민이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면 디오게네스 시대가 되면 그것이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에피쿠로스 같은 사람들은 활동적인 삶이 아닌 은둔하는 삶이야 말로 참다운 삶이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이를테면 자연인적으로 사는 것이 이 당시에는 훌륭한 인간으로 간주되었다.


277 아테네는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철학을 삶의 가장 고귀한 이상으로 보지 않고 훌륭한 시민과 일치하는 인간형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교육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이소크라테스였다. 헬레니즘 시대부터 철학과 수사학이 융합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사학은 더 이상 철학의 상극이나 근본적인 대안으로 이해되지 않고 철학을 완성하는 요소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로마 시대에 들어오면 교양인은 여러 분과에 관한 학식을 쌓은 사람을 가리킨다. 요즘에 많이 쓰는 말인 후마니타스이다. 사실 후마니타스라는 말도 굉장히 정치적인 말이 많이 탈색된 말이다. 고만고만한 체제순응적 교양인.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과 지적이고 도덕적인 장점들을 완성단계로 끌어올리는 문화. 키케로나 세네카 같은 사람들이 이런 교양의 대표자들이다.


278 그리스의 파이데이아에 상응하는 것은 라틴 민족의 후마니타스 humanitas였다. 후마니타스는 인간만의 독특한 특징과 지적이고 도덕적인 장점들을 완성 단계로 끌어올리는 문화를 의미했다.


마지막으로 철학보다 상위에 있는 하나의 신성한 초월적인 원리에 대한 앎을 강조하는 흐름이 기독교 등장 이전에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신플라톤주의이다. 이 부분부터 다음 시간에 읽겠다.


279 평범한 삶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철학적 삶으로 일종의 개종이 이루어졌던 셈이지만 이에 비하면 새로운 종교 그리스도교를 통한 개종의 경험은 훨씬 더 강렬했다. 그리스도교는 사실상 소수의 엘리트층이나 그리스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모두를 향해 열려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정황 속에서 진정한 삶의 본보기가 그리스도를 통해 제시된 만큼 철학 교육은 설 자리를 잃거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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