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6 유길준의 서유견문


서유견문 - 10점
유길준 원저, 장인성 지음/아카넷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90126_64 유길준의 서유견문

오늘은 <책을 읽다보면>의 마지막 시간이다. 지난 해와 올해 관심을 가진 것이 '문명의 표준'이라는 것이다. 사실 백 년 전이라면 일본이 자기네가 동아시아에서 문명을 이끌어가는 모범 국가다라고 얘기했겠지만 오늘날에는 절대로 모범국가는 아니다. 은근히 일본식 민주주의와 일본식 관료주의가 아직도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군사주의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군사주의라고 하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관료주의가 밑바탕을 구성하고 거기에 대한민국 특유의 경험이 조금 얹어진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권위주의 문화, 군사 문화가 아닌가 한다.

관료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관료를 정치가들이 통제해야 하는 것이, 아무리 정치가들이 질이 떨어진다고 해도 정치가들이 관료를 통제하는 것이 마땅하고 생각한다. 관료가 움직이는 원칙은 효율이고, 정치가들이 움직이는 원칙은 민생이다. 효율에 따르면 지진 방지대책을 세우는 것보다는 보상금을 주는 것이 싸다. 그것이 관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인드이다. 정치가들은 어쨌든 보상금보다는 대책을 세우라고 한다. 

일본이 백 년 전만 해도 자기네가 문명의 표준이라 했을 테고 그에 따라 일본에 가서 미국에 가서 유학을 했던 사람이 유길준이다. <서유견문>의 유길준이다. 이 책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유길준이라는 사람이 왜 일본에 가서 미국을 유학해서 이 책을 썼는가, 그리고 이 책이 과연 오늘날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서유견문>은 견문도 있고 이 책 저 책에서 가져온 내용을 나름대로 소화해서 정리한 책이다. 사실 의외로 견문은 별로 없다. 유길준 선생이 조선이 최초로 미국을 유학했고, 돌아와서 세상을 한 바퀴 돈다. 런던에서 도쿄로 왔다. 이 당시 백 년 전의 세계에서 어쨌든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땅을 넓히면 문명의 표준이 되는 것이고 오늘날은 아니다. 인권이나 민주정이 문명의 표준으로 생각된다.

문명의 표준이라고 하는 큰 흐름에서 보면 그나마 역사 속에서 제국의 형태를 띠고 있는 나라들 중에 그나마 제일 덜 제국스러운 것이 아메리카 제국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자기네 제국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하다. 그래서 상황을 항상 업데이트 해야 한다. 더군다나 현재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군사력이나 이런 것들이 획기적으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현재 미국은 동맹이 없다면 제국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군사력으로는 지상군을 50만을 동원할 수 있는 동맹은 한국밖에 없다. 한국해병대와 미국해병대는 일년에 열 차례 이상 훈련을 같이 한다. 한국군은 말하자면 미군의 최고의 동맹이다. 그렇다면 이제 현실적으로 그런 동맹이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도 북한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반미'는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유길준을 읽어보면 한다.

<서유견문>을 읽을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첫째가 유길준이라는 분이 그냥 놀러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즉 나라에서 돈을 들여서 보낸 것이다. 다시말해서 유길준이 기계 유씨 집안인데 이 집안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유홍준이 있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중국과 조선이 문명국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기계 유씨 집안이 노론 집권 세력을 구성했던 집안 중 하나였다. 국비유학을 했으니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하고 갔었다. 그리고 일본을 유학했을 때 일본의 근대화를 추동한 것이 서학이구나 해서 서양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고 그에 따라 미국을 유학해서 서양 문명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유길준이 일본을 유학했을 때는 일본도 완전히 서구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놈들이 잘했으니 우리도 좀만 하면 되겠네'라는 생각, 일본을 본받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도 도입하면 쫓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그래서 이런 체험에서 시작된 저작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서유견문>이 체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유견문>의 주요한 내용은 책에서 얻은 것들이다. 이걸 꼭 생각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서유견문>가 주로 참조한 책들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그 당시 중국과 조선과 일본에서 어떤 책들을 통해서 서양에 관한 지식을 얻어낼 수 있었던 가를 추적할 수 있다.

참고로 중국의 경우를 보면 명나라 때 이미 마태오 리치와 같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서양의 지식들이 전달되기 시작했는데 들어온 순서를 보면, 처음에 지도가 들어온다. 그 다음에 역사가 들어오고 법이 들어온다. 지도책, 역사책, 법률책 순서대로 들어온다. 처음에 이런 것들이 들어와서 중국에 영향을 미쳤고 그에 따라 중국사람들이 먼저 전세계가 어떤 지리로 이루어져있고 지리지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위원이라는 사람이 쓴 해국도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유길준뿐만 아니라 일본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참조했다. 사실 <서유견문>의 뼈대가 되는 책이다. <서유견문>에서는 이 책을 참조한 흔적이 있다. 

그 다음에 <서유견문>에는 국가의 주권에 관한 논의도 많이 있는데, 이것에 영향을 끼친 것은 중국에서 번역 출간된 마틴의 <만국공법>이다. 원래 <만국공법>이라는 책은 헬리 휘튼이라는 사람이 쓴 <국제법원리>라는 책을 마틴이 한문으로 번역을 해서 출간한 책이다. 사실은 <만국공법>이라는 말이 널이 쓰이긴 했는데 사실은 기독교국가들의 법이다. 

그리고 제정이나 나라의 부에 관해서는 포셋의 <부국책>의 영향이 있었다. 가장 영향을 끼친 책이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 외편>이다. 재미있는 것이 이 책이 후쿠자와가 쓴 책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인 버튼의 <정치경제학>의 전반부를 번역한 것이다. 후쿠자와라는 사람이 일본 근대화에서 문명론 담론을 만들어 내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의 문명론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서양에서 체계적이지 않게 이것저것 흡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조선은 서양사람 눈에는 지금의 소말리아 해적 보듯이 봤다. 생각해보면 2018년 연말에 BBC나 CNN 이런 뉴스에서 전세계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을 취재해서 보여준다. 그런데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시아라고 하면 일본, 중국을 보여주고 넘어갔다. 이제야 남한, 북한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서 세계 미디어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1914년에 유길준 선생이 돌아가셨으니 지금까지 백 년이다. <서유견문>을 보면 유길준이 참고한 책이 중국사람들이 서양사정에 대해서 쓴 책, 그리고 중국사람과 일반사람이 번역한 서양사람들의 책이다. 결구구 독자적인 것은 없다. 나중에 육영공원이라고 해서 서양어도 배우고 하는 학교도 만들고 하지만 이렇게 보면 백 년 전만 해도 이런 것이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일본에서 나온 번역본을 통하지는 않는다. 세상에 대해서 알려고 해도 지도가 없어서 어느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다가 지도를 구해서 보기시작하고, 그 다음에 그 나라에 관한 책들이 그나마 한자나 일본어로 번역되어 나오면 겨우 볼 수 있는 시점이었다. 

그 시점이기 때문에 <서유견문>을 근대화를 촉구한 책이다라고 이해하면 안된다. 더군다나 유길준이라는 사람은 중화문명이 표준이라는 것을 아주 깊이 갖고 있었다. 아지가 유길준이 참조했던 책들의 저자나 번역자인 중국인이나 일본인 모두가 서구문명 일변도의 근대화론자도 아니었다. 그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동아시아 세계를 그냥 중화세계라고 불렀는데, 이때부터 중국도 중화세계로 부르지 못하고 서양에서 이쪽을 부르는 아시아라는 말을 그대로 음역해서 아세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대 아세아라는 말이 만들어졌는데, 그러니까 자기네를 지칭하는 말을 서양에서 만든 말을 가지고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시아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변천되었는가를 다룬 글을 읽어보면 우리는 아직도 우리 스스로를 이 지역을 부르는 말 자체가 여전히 서양사람들이 만든 말을 가지고 쓰고 있다. 타인이 자기를 규정하는 용어로 그대로 따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아세아라는 말 안에 들어있지 않나 한다.

서울대학교 장인성 교수가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번역하고 해제를 붙인 책이 출간되어 있다. 기존에 나와있는 책들의 해제를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근대화를 촉구한 책으로 해제를 해놓고 있다. 그런 해제들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길준이 아무리 그 당시에 서양 여러 나라들을 견문했다 해도 조선의 관리이기 때문에 여전히 중화문명이 우월한 것이고 그것이 문명국가의 표준이다라고 생각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과연 서양에 대해서 또는 중국에서 대해서 일본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고 대할 것인가 하는 것들을 가다듬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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