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5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0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10점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arte(아르테)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1222_59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0

지난 시간에는 철학의 형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남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달할 때 맨 처음에는 시사적인 형식이 있었고, 그런데 이제 서사시를 쓰면 철학자가 아니라는 논박들이 나왔고,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고, 플라톤은 양쪽에 다리를 걸쳐 놓고서 철학적 글쓰기를 하는 듯 하지만 드라마 형식을 가져왔다. 


그런 형식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이게 철학자라는 직업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철학자는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가의 문제. 희랍의 철학자들도 이것에 대해서 고민을 했는데 자연철학자들이라면 우주와 삶의 근본원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따져묻는다. 그런데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그것에 따져 묻되 그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전 국면에 걸쳐서 철저하게 실천하는 데까지 가야 철학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래서 집단을 만들었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을 같잖은 사람들이 나댄다고 생각했던 것 간다. 소크라테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던 증언들을 보면 굉장히 강력한 전사였다. 조국 아테나이를 지키려는 중장보병의 결기를 가진 사람이고, 제자로 알려진 알키비아데스를 죽음의 순간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은 일단 아테나이 시민이 아닌 외국에서 온 사람이다. 속된 말로 말발만 앞세우는 사람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한다. 


107 소피스트란 누구를 말하는가? 이는 플라톤의 대화록 『소피스트』에서 바로 소크라테스가 던졌던 질문이다. 고르기아스나 트라시마코스, 프로디코스 같은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소피스트들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들은 말 그대로 앎의 전문가들, 다시 말해 사고와 언변에 탁월한 능력과 기술을 가졌던 이들이며 오늘날의 문화 비평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소피스트들에게는 분명히 이상적이었을 아테네의 청중은 그들에게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의 철학 강의나 플라톤이 그의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던 철학을 기대하지 않았다. 아테네의 청중은 히피아스의 백과사전적인 지식이 증명되는 과정을 목격하거나 담론을 통해 한 논제의 증명과 반대되는 논제의 변론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줄 알았던 프로타고라스의 뛰어난 논쟁술을 보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고 몰려들었다.


128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소크라테스는 세 번의 원정 동안 보병으로서 뛰어난 면모를 과시한 적이 있다. 기원전 432년 칼키디케 반도에서 벌어진 포티다이아 전투에서 소크라테스는 부상을 당한 알키비아데스의 생명을 구하는 공을 세운다.


소피스트들은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교사. 소피스트라는 것이 소피아(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철학적 지혜라고 하는 것은 삶에서 직접 사용되는 쓸모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테나이 시민의 삶에서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쓸모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치적 논쟁을 잘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테나이 민주정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분명히 아테나이의 훌륭한 시민이었는데 아테나이 민주정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치적 논쟁을 잘하고 그 기술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수업료를 내고 배웠던 것. 


107 소피스트들이 설파하던 지식은 유용성과 분리될 수 없는 실용적인 성격의 것이었고 소피스트는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비롯되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주제로 논쟁을 펼치거나 이에 대해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이들을 교육하는 전문 교육자로서 철학을 가르쳤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소피스트들은 철학자가 아니었다. 일단 소피스트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지식을 상대화해서 볼 것을 주장했다.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그래야만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그럴 때에야 비로소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두번째로는 소피스트들이 상대방에 잘 맞추다보니 소크라테스가 보기에는 말은 잘하고 명확하기는 한데 올바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 올바름의 기준이 없어져서는 안되니까 앎이라는 것이 실용성만을 가진 것은 아니고 앎이라는 것과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알기만 하면 제대로 알기만 하면 올바르게 할 수 있다 까지 간다. 


소크라테스가 우리를 힘겹게 하는게 하나 더 있는데 꼭 알아두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의미에서 '신적인 지혜에 이르는 것이 목표'였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치명적인 독소이다. 자체, 본질, 흔히 이데아라고 불리는 것, 이것을 플라톤이 가져왔다. 그래서 그가 추구한 인간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신적인 경지에 오른, 다시말하면 철학자는 누구야라고 할 때 '신적인 경지에 올라간', '초월적인 것을 맛본' 사람이다. 그런 철학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소피스트들은 인간적인 앎에 만족하는 허접한 사람들이었다. 소크라테스처럼 사는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런 최후를 맞이한 것도 당연한 것이고, 흔히 소크라테스가 있는 곳이 어디냐, 어디에서 있지 않은 곳에 그가 있었다. atopia라는 곳에 있었다. 없다,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a와 장소를 가진 topos가 결합되어서 어디에도 있지 않는 곳이 된다. 


136 플로톤이 사랑을 주제로 쓴 대화록 『향연』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목소리를 통해 총체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그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사티로스만 연상시킬 뿐인 소크라테스의 유별남과 독특함이다. 유별나다는 뜻의 그리스어 atopia는 문자 그대로 설 '자리가 없는', 즉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이 철학개념을 계승해서, 인재를 양성하려다 보니 어딘가에 장소를 잡아야 했고 이것이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철학이라는 것이 절실한 삶의 문제라기 보다는 보편적인 지식의 체계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닌 모든 지식의 현장에 관여하는 것이 철학자인 것. 플라톤이 죽은 다음에 20년 가까이 있던 아카데미아를 떠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을 달리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소피스트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만을 내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지만 정치적인 수단인 수사학을 가르쳐지면서 세속적 지식을 보유한 사람, 바로 그것이 아테나이의 전통이었다. 그래서 아테나이의 전통은 소피스트들이 계승하였고, 정통적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아테나이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던 철학은 소피스트의 철학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네나이의 정통을 계승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110 다양한 지역에서 모여든 소피스트들은 각자의 출신 못지 않게 다양한 이론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을 고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스 전통문화의 가장 정통한 상속자이자 계승자로, 동시에 정치적 수단을 가르치는 스승이자 상당히 세속화된 지식체계를 보유한 지식인으로 소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지배계층을 상대로 수업료를 받으면서 가르쳤고 정부의 관료 혹은 외교관을 겸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뿐만 아니라 신학과 인식론, 언어분석 등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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