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중국정치사상사 | 42 노자의 약용의 술과 소국과민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 - 하 - 10점
유택화 지음, 장현근 옮김/동과서


Reading_20min_20151026: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下)-42

弱用의 術

“되돌아감은 도의 움직임이요, 약한 것은 도의 쓸모이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40장)

여기서 ‘反’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도의 쓸모에 관한 논의가 달라진다.


구체적인 弱用術

- 고요히 지켜봄(靜觀)(정관)

- “지극히 텅빈 데 이르고 돈독한 고요함을 지킨다. 致虛極 守靜篤”(치허극 수정독)(16장)

- 약함을 지키고 부드러움을 이용함(守弱用柔)(수약용유)

- 가득참을 알고 텅빈 데 처함(知盈處虛)(지영처호)

-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랫 사람에게 겸손함(居上謙下)(거상겸하)

- 다투지 않음(不爭)(부쟁)

-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守藏不露)(수장불노)

- “나라의 예리한 기물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선 안된다. 國之利器 不可以示人”(국지리기 불가이시인)(36장)


小國寡民(소국과민)

“압박과 착취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반대이다.”


결어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기도 하지만 권모술수를 더 많이 가르치고 있다.







도가의 정치사상을 읽고 있다. 도가의 정치사상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중에서 첫째로는 노자라는 텍스트를 지금 살펴보고 있다. 노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무위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내용이 있다. 그 특정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이 지난 시간까지 이야기였다. 오늘은 노자에 나타나는 정치사상에서 약용의 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소국과민에 대해서 보겠다.


노자에 나타나는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구절이라고 하면 흔히 40장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구절을 거론하곤 한다. "되돌아감은 도의 움직임이요, 약한 것은 도의 쓸모이다." 도의 움직임이라고 하는 것은 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작동원리에 관한 것이고,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가가 약자도지용의 말이다. 되돌아온다고 할 때 '反'이라는 글자를 되돌아온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르게 보면 대립하는 측면들이 서로 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음이 양으로 전환되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자기자신의 정체성과 대립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 도의 움직이다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또는 반이라고 하는 것이 반대된다는 뜻도 있으니 반대되는 것이, 대립하는 것들이 투쟁하는 것도 반이라는 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번째로 해석할 때는 대립 반목이 도의 움직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서 ‘反’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도의 쓸모에 관한 논의가 달라진다.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면 약자도지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다시말해서 반목하는 것이 도의 움직이요, 약한 것이 도의 쓸모다라고 하면 도의 움직임이 반목하는 것인데 그것의 쓸모가 약한 것에 있다라고 하면 앞 뒤로 아귀가 안맞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되돌아간다, 순환을 말하면서 어디로 되돌아 가는가, 무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그러니 도의 본질이 무라는 것이다. 도의 비어있음이 도가 쓸모있음이다. 약함을 중시하고 약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약자 도지용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이다.


약함을 이용하는 것, 구체적인 구체적인 弱用術은 무엇인가. 막연하고 모호한 말이다. 그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가 열가지 정도 거론한다. 다. "고요히 지켜봄 靜觀"(정관). 노자 16장을 보면 "지극히 텅빈 데 이르고 돈독한 고요함을 지킨다. 致虛極 守靜篤"(치허극 수정독). 고요한 것 텅진것을 지켜보는 것인데 이래서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래도 일단 그 위치는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 그 다음에는 "약함을 지키고 부드러움을 이용함 守弱用柔"(수약용유). 애초에 약하면 그것을 이용할 수 없다. 약한 자는 약자일뿐이다. 그런데 강한 자가 약함을 이용하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유택화 교수는 이것을 총괄해서 권모술수라고 말한다. 수양용유가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다음에 "가득참을 알고 텅빈 데 처함 知盈處虛"(지영처호). 가득 차 있음이 어디까지 임을 알고 비어있음을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득 안 차 본 사람은 사실 모르는 것. 이것은 양이 어느정도 가득차면 질적으로 변환이 일어나는데 그 일어나기 직전까지 뭔가 일어나면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다음이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랫 사람에게 겸손함 居上謙下"(거상겸하)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겸손은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은 찌그러져 있는 것이니 겸손이라 말할 수 없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겸손하다고 하는 것은 우아떠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도 위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수양용유, 지영처호, 거상겸하 이 셋이 모두 상통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가 권모술수 1단계쯤된다면 이것보다도 더 고단수가 있다. 애총 "다투지 않음 不爭"(부쟁)이 있다. 이것도 그냥 다툼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안다투면서 다툰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으면서 싸운다는 것. 나쁘게 말하면 뒤통수 치기이다. 그 다음이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 守藏不露"(수장불노). "나라의 예리한 기물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선 안된다. 國之利器 不可以示人"(국지리기 불가이시인).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가진 센 무기는 깊이 감춰놓고 나중을 도모하는 것. 이것이 바로 권모술수의 방법이다. 


지금까지가 약한 것을 기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노자 도덕경의 문명적 이상을 나타나는 소국과민. 일체의 기술을 없애고 일체의 문화를 없애고 사람들의 사회관계와 교류를 최소한으로 감소시키고 역동성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것. 그러면 이것은 복고적인 역사관인가. 그것은 아니다. 인류에게는 그런 적이 없었다. 서구에서는 장 자크 루소가 그런 면을 보이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문화를 없앨 수는 없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도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는 문명이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들었다. 그로면 문명을 없앨 것인가.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통제할 것인가를 루소는 고민했다. 옛날에 있었어야 복고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는 복고는 아니다. 

주로 "압박과 착취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반대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명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반대가 반드시 소박한 정치사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주의 국가로 갈 수도 있다. 


유택화 교수는 노자에 나타난 정치사상을 전반적으로 총괄하면서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기도 하지만 권모술수를 더 많이 가르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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