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 베르나르 포르 지음, 김수정 옮김/그린비 |
한국어판 서문 ─ 5
머리말 ─ 7
1부 역사 속의 불교
2부 불교와 토착문화
3부 불교와 사회
결론 _ 불교 혹은 새로운 불교?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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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역사 속의 불교
1_하나의 불교, 여러 개의 불교들?
20 대승불교 사상은 반야바라밀 전통에서 시작되는데, 반야바라밀이란 동명의 경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최초의 반야부 경전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 년 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반야부 경전의 길이는 천차만별인데, 가장 길게는 십만송반야경에서부터 짧게는 한 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 반야심경까지 있다. 대승불교는 서력 기원을 기점으로 중앙 아시아와 중국으로 전파되었으며, 계속해서 한국과 일본, 베트남으로 전래되었다. 소승불교는 아소카 왕의 재위 기간 중 처음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스리랑카를 시점으로 하여, 10세기부터는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버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으로 퍼져 나갔다. 소승불교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상좌부 형태의 전통으로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2_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유일한 사람인가?
32 여기서 논의의 초점은 붓다라는 이름으로 불린 한 인간의 진실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역사주의, 즉 서구적 접근 방식을 제외하고서는 그의 진실성을 묻는 것 자체가 문제시되지 않는다는 데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붓다의 역사적 진실에 관한 문제는 붓다의 삶을 무엇보다 따라야 할 하나의 이상으로 여기며, 그것을 믿어 온 전통적 불교도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이 무시간적 패러다임에 대한 모방은 출가 생활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이다. 그것은 단지 붓다와 자신이 동일함을 확인함으로써 개개인이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초기 시대의 불교 이상 공동체를 다시 만들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붓다를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데 이것은 붓다를 집착을 끊지 못하는 한 인간으로서 여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과 가까이서 함께 생활하는 스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3_불교는 인도의 종교인가?
38 다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오늘날 인식하고 있는 불교는 너무 인도적이며 동시에 대단히 비인도적이다. 너무 인도적이라는 말은 인도 불교가 똑같이 중요한 다른 불교 전통들에 대해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전통적 불교를 대표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 경전의 양과 내용의 측면에 있어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경전에 비해서 티베트와 중국, 일본의 경전들은 종종 과소 평가되어 왔다. 불교가 대단히 비인도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전통적 불교가 문화적·사회적 배경에서 맥락을 잃어버린 채, 일종의 진공 포장된 형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실제 숨 쉬고 있는 불교라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4_불교는 허무의 종교인가?
43 최고의 목표는 붓다가 되는 것, 즉 깨달음 bodhi을 얻는 것이 된다. 그것은 순수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 존재의 종식이라기보다는, 그 세계를 신성하다고 인식하며,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모든 부정적인 측면과 미혹으로 인한 거짓된 이해를 제거함으로써 얻게 되는 최고의 행복감을 말한다. 재가거사 유마힐이 이 세상은 불완전하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 사리불에게 "마음이 청정하면, 그 세상이 바로 불국토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대승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5_불교는 철학이지 종교가 아니다?
56 비철학적 요소를 제외하려는 노력은 의심할 여지없이 불교가 일시적 유행으로 영성, 지혜, 종교, 나쁘게는 미신 등으로 평가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렇게 서구에서 불교의 철학적 측면에 대한 두드러진 선호는 비록 다른 동기에 의해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일부 동양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정제되고, 탈신화적이고 이성적인 형태, 즉 근대성에 완벽하게 합치하는 가르침으로 내세웠던 시도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다. 또 이 미니멀리즘적 교리는 논의의 급증을 제어하는 방법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방법이란 지적 권위라는 미명하에 수행과 믿음의 다양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6_ 모든 불교도들은 깨달음을 추구한다?
64 중국, 티베트, 일본의 왕들이 불교를 믿게 된 까닭은 깨달음에 대한 열망 때문에 아니라 불교가 개인적·집단적(전염병, 전쟁 등등)인 모든 종류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동양에서 불교가 번영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불교가 국가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승려들의 활동 중 주요한 부분은 왕의 건강을 기원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7_불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가르친다?
70 사성제가 비록 붓다가 설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것이 불교의 가장 초기 형태의 철학을 요약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성제는 불교의 두 가지 주요 형태 ━ 대승불교, 소승불교의 순서로 끊임없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의 다양한 학파들은 사성제의 가르침을 발전시켜 나갔는데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대승 불교의 전통 가운데 반야부 전통은 모든 것은 공이고 그 자성은 없다고 본다. 이러한 공의 이해 속에서 고 역시 그 자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없애야 할 이유는 더욱 당연해진다.
8_업에 대한 믿음은 숙명론에 이르게 한다?
76 초기 불교는 행위의 도덕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며 의례주의와 신에 대한 숭배를 반대했다. 개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이 엄격한 관념은 공덕을 회향한다는 개념의 출현으로 인해 근본적인 수정이 가해진다. 회향이라는 개념은 대승불교의 굉장히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공덕을 쌓은 자는 자신보다 더 필요할지도 모르는 다른 이들과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미룬다고 하는 보살에 대해서 그 믿을 갖는데 큰 역할을 한다.
9_불교는 자아의 존재를 부정한다?
84 실체적 혹은 영원한 자아는 없으며 우리는 오온의 가합이라는 점은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 너머에 있는 것으로, 이 다섯 요소들 밖에는 또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점이 바로 불교도들이 종종 불교는 좁은 자아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실재인 불성이라고 하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대해 대승불교의 여러 학파들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아뢰야식'과 '무구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 이 개념들은 후에 브라만교의 아트만과 유사한 개념으로의 회귀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0_불교는 환생을 가르친다?
87 환생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의 연속인 윤회와는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윤회란 개인의 업에 의해 결정된 어느 단계에서의 존재가 이생에서 다른 생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은 라마 승려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티베트 전통에 따르면 존재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다시 나고 싶은 곳을 소망하면 원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2부 불교와 토착문화
11_불교는 무신론적 종교이다?
102 불교에는 신의 형태에 대한 두 가지 믿음이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형태로 선업을 통해 일시적으로는 신이 될 수 있으나 여전히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힌두교나 다른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 신들과는 달리 특별한 힘도 별로 없고 그저 평범한 인간들처럼, 욕망·고통· 업력에 의한 과보를 받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오직 불교에 귀의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때 그들은 반드시 불교를 보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두번째로 대승불교에서는 공의 가르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이러한 신들은 오직 세속제적 관점에서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승의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이 신들 또한 공하며 실재하지 않는다. 붓다만이 유일한 존재인데 왜냐하면 붓다 스스로가 공하기 때문이다.
12_불교는 하나의 정신적 추구인가?
108 붓다를 시대의 편견에 저항한 자유 사상가 정도로 묘사했던 19세기 오리엔탈리스트들은 불교를 교조적이며 의례적인 전통에 반기를 든 종교로 특징짓고, 불교를 일종의 개신교로 변형시켰다. 그들은 불교를 종교의 범주에 편입시키고자 했는데, 이성주의적 접근 속에서 이들은 불교를 그리스도교 ━ 특히 의례적 성향이 강한 가톨릭 ━에 대조적인 종교 전통으로 바라보았다. 이와 똑같은 태도를 서구의 일부 신심이 깊은 불교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불교를 개혁하여 현대 사회에 맞게끔 변용시키고자 노력한다.
13_달라이 라마는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116 달라이 라마의 불교는 티베트에 있는 티베트인들을 대표한다기보다는 망명 중에 있는 티베트인들과 서구인 지지자들과 더 닿아 있다. 망명길에 올라있는 티베트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서양세력들은 중국에 관한 것이라면 전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 측에서는 1989년 판첸 라마가 입적하기 전까지 베이징에서 벌인 중재자로서 그의 활약상을 폄하하는 경향마저 있다. 이론적으로 달라이 라마는 특정 종파의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다른 모든 티베트 불교의 종파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엄밀하게 말해 겔룩파 소속의 승려로, 이 종파는 1642년 제5대 달라이 라마가 권력을 잡은 이후 지금까지 정치적·종교적으로 티베트를 지배해 온 세력이다. 이것은 왜 지금까지도 서양인들이 겔룩파에 더 호의를 보이는지를 설명해 준다.
14_불교도가 된다는 것은 선 수행을 하는 것이다?
126 스즈키는 선의 종교적 성향은 쏙 빼 버리고 선을 일종의 치유 체계로 변형시켜 포장했다. 허나 위에서 계속 보았듯이 이러한 불교에 대한 자의적 해석은 일반적으로 불교 구석 구석에서 쉽게 찾아를 수 있다. 선의 보편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스즈키는 또 선이 중국에서 발달하게 된 것 역시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는 선이 완전하게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일본 문화와 만났기 때문이라고 보았는데, 자신의 이 주장이 모순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았던 듯하다.
3부 불교와 사회
15_불교는 관용의 종교인가?
133 역사적 전개 속에서 불교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론적 변형을 해왔다.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다른 문화와 접촉하며 갖게 된 가장 큰 문제점은 특히 동아시아로 전파해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불교는 토착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고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좀 더 완벽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즉, 불교가 전래된 이래, 그 이전까지 가장 높게 받들어지던 토착 신들은 불교의 신으로 개종되었고, 다른 나머지 신들은 적절한 불교 의례들을 통해서 복종시키거나 파멸되어야 할 악귀 정도로 그 서열이 강등되었다. 물론 불교 경전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을 그 토착신들이 자발적으로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묘사한다.
16_불교는 자비를 가르치는가?
140 그리스도교의 자비가 (포교가 가능한 존재인)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과는 달리,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다 아우른다. 초기 불교에서 말하듯, 이와 같은 생각은 윤회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것으로 업의 법칙에 따라 살아있는 존재는 모두 인간과 인간이 아닌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고 보았다. 대승불교에서는 심지어 보잘것없는 지렁이조차도 붓다의 성품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 안에 있는 불성의 실현으로써 자비는 모든 존재가 서로 다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자비란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존재론적 실현이라 할 수 있다.
17_불교는 평화의 종교인가?
148 실제로 불교는 전쟁과 복잡한 인연을 맺어 왔는데 따라서 비폭력의 개념이 설 자리는 그다지 없었다. 불교가 공식 이념이었던 국가들에서 불교는 많은 경우에 전쟁을 부득이 지지해야만 했다. 폭력은 실질적인 이유를 고려해 볼 때 정당화될 수 있었는데 불교도라면 불교의 다르마가 위험에 처했을 경우, 불가피하게 그 악에 맞서서 싸울 필요가 있었다. 상대를 다 죽여도 괜찮은데, 왜냐하면 붓다가 불교도들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불교도들은 살인으로 악한 존재들을 해방시킬 자격을 갖게 되는데, 죽음으로써만 그들은 그들의 무지에서 풀려날 수 있으며, 비로소 다른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18_불교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155 그의 지지자들 가운데에는 인기있던 매춘부들뿐 아니라 상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중요 정치인들도 포함되었는데, 특히 북인도의 작은 왕국의 왕들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붓다가 왕자 출신이라는 것은 잘 잊혀지지 않았으며, 불교는 붓다를 전륜성왕으로 변모시키며 계속해서 붓다의 왕족 신분을 강조해 갔다. 얼마만큼 승단이 평등주의적인지는 한번 생각해 볼만한 주제이다. 비구승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비구계를 주는 규정을 살펴보면 모든 이가 다 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원자들은 일종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여기에서 지원자는 자신이 완전히 자유로운 몸으로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는 다시 말해 그는 노예가 아니며, 빚도 없고 아프지 않고, 성적으로도 정상인이어야 했다.
19_불교는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가?
165 불교는 오랜 세월 동안 우주론적 교리임을 자처해 왔다. 비록 붓다가 세상은 영원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거부했다고 하지만, 붓다의 제자들은 이를 논리적 사고를 통해 대답하고자 노력했으며, 그 결과 우주론은 불교 사고 체계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이 우주론은 동아시아로 불교를 통해 전해졌고, 동아시아 불교도들에게 불교란 도덕적이거나 종교적 체계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과학적 접근과도 비슷한 새로운 세계를 보는 관점을 제시했던 것이다.
20_불교는 일종의 테라피이다?
180 초기 불교도들은 이런 신통력에 대해 상반되는 두 가지 태도를 갖고 있었다. 비록 붓다가 자신은 여러 기적을 대중들에게 펼쳐 보였지만 그의 제자 빈두로가 신도들 앞에서 자신의 신통력을 과시해 보이자 이를 꾸짖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통력을 쓰지 말 것을 권하는 논리는 사회·역사적 상황 혹은 좀 더 구체적으로 다른 종교 집단 간의 경쟁적 맥락 속에 놓고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신통력의 문제는 불교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종교(힌두교, 도교) 전통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는데 따라서 불교도들은 자신들의 전통에서 말하는 신통력이 여섯 번째 신통력 혹은 더 뛰어난 힘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공의 논리로 신통력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비판하기도 했다. 어쩌면 탈 신화적 형태로 보이는 것이 실은 전술 전략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이것은 여전히 신화적 담론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공의 논리가 여러 불교 논서들 속에서 겉으로는 철학적으로 해석될지 몰라도 여기서 보듯이 사실상 공은 신통력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21_불교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주장한다?
184 만일 문헌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붓다는 육식에 상당히 온건적 입장을 보였던 듯하다. 그의 사촌 데바닷타는 좀더 여기에 엄격했었고 고기와 어류를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을 다섯 가지 규율에 넣고 승단에서 이를 지킬 것을 제안했다. 붓다는 이를 거부했는데 대신 당시 인도 사회에서 이미 지켜지고 있던 규칙으로 열 가지 형태의 먹지 못하는 고기만 승려들이 먹지 말도록 지시했다. 즉 승려가 지금 먹고 있는 고기가 그를 위해 잡은 고기라는 것을 모르기만 한다면 그는 그 고기를 먹어도 상관이 없다.
22_불교는 보편주의적 가르침인가?
192 각기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의 다양한 상황 차이와 애매모호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불교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모순적 측면과 복잡성을 보여 준다. 일본 불교의 경우 민족은 국가와 동일시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민족주의는 일제가 전쟁을 치르던 당시 국가에 대한 승단의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드러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싱할라인들과 한국의 불교도들은 국가와 민족을 구분했다.
23_불교는 승가 중심의 종교이다?
209 붓다 재세 시절에 몇몇 힘있던 재가자들, 특히 왕들은 불교에서 이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붓다 자신 역시 세속을 등지고 깨달은 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다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었다. 그래서 붓다의 장례 역시 왕가식으로 치러졌었다. 밀교에서 승려들의 수계는 왕을 위한 종교의 식을 본뜬 것이다. 이것을 관정 의식이라고 하는데, 새 군주에게 네 방향의 바다에서 가져온 물을 왕의 머리 위로 뿌리는 의식으로 그가 전 세계를 통치하는 왕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서구에서 왕의 칼이 종교적·세속적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것처럼 불교에서는 붓다와 전륜성왕이라고 하는 두 개의 법륜 사이에서의 조화를 추구했는데, 이 두 개의 법륜은 각기 불교 승단과 왕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결론 _ 불교 혹은 새로운 불교?
213 최근의 현대 불교에 대한 다양한 연구 성과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한 동양인들이 비록 문화적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이주 지역에서도 그들이 믿는 불교를 보편화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이주자들은 불교를 근대화·이성화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서구적 가치와 양립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문화 변용은 부분적으로 특정 의례와 주술적 수행을 지워버리고자 하는 성향에서 비롯한 것이며, 또 이들의 자본주의 세계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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