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실천적 불교사상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4. 1.
실천적 불교사상 - 법륜 지음/정토출판 |
001. 인간은 왜 종교를 찾는가
002. 종교를 통해 무엇을 얻는가
003. 불교란 무엇인가
004. 불교의 근본사상
005. 불교의 실천론
006. 불교의 인생론
007. 중생에서 부처로
008. 삼귀의
009. 올바른 삶의 가치기준
010. 오계, 불자의 기본덕목
011. 보살계, 불교지도자의 덕목
012. 개차법
013. 신앙이란 무엇인가
014. 중생의 길, 부처의 길
015. 참회와 기도
016. 불공과 보시
017. 수계
018. 신자의 의무와 권리
019. 사찰예식
002. 종교를 통해 무엇을 얻는가
36 종교의 본질은 올바른 삶에 대한 근원적 해답을 추구하는 데 있다. 종교인의 자세는 진실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밝혀보려는 보다 구도적인 자세이어야 한다. 또한 종교적 가르침도 단편적인 지식 습득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종교는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망라하는 광범위한 영역에 대해서 「진실한 모습은 어떤가」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또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적 수행을 중요시 하면서도 사회의 제 모순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며, 그의 근원적인 치유책을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개인 문제의 해결이 곧 사회 문제의 해결이며, 동시에 사회 문제의 해결이 곧 개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자각한다면 종교는 모름지기 모든 인간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005. 불교의 실천론
66 불교의 진리는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초역사적이고 초사회적이며 초인간적이다. 그것은 모든 상황적 한계를 극복한 진리 그대로이다 그것은 언어나 문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장님에게 태양의 눈부신 햇살을 설명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스스로 상황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혜의 눈을 뜰 때 만이 모든 존재의 진실상을 여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삼복 더위에 부채를 부치며 답답해하는 사람에게 동해 바다에서 해수욕 할 때의 그 시원함을 아무리 설명해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듯이 열반의 경계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위를 못이기는 사람에게 동해 바다로 가는 길을 안내할 수 있듯이 열반에 이르는 길 역시 가르칠 수는 있다. 그 길을 따라 동해 바다에 도착하여 해수욕을 해보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면 열반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으로써 연기에 의한 존재의 실상을 보시고 불세계에 도달하셨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천론으로써 모든 사람이 불세계에 도달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이 방법은 그가 사는 지역에 따라 동해로 가는 방향과 길이 다르듯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달리 제시 될 수밖에 없다.
67 가르침은 역사적이다. 어떤 것이 남에게 전달 될 때는 언어, 문자나 몸짓 등에 의해 표현되어지고 이 표현은 서로간에 약속된 언어, 문자와 몸짓으로 하기 때문에 역사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역의 언어와 가치의 문화적 풍토와 사고의 경향에 견주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진리의 길로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역사적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불경은 바로 2600여년 전 인도라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게 설해진 방편이다. 글자 하나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가 하는 글자에 담긴 마음을 읽어야 한다.
006. 불교의 인생론
80 인도의 바라문교에서는 이 업으로 이루어진 거짓 나를 고정불변하는 영원한 나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영가, 혼, 혹은 영이라 부르는 것은 모두 이러한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도인들은 이를 아트만이라 규정하면서 각자의 아트만은 카르마(업)에 의해 날 때부터 규정되는 불변의 본질이라 믿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모든 관념을 부정하신 것이다. 아트만이란 업의 소산인 아집에 불과하며, 따라서 결코 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행위와 조건에 따른 결과에 불과하므로 생성, 소멸을 거듭하면서 변해 갈 뿐임을 설파하셨다.
인간은 죽으면 업 중에서도 제8식인 아뢰야식만이 남는다. 즉 소소한 것은 모두 흩어지고, 다음 생에까지 따라 다닐 핵심적인 업만 남는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남는 업이 바로 다음 생의 육신을 받게 되는 유가 된다고 한다. 이 유는 12연기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새로운 육신은 다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업을 쌓기도 하고 혹은 소멸되기도 하면서 변화해 간다.
본래 윤회의 원동력은 업에너지이기 때문에 고정불변하는 어떠한 존재도 있을 수 없다. 업은 남자나 여자의 구별, 인간이나 동물의 구별도 없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생명을 받을 때, 자신의 선택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업에너지의 힘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끌려 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치 이 세상에 내던지듯 종속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명한 일이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해서 온 삶이라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아예 태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지금과는 다른 삶의 조건을 택하겠다고 대답 할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제법 무아의 무아란 바로 바라문교의 아트만이나 영혼, 거짓 나를 부정한 입장이다.
013. 신앙이란 무엇인가
160 신앙이란 무엇인가? 믿고 우러러 따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의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노력하고 애쓰며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세상에는 또 여러가지의 가르침이 있다. 그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믿고 우러르며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자신이 진리라 믿고 의지하는 어떤 가르침이 있을 때 그는 신앙이 있는 것이며, 그 진리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을 우리는 신앙인(신자, 신도)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과 같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옳다고 믿고 확신하면, 그의 가르침에 따라 그와 같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삶과 진리의 말씀에 입각해서 자신과 세상을 구원하려는 사람들을 각각 불·법·승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삼보를 믿고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교 신자라 말하고 있다.
164 지혜는 자비행을 통해서 실천될 때만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으며, 자비는 지혜의 만족으로 실천될 때만이 세상의 악취를 제거하는 향기가 될 수 있다. 지혜가없는 자비는 맹목적 행동을 동반하기 쉽고 개인 선행에 치중하기 쉽다. 자비가 없는 지혜는 분별 시비나 일삼는 사변으로 흐르고 스스로 아무런 선행도 닦지 않으며 비판만을 일 삼기 쉽다. 전자는 속화되기 쉽고, 후자는 엘리트 의식에 빠지기 쉽다. 이들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참 신앙이 되는 것이다. 순수 신앙이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지, 개인주의적 신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차를 마시고 붓글씨를 쓰는 멋으로 하는 불교, 산수 좋고 공기 좋은 데서 시나 읊조리는 도피주의, 글자풀이로 먹고 사는 학문주의, 오래 살기 위해서 참선하는 건강주의, 가끔 조용한 산사를 찾아 심신을 식히는 여가주의, 세속의 이익에 눈이 어두운 출세주의, 치부주의, 명예주의, 병고침을 내세우는 신비주의 등 나름대로 삿된 길을 내달리며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이들은 거짓 수행인들이다.
165 지혜는 참회를 통하여 더욱 빛나고, 자비는 발원기도를 통해 더욱 힘이 솟는다. 계를 지키지 않으면서 불교의 교리를 논하고, 참회하고 발원하지 않으면서 신앙인임을 자부한다면 그들은 이미 진실한 신앙인이 아니다. 참회와 발원기도를 통하여 스스로는 끊임없이 지혜를 구하고 밖으로는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수행자를 참 신앙인이라고 하며 이를 보살이라 한다.
014. 중생의 길, 부처의 길
168 자신의 불성을 찾고 불세계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업, 즉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업장이라고 한다. 업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나의 그릇된 마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마음, 즉 불성을 가리고 그 빛을 가로막는 탐욕과 무명의 업장이다. 이것은 자기 밖에 있는 것이 바로 자신 속에 있다.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업의 덩어리가 바로 업장인 것이다.
169 우리는 업장이라고 하면 흔히 개인의 업장만을 생각한다. 그러나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업장은 개인의 업장이 아니라 중생들이 만들어 낸 공업의 업장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불국토를 건설하려는 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속의 물결 ━ 잘못된 사회 구조와 가치관 ━ 이 바로 공업 인 것이다. 이 업장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의 업장이 모여서 이루어진 거대한 공업의 덩어리이다. 이것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오히려 각각의 개업을 지배하고 구속한다. 인간의 생명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지어 온 업의 총체로써 형성된 업의 덩어리지만 이 업이 오히려 각 몸과 말과 뜻을 지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동업 중생들이 과거로부터 지어온 업장은 개인의 업으로 만 끝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동업의 업장을 형성한다. 이를 역사의 업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업의 업장이 나름대로의 규정력을 갖고 오히려 개별 인간의 업을 지배하게 된다. 이 거대한 공업은 각 중생을 업장의 울타리 속에 가두고서, 고통 속에 헤매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017. 수계
202 수계란 「계를 수지한다」 「계를 받는다」는 뜻이다. 계란 이미 설명했듯이 올바른 삶의 가치 기준을 말한다. 거짓 가치를 버리고 올바른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살겠다는 서약이 수계이다. 나 혼자만의 결심이 아니라 만인에게 공포함으로써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동참을 선언하는 것이 수계식이다. 수계는 육신을 바꾸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리 저리 방황하다 이제 불법을 만나 올바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거룩한 맹세인 것이다. 수계를 해야만 포살과 자자에 참여할 수 있다. 수계는 한 마디로 다시 태어남, 신생이다.
203 사부대중이란 교단의 구성원인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말한다. 이 때 수계받지 않은 사람은 사부대중이 아니며 승단의 구성원이 될 수도 없다. 수계를 받음으로 해서 승단의 일원이 되고 그에 따른 권리와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수계의 세 가지 단계를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가 삼귀의 계이다. 입문자 교육을 마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맹세한 사람에게 삼귀의 계가 수계된다. 삶의 목적을 부처되는데 두고 불타의 원력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으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겠다는 각오를 한다. 더불어 법에 귀의하고 승에 귀의하겠다고 서약한다. 삼귀의 계를 받은 사람을 불자라 부르며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란 뜻과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 즉 부처의 아들이란 뜻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매주 법회에 참석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며 일정액의 삼보 수호비와 매 법회 시 보시금을 낸다.
둘째 삼귀의 계를 수계한 후 3개월 이상 법회에 참석하고 신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불교 기초 교리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불교 기초 교리 내용은 ① 부처님의 일생 ② 불교의 근본 교리 ③ 불교 변천사 등을 배운다. 이 교육이 끝나면 실제 수행법으로 기도와 참선을 실습하게 되고 그 과정을 거쳐 오계를 수계하게 된다.
오계를 수계한다는 것은 오계의 가치를 지키며 살겠다는 맹세이므로 완전히 불교의 가치관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육신을 바꾸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므로 오계를 수계할 때는 법명을 받는다. 그리고 영원한 진리의 동지이기 때문에 오계 수계자는 서로를 법우라 부른다. 신자 카드는 평생 보관되며 승단에서 파문 당하지 않는 이상 어떤 경우에도 승단으로부터 보호 받는다. 그것은 영원한 도반이기 때문이다. 오계를 수계한 신자는 일정액의 삼보 수호비와 보시금 외에 일정 시간을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보살행을 해야 한다. 그리고 포교의 의무가 주어지며, 교단의 운영에 참여한다.
세째 보살계이다. 이것은 신자로서는 최고 법계이다. 세속에 살면서 완전히 출가 수행승 못지 않게 수행을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행이고, 그 수계자를 거사, 보살이라 부른다. 오계를 수계한 후 2년 이상 법우의 책임을 다한 후 승단이 정하는 경전의 공부와 수행과 봉사 활동을 거친 다음, 세속에 살고 있으나 진실한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다고 인정될 때 보살계를 수계한다. 수계를 받으면 단위 사찰의 실제 책임자가 되고 교단 운영의 책임과 권리를 동시에 갖는다. 거사와 보살의의 무는 재정적 의무뿐만 아니라 사찰을 유지 발전시키는 문제, 포교와 교육 등 광범위한 교단의 일을 책임져야 한다. 일정시간씩 안거를 하면서 수행을 꾸준히 하며 많은 시간을 보살행에 바쳐야 한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1) | 2019.04.22 |
---|---|
법륜: 관무량수경 이야기 (0) | 2019.04.14 |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의 서 ━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0) | 2019.04.10 |
에피쿠로스: 쾌락 (0) | 2019.04.09 |
이중표: 정선 디가 니까야 (0) | 2019.03.25 |
이중표: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 (0) | 2019.03.22 |
베르나르 포르: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 불교를 둘러싼 23가지 오해와 답변 (1) | 2019.03.19 |
이중표: 불교란 무엇인가 ━ 초심자가 던지는 질문 (0) | 201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