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 정선 디가 니까야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3. 25.
정선 디가 니까야 - 이중표 역해/전남대학교출판부 |
머리말 / 4
1. 범망경(梵網經) / 9
2. 사문과경(沙門果經) / 56
3. 꾸따단따경 / 100
4. 뽓타빠다경 / 123
5. 께왓다경 / 152
6. 대인연경(大因緣經) / 166
7.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 196
8. 대념처경(大念處經) / 300
9. 전륜성왕사자후경(轉輪聖王獅子吼經) / 329
10. 태초경(太初經) / 352
11. 청정경(淸淨經) / 371
12. 씽갈라를 가르치신 경 / 401
뽓타빠다경
25. "세존이시어, 만약 견해가 다르고, 이해가 다르고 기호가 다르고, 명상법이 다르고, 수행법이 다른 제가 '생각이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생각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면,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세계는 상주합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세계는 상주한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소."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세계는 상주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세계는 상주하지 않는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세계는 유한합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세계는 유한하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세계는 무한합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세계는 무한하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26.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육신이 곧 생명입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육신이 곧 생명이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육신과 생명은 각각 다른 것입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육신과 생명은 각각 다른 것이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27.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합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 라는 말도 하지 않소"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입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실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는 말도 하지 않소"
28.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왜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뽓타빠다여, 그것은 의미와 무관하고, 진리와 무관하고, 범행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에, 염리, 이욕, 지멸, 적정, 수승한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하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말하지 지 않소."
29.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세존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설명하오. 뽓타빠다여,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집이다.'라고 설명하오. 봇타빠다여,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멸이다'라고 설명하오. 뽓타빠다여,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설명하오."
30. "세존이시어, 그렇다면 왜 세존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십니까?"
"뽓타빠다여, 그것은 의미와 연결되고, 진리와 연결되고, 범행의 근원이기 때문에, 염리, 이욕, 지멸, 적정, 수승한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끈다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군요 세존이시어! 그렇군요. 선서시어! 세존이시어, 세존께서는 지금 떠나셔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습니다.
대인연경
21. "식(識)이라는 조건 때문에 명색(名色)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아난다여,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식(識)이라는 조건 때문에 명색(名色)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식(識)이라는 모태(母胎)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명색(名色)이 모태에서 강화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어!"
아난다여, 식(識)이라는 모태(母胎)에 들어가서 타락한다면, 명색(名色)이 이와 같은 상태로 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어!"
아난다여, 소년이나 소녀의 어린 식(識)이 절단된다면, 명색(名色)이 자라나고 성장하여 완전해 질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어!"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 식(識)이 명색(名色)의 원인이며, 인연이며, 집(集)이며, 조건이다.
22. "명색(名色)이라는 조건 때문에 식(識)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아난다여,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명색(名色)이라는 조건 때문에 식(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식(識)이 명색(名色)에 의지하지 않으면, 미래에 태어남(生)-늙음(老)-죽음(死)이라는 괴로움의 집(集)과 발생이 있을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어!"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 명색(名色)이 식(識)의 원인이며, 인연이며, 집(集)이며, 조건이다.
아난다여, 명색(名色)이 식(識)과 함께 상호간에 의존하여 발생할 때, 그때 너희들은 태어나거나, 늙거냐, 죽거나, 변천하거나,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때 명칭의 과정이 있고, 그때 언어)의 과정이 있고, 그때 개념의 과정이 있고, 그때 반야의 영역이 있고 그때 윤전이 있으며,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일이 되풀이 된다.
23. 아난다여,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는 것일까? 아난다여, "나의 자아는 형태가 있으며, 작다."라고 형태가 있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나의 자아는 형태가 있으며, 무한하다."라고 형태가 있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나의 자아는 형태가 없으며, 작다."라고 형태가 없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나의 자아는 형태가 없으며 무한하다."라고 형태가 없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24. 아난다여, 그때 형태가 있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는 사람은, 현재에 형태가 있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거나, 혹은 "나는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미래에) 그렇게 되도록 준비하겠다."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존재하는 형태가 있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아난다여, "그에게는 이와 같이 '형태가 있는, 작은, 실재하는 자아'라는 사변이 잠재해 있다."라고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아난다여, 그때 형태가 있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는 사람은, 현재에 형태가 있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거나, 혹은 "나는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미래에) 그렇게 되도록 준비하겠다."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존재하는 형태가 있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아난다여, "그에게는 이와 같이 '형태가 있는, 무한한, 실재하는 자아'라는 사변이 잠재해 있다."라고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아난다여, 그때 형태가 없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는 사람은, 현재에 형태가 없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거나, 혹은 "나는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미래에) 그렇게 되도록 준비하겠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존재하는 형태가 없는 작은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아난다여, "그에게는 이와 같이 형태가 없는, 작은, 실재하는 자아'라는 사변이 잠재해 있다."라고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아난다여, 그때 형태가 없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는 사람은, 현재에 형태가 없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하거나, 혹은 "나는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미래에) 그렇게 되도록 준비하겠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존재하는 형태가 없는 무한한 자아를 개념화하여 실재시한다. 아난다여, "그에게는 이와 같이 형태가 없는, 무한한, 실재하는 자아'라는 사변이 잠재해 있다."라고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32. 아난다여, 비구가 감정을 자아로 간주하지 않고, 감정이 없는 것을 자아로 간주하지 않고 "나의 자아가 느낀다. 참으로, 느끼는 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간주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자아로 간주하지 않을 때, 그는 세상에서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움 없이 홀로 열반에 들어간다. 그는 '태어남은 끝났고, 범행을 마쳤으며, 해야 할 일을 끝마쳤다. 다시는 현재의 상태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비구에 대하여,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댜'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어떤 명칭도, 어떤 명칭의 과정도, 어떤 언어도 어떤 언어의 과정도, 어떤 개념도, 어떤 개념의 과정도, 어떤 반야도, 어떤 반야의 영역도, 어떤 윤전도, 윤전이 반복되는 것까지도, 그 비구는 수승한 지혜로 해탈했다. 그런데 그것을 수승한 지혜로 해탈한 비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대반열반경
2.24 세존께서는 병에서 회복되시자 곧 병실에서 나와서 승원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계셨습니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을 찾아와서 예배한 후예 한쪽에 앉았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한쪽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어, 세존께서 병을 이겨내시는 것을 보고 건강하신 것을 보니 한없이 기쁩니다. 세존께서 편찮으시니, 제 몸은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어, 그렇지만 '세존께서 비구 승가에 대하여 무언가 말씀을 하시지 않고서 반열반에 드시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2.25 아난다여, 이제 비구 승가가 나에게 무엇을 바란다는 말이냐? 아난다여, 나는 현교와 밀교를 구별하지 않고 진리를 가르쳤다.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는 숨겨둔 '스승의 주먹’이 없다. 아난다여, 만약 누군가 "내가 비구 승가를 이끌겠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를 따른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난다여, 아마도 그는 비구 승가에 대하여 무언가 말을 할 것이다. 아난다여, 그렇지만 여래는 "내가 비구 승가를 이끌겠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를 따른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런데 여래가 비구 승가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겠느냐? 아난다여, 나는 지금 만년에 이른 늙고 노쇠한 늙은이로서, 내 나이 여든 살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마차가 가죽 끈에 묶여서 끌려가듯이, 여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끌려가는 것 같구나. 아난다여, 여래가 일체의 외부의 상태에 마음을 쓰지 않고, 어떤 감정도 사라져서, 외부의 상태에서 벗어난 마음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물 때, 아난다여, 그때 여래의 몸은 편안하다.
2.26 아난다여, 이제 그대들은 자산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사람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가르침(法)을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라. 아난다여, 비구가 자산을 등불로 삼고, 자선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사람을 귀의처로 삼지 않으며, 가르침을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아난다여, 비구는 몸을 관찰하며 몸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한다. 감정(受)을 관찰하며 감정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 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한다. 법을 관찰하며 마음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 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한다. 법을 관찰하며 법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 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비구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으며, 가르침을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난다여, 지금이든, 나의 사후든,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사람을 귀의처로 삼지 않으며, 가르침을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살아간다면, 아난다여, 그 비구들은 누구든지 학계를 열망하는 나의 가장 훌륭한 제자가 될 것이다.
5.30 그러자 편력수행자 쑤밧다가 아난다 존자에게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지금 그대들이 스승의 면전에서 제자로서 관정을 받은 것은 그대들의 재산이요, 그대들의 지복입니다. 편력수행자 쑤밧다는 세존의 면전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쑤밧다 존자는 구족계를 받자 곧 홀로 외딴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선남자들이 출하는 목적인 위없는 범행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체험하고 성취하여 살아갔습니다. 그는 '태어남은 끝났고, 범행을 마쳤으며, 해야 할 일을 끝마쳤다. 다시는 현재의 상태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쑤밧다 존지는 아라한 기운데 한 분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존의 마지막 직제자가 되었습니다.
6.1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분부했습니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스승의 말씀은 이제 없다. 실로 스승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시설한 가르침(法)과 율(律)이 나의 사후에는 그대들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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