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9. 26.
인간 없는 세상 -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원숭이에 얽힌 화두 하나
[1부] 미지의 세상으로의 여행
[2부] 그들이 내게 알려준 것들
[3부] 인류의 유산
[4부] 해피엔딩을 위하여
에필로그-우리의 지구, 우리의 영혼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인간없는세상연대기
우리가 사라진 후, 지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인류와 함께 사라져갈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기게 될 유산은 무엇인가?
2일 후 | 뉴욕의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들어차 통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7일 후 | 원자로 노심에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디젤 발전기의 비상연료 공급이 소모된다.
1년 후 | 무전송수신탑의 경고등이 꺼지고 고압전선에 전류가 차단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도 고압전선에 부딪혀 매년 10억 마리씩 희생되던 새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3년 후 | 난방이 중단됨에 따라 몇 해의 겨울을 거치며 갖가지 배관들이 얼어터진다. 내부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건물이 손상된다. 예컨대 벽과 지붕 사이의 이음매에 균열이 생긴다. 도시의 따뜻한 환경에 살던 바퀴벌레들은 겨울을 한두 번 거치는 동안 멸종된다.
10년 후 | 지붕에 가로세로 18인치의 구멍이 나 있던 헛간이 허물어진다. 사람 없는 집은 대부분 50년, 목조가옥이라면 기껏해야 10년을 못 버틴다.
20년 후 | 고가도로를 지탱하던 강철기둥들이 물에 부식되면서 휘기 시작한다. 파나마 운하가 막혀버리면서 남북 아메리카가 다시 합쳐진다. 우리가 즐겨 먹던 일반적인 밭작물들의 맛이 지금 같지 않은 야생종으로, 그러니까 인간의 입맛에 맞게 개량되기 전 상태로 되돌아간다.
100년 후 I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는 코끼리들은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개체수가 스무 배로 늘어난다. 반면 너구리, 족제비, 여우 같은 작은 포식자들은 인간이 남긴 생존력이 엄청나게 강한 고양이 등에 밀려 개체수가 오히려 줄어든다.
300년 후 | 흙이 차오르면서 넘쳐흐르던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강 삼각주 유역에 세워진 미국의 휴스턴 같은 도시들은 물에 씻겨나가 버린다.
500년 후 l 온대지역의 경우 교외는 숲이 되어버리면서 개발업자나 농민들이 처음 보았을 때 모습을 닮아간다. 알루미늄으로 된 식기세척기 부속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조리기구가 풀숲에 반쯤 덮인 채 있다. 그것들의 플라스틱 손잡이는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어도 여전히 멀쩡하다.
1천 년 후 | 뉴욕 시에 남아 있던 돌담들은 결국 빙하에 무너지고 만다. 인간이 남긴 인공구조물 가운데 이때까지 제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영불해협의 해저터널뿐 일 것이다.
3만 5천 년 후 | 굴뚝산업 시대에 침전된 납이 마침내 토양에서 전부 씻겨나간다. 이에 비해 카드뮴은 완전히 씻겨나가기까지 7만 5천 년 세월이 걸린다.
10만 년 후 I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좀더 걸릴 수도 있다).
25만 년 후 | 금속 케이스가 일찌감치 부식된 플루토늄 핵폭탄의 플루토늄 수준이 지구의 자연적인 배경복사 수준으로 떨어진다.
수십~수백만 년 후 l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진화한다.
1억 20만 년 후 | 인류가 남긴 청동 조각품은 아직도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30억 년 후 |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모습이겠지만 갖가지 생명체가 여전히 지구상에 번성할 것이다.
45억 년 후 | 미국에만 50만톤 있는 열화우라늄-238이 반감기에 이른다. 태양이 팽창함에 따라 지구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적어도 10억 년 동안은 지구 최초의 생물을 닮은 미생물이 다른 어느 생물체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50억 년 이후 | 죽어가는 태양이 내행성들을 다 감싸면서 지구는 불타버릴 것이다.
영원히 | 파편화된 것이긴 해도 우리가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는 계속해서 외계를 떠돌아다닐 것이다.
프롤로그-원숭이에 얽힌 화두 하나
17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집과 도시, 주위의 지대, 그 아래의 포장된 땅 그 땅속에 숨겨진 흙 등을 다 그대로 두고 인간만 몽땅 추려내는 것이다. 우리를 다 쓸어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보자. 우리가 다른 생물들에게 가하는 무지막지한 압력의 부담에서 갑자기 해방되면 자연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가동하고 있는 뜨거운 엔진이 전부 꺼지고 나면 기후는 얼마나 빨리 이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까? 가능하긴 할까?
17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아담 또는 호모하빌리스 이전 시절의 푸른 빛깔과 향기를 되살리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우리가 남긴 흔적을 자연이 전부 지워버릴 수나 있을까?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도시와 토목공사의 결과물들을 다 어찌할 것인가? 무수한 플라스틱이며 비닐이며 독성 합성물질을 본래의 순한 원소로 되돌릴 수 있을까? 자연에서 너무 벗어난 것들은 영영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지 않을까?
17 그리고 우리가 창조한 가장 훌륭한 것들, 예컨대 건축, 미술, 정신의 발현 등은 어떻게 될까?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잿더미가 되도록 태워버릴 때까지 남아 있을 만한 무궁한 것이 과연 있을까? 지구가 다 타버린 뒤에라도 우주에 우리의 자취가 희미하게나마 남기나 할까? 계속 퍼져나가는 빛이나 메아리가 남아 있을까? 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다는 신화 등이 별들 사이에 남을까?
[1부] 미지의 세상으로의 여행
1장. 희미한 에덴의 향기
30 먼저 자리를 차지한 나무들 아래에서는 참나무, 단풍나무, 보리수나무, 느릅니무, 가문비나무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자라고 있다. 사람 없이 500년만 지나면 진짜 숲이 되살아날 수 있다. 유럽의 시골이 어느 날 원래의 숲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인간들이 벨로루시의 철의 장막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이곳의 들소는 인간들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2장. 집은 허물어지고
37 사막은 더 건조해지고 뜨거워지더라도 산악 지대는 더 습해지고 폭풍이 늘어날 것이다. 때문에 하류까지 급류가 쏟아지고, 댐이 넘치고, 이전의 충적평야가 범람하고, 매년 쌓인 토사가 그곳의 구조물들을 묻어나갈 것이다. 그 가운데는 소화전, 트럭 타이어, 깨진 판유리, 콘도, 사무용 건물 등이 드문드문 남긴 하겠지만 탄소 과다 배출의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 보일 것이다.
3장. 잃어버린 인간들의 도시
56 그가 담당하고 있는 다리들은 언제나 자연의 게릴라 공격을 받고 있다. 자연의 무기와 군대는 철갑을 두른 다리에 비하면 가소로워 보일 정도다. 그러나 끊임없이 다리 위에 떨어져 공중에 싹을 틔우고 페인트까지 녹여버리는 새똥을 그대로 방치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델 투포는 결국 상대보다 오래 살아남을 힘을 지닌, 원시적이지만 굴할 줄 모르는 적과 싸우는 입장이지만 자연이 결국 이기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4장. 인간 이전의 세상
62 10억 년 이상 동안 거대한 얼음판들이 남극과 북극 사이를 떠다녔다. 때로는 적도까지 밀려오기도 했다. 이 현상은 대륙이동설, 지구의 다소 불규칙한 공전궤도, 조금씩 바뀌는 자전축, 대기 이산화탄소양의 변동과 관련이 있다. 대륙들이 기본적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춘 지난 몇 백만 년 동안 빙하기가 꽤 주기적으로 반복되었으며, 한번에 10만 년 정도 지속되었다. 두 빙하기 사이의 따뜻한 해빙기(간빙기)는 보통 1만 2,000~2만 8,000년 정도 계속되었다.
69 올두바이 협곡과 다른 원인 화석의 유적지는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인이라는 점을 거의 확실히 보여주었다. 우리가 여기서 마시는 먼지에는 가루가 된 우리 지신의 DNA도 섞여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곳에서부터 각 대륙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뻗어나갔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기원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었던지 한 바퀴를 빙 돌아 우리의 태생을 증명해주는 혈육을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72 유전학 연구에 의해 우리와 침팬지가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의 체질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이 발견되지 않은 유인원에게 판프리오르Pan prior라는 이름을 붙였다.
76 우리는 농경과 정착지의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섬 같은 이 숲을 떠난 뒤 임야와 초원을 거쳐 결국 도시에 거주하는 유인원이 되었지만, 판프리오르의 다른 자손은 이 숲에서 아직도 우리가 떠날 때의 삶을 고수하고 있다. 콩고 강 북쪽으로는 우리의 형제인 고릴라와 침팬지가, 남쪽으로는 보노보가 살고 있다.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장 많이 닮은 존재가 침팬지와 보노보다. 루이스 리키가 제인 구달을 곰베로 보낸 이유는 자신과 아내가 발굴한 뼈와 두개골을 통해 우리 공통의 조상이 침팬지 비슷하게 생기고 행동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5장. 사라진 동물들
82 제퍼슨은 또 화석 뼈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멸종한 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그는 살아 있는 생물종의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흔히 미국 계몽 시대 지식인의 전형으로 평가 받는 제퍼슨의 사고방식은 당대 이신론자나 기독교인들과 일치했다. 즉 완벽한 창조의 세계에서 일단 한번 창조된 것은 멸종하는 법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87 일부가 1만 3,000년 전 아메리카에 도착할 당시, 그들은 호모사피엔스가 된지 이미 5만년은 된 상태였다. 인류는 더 커진 뇌를 이용하여 돌로 만든 창끝을 나무자루에 연결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지랫대 원리로 먼 거리에서도 위험한 대형동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창을 던지는 데 쓰는 나무 도구인 창 발사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90 신세계 대형동물의 멸종에 관한 설명 가운데 여러 해 동안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던 마틴의 전격전 이론에 제기된 또 하나의 의문은 유랑하는 수렵채집인 몇 무리가 어떻게 무수히 많은 대형동물을 모두 없애버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전체 대륙에서 사냥의 흔적이 있는 열네 곳만으로는 대형동물이 대량으로 학살되었다고 확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6장. 아프리카의 역설
102 그렇다면 인류가 1,00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더 풍부했던 것으로 보이는 아메리카의 거대동물들을 다 죽여버렸는데, 아프리카는 왜 달랐단 말긴가? 왜 아프리카에는 유명한 대형 사냥감들이 아직 남아있단 말인가? 올로르게사일리에의 현무암이나 규암으로 만든 격지석기(박편석기)를 보면 호미니드가 100만 년 동안이나 코끼리나 코뿔소의 두꺼운 가죽을 뚫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아프리카의 대형 포유류는 왜 아직 멸종하지 않았을까?
102 그 이유는 아프리카에서는 인간과 거대동물이 함께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도착한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전혀 의심할 줄 몰랐던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폴리네시아, 카리브의 초식동물들과는 달리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우리의 수가 늘어나면서 적응할 기회가 있었다.
114 영국인이 노예 매매를 그만둔 19세기 말까지, 중앙 평원에서 몸바사의 경매장에 이르는 상아와 노예의 운반로에서 죽어간 코끼리와 인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노예를 끌고 간 길이 막히자 몸바사와 나일 강의 발원지인 빅토리아 호수 사이에 철도건설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꼭 필요한 건설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120 킬로그램당 20달러 나가던 상아 값이 열 배로 오르자 밀렵꾼들은 차보 등지를 상아 없는 코끼리 사체 더미로 만들어버렸다. 1980년대에 아프리카의 코끼리 130만 마리 중 절반이 살해됐다. 케냐에 남은 1만 9,000마리 코끼리들은 암보셀리 같은 보호구역으로 몰려들었다. 국제적인 상아 거래 금지령과 밀렵꾼에 대한 사살 명령이 대학살을 늦추기는 했으나 근절하지는 못했다. 특히 공원 밖에서 작물이나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죽이는 행위까지 다 막을 수는 없었다.
121 工가 보기에 사람이 사라지면 다른 어느 곳보다 인간이 오래 점거하고 살았던 아프리카는 역설적이게도 지상에서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야생동물이 워낙 많은 풀을 뜯어먹는 아프리카는 외래 식물이 교외 지역의 정원을 뛰쳐나와 시골까지 차지해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 유일한 대륙이다. 하지만 사람 없는 아프리카에 중대한 변화도 일어날 것이다.
122 매머드가 다 죽은 뒤 농장주들이 숲을 개간하지 않았다면 목장주들이 태워버리지 않았다면, 농민들이 땔감용으로 베어내지 않았다면, 개발업자들이 불도저로 밀어버리지 않았다면, 아메리카의 숲은 어마어마해졌을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아메리카의 숲은 목질의 영양분을 소화해낼 만큼 커다란 초식동물이 살 수 있는 방대한 여유를 제공할 것이다.
[2부] 그들이 내게 알려준 것들
7장. 키프로스 섬의 비극
147 우리가 지은 건물들과 예리코에 남은 탑이 결국 모래와 흙으로 되돌아간 훨씬 뒤에도, 우리가 살았고 처음으로 벽의 개념을 터득했던 동굴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없는 세상에서 동굴은 다음 거주지를 기다릴 것이다.
8장.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151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며 도시 인구 대부분이 가난한 21세기에는 철근 콘크리트를 주제로 하는 값싼 변주곡이 일상적으로 다양하게 반복되고 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금세 무너져버릴 저가 입찰 건물들이 전 지구적으로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156 카파도키아 밑에 얼마나 많은 지하도시가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여덟 개의 도시와 그보다 작은 지하마을이 여러 개 발견되었는데 그보다 더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160 지상은 그들이 살다 죽음을 맞게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우리가 전부 사라지고 나면, 인류의 기억을 간직할 것은, 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증언해줄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방어용으로 만든 이런 지하도시일 것이다.
9장. 떠도는 플라스틱
167 톰슨은 확실히 알지 못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오래 갈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있을 만큼 플라스틱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팀은 바다에서 지금까지 아홉 종의 플라스틱을 확인한 바 있다. 그것은 아크릴,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염화비닐로 만든 다양한 화합물이었다. 그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조만간 모든 해양생물이 그것들을 먹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182 아무도 모른다. 플라스틱이 자연분해가 된 경우가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탄화수소를 분해하여 자기들의 건축재로 쓸 줄 아는 지금의 미생물들이 식물의 리그닌과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법을 터득하기까지는 식물이 탄생한 뒤로도 한참의 세월이 걸렸다. 더 최근에 와서는 오일을 먹는 법까지도 배웠지만, 아직 플라스틱을 소화하는 미생물은 없다. 50년 세월은 진화가 필요한 생화학 능력을 발전시키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10장. 텍사스 석유화학 지대
186 아팔트와 보도가 영영 분해되고 습지가 이전의 지상권을 주장하며 자리를 잡을 때까지, 모기들은 웅덩이나 막힌 하수구에서 그럭저럭 버텨나갈 것이다. 또 인간이 만들어준 또 하나의 훌륭한 보금자리가 적어도 한 세기는 멀쩡할 테고, 그보다 여러 세기가 지나도 종종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에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무로 만든 자동차 폐타이어다.
11장. 흙과 땅의 기억
228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인간이 만든 모든 화학비료의 사용이 갑자기 중단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생명이 풍부한 구역, 즉 큰 강들이 엄청난 영양물질을 싣고 와서 바다와 만나는 곳에 끼치는 어마어마한 화학적 악영향이 일거에 사라질 것이다.
230 인간이 만들어 이미 자연에 풀려나온 유전자들이 가능성이 무한한 생태계 내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는 슈퍼컴퓨터라도 예측할 수 없다. 무궁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결과 경쟁에서 완전히 도태되는 것들이 있겠지만, 반대로 적응의 기회를 제대로 붙잡아 자체적으로 진화하는 것들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3부] 인류의 유산
12장. 세계 불가사의의 운명
255 프랑스 및 미국의 많은 엔지니어를 골치 아프게 만들고 수천 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차그레스 강이 다시 옛날처럼 자유롭게 흘러 바다로 유입될 것이다. 댐들이 사라져버려 호수가 비고 강이 다시 동쪽으로 흐르게 되면, 파나마 운하의 태평양 쪽은 말라버리고 아메리카 대륙은 다시 결합하게 될 것이다. 300만 년 전에 그런 일이 마지막으로 일어났을 때, 남북을 잇는 중미의 지협을 통해 남북의 육상생물들이 양쪽으로 이동하면서 지구 역사상 가장 엄청난 생물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57 러슈모어 산의 화강암은 1만 년에 2.5센티미터씩밖에 마모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정도 속도면 소행성의 충돌이나 특별히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한(이 일대는 지진 활동이 별로 없는 대륙의 중심부에 있다), 두께 18미터 정도의 루스벨트 초상은 앞으로 720만년 동안 길이 남을 것이다.
13장. 한국 비무장지대의 교훈
267 관광객을 위해 지뢰를 싹 제거해버릴 수 있다면, 부동산 개발업자들 역시 귀한 땅을 노릴 것이다. 절충이 이루어져 역사•자연 테마파크 주변에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DMZ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생물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14장. 세상 모든 새들의 노래
269 인간 없는 세상에서 새들에게 남을 것은 무엇일까? 어떤 새들이 남을까? 작은 동전보다 가벼운 벌새에서부터 27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날개 없는 모아새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공존했던 1만종이상의 새 중에서 약 130종이 사라졌다고 한다.
271 우리가 그들을 죽인 방법 중 하나는 먹이 공급의 차단이었는데, 식량을 지배하기 위해 미국 동부 평원의 숲들부터 베어나가면서 시작되었다. 또 하나는 한번 발사하면 납 총탄 여러 개가 흩어지면서 수십 마리씩 떨어뜨릴 수 있는 산탄총을 쓰는 방법이었다.
272 수렵꾼들은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잡아야 한다는 듯 나머지들을 더 빨리 죽이기 시작했다. 1900년이 되자 상황은 끝이 났다. 불쌍하게 남은 몇 마리가 신시내티 동물원 우리 속에 갇혔고, 사육사들이 그들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914년 최후의 한 마리가 죽었다.
15장. 방사능 유산
284 핵폭발 말고 다른 이유로 우리가 이 세상을 내일 당장 떠난다면 우리 뒤에는 약 3만 개의 핵탄두가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우리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들이 폭발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284 플토토늄 무기에는 폭발가능한 공이 하나 들어 있는데 이것이 폭발하려면 적어도 그 밀도의 두 배에 해딩하는 힘이 정확히 가해져야 한다. 그와달리 인간 없는 세상에서 정작 일어나는 일은 포탄의 외피가 결국 부식해 내용물이 노출되는 것이다.
290 우리가 내일 당장 없어지든 25만 년 뒤에 사라지든, 우리보다 더 오래 남은 열화우라늄보다 훨씬 더 방사능이 많은 것들이 있다. 우리가 그것들을 저장하기 위해 산 전체를 후벼 파낼 고민을 할 정도로 큰 문제다.
16장. 우리가 지형에 남긴 것
311 에너지에 취한 인간이 내일 당장 사라진다면, 그 모든 석탄은 지구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땅속에 님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몇 십 년 더 남아 있다면 그 중에 상당량이 파헤쳐져 불태워질 것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은 한 가지 방언이 아주 잘 풀린다면, 석탄 화력발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산물의 하나를 지하에 밀폐시킴으로써 먼 미래에 물려줄 인간의 유산을 또 하나 만들어낼 수도 있다.
325 인간이 계속 남아 있다면 어떻게 될까? 워싱턴대학의 고생물학자 피터 워드는 농경지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서식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에 따르면 미래 세계의 지배자는 우리가 식량이나 작업이나 원재료나 친구 관계를 위해 길들인 소수의 동식물들이 진화한 존재가 될 것이다.
[4부] 해피엔딩을 위하여
17장. 자발적인류멸종운동과 포스트휴머니즘
330 200여 종의 박테리아도 우리를 자기네 집이라 부른다. 특히 우리의 대장과 콧구멍, 입 속, 이빨에 사는 것들이 그렇다. 수백 마리의 작은 포도상구균이 우리 피부 어느 곳에나 살며, 겨드랑이와 가랑이와 발가락 사이에는 더 많이 산다. 거의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우리한테서만 잘 살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가 없어지면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이 중에 우리의 죽은 몸을 보내는 송별회에 참석하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342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이 스스로를 회로 속으로 옮겨놓는 작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당장은 아닐 것이다. 그들과 달리 탄소를 기초로 하는 인간의 본질에 애착을 느끼는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발적 멸종을 주장하며 황혼을 말하는 레스 나이트의 예언이 아픈 데를 찌른다.
18장. 영원한 보물은 없다
350 발상 자체가 참으로 놀라웠다.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되면서 인류의 미적 표현 가운데 마지막 남을 조각들이 될지도 모를 전시물을 구상하고 연출하라는 것이었다. 기록을 담은 금 입힌 알루미늄 상자(그 껍데기는 롬버그가 디자인하기로 했다)는 일단 우주에 노출되면 우주선과 성간 먼지에 의해 풍화될 터였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예측하더라도 적어도 10억 년 이상은 버틸 것 같았다. 그 무렵이면 지각변동이나 극심한 태양열 때문에 지구상에 남은 우리의 흔적이라곤 분자 수준으로 축소될 것이다. 어쩌면 이 작업은 인간이 만든 예술품 가운데 가장 영원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356 전파는 빛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뻗어간다. 우리의 우주와 지식에는 한계가 있지만 전파는 불멸하며, 우리의 세계와 시대와 기억을 담은 방송 영상물이 그것을 타고 있다.
19장. 바다, 온 생명의 요람
367 미생물이 할 수 없었던 한 가지는 보다 복잡한 세포 구조물들처럼 풀이나 나무로 자라 더 복잡한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방식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유일한 구조물은 매트처럼 깔린 점액으로,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372 인간 생존자가 있든 없든, 지구의 마지막 멸종은 끝이 날 것이다. 현재의 멸종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지금은 또 한 번의 페름기가 아니며 험악한 소행성을 만난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괴롭힘을 당하고는 있지만 무한히 창조적인 바다가 아직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파내어 하늘에다 뿜어낸 탄소를 바다가 다 흡수하려면 10만 년은 걸리겠지만 바다는 탄소를 조개와 산호와 그 밖의 무수한 것에다 되돌려놓을 것이다.
에필로그-우리의 지구, 우리의 영혼
377 우리가 결국 끝장을 내버린, 아니면 우리가 끝장이 나버린 뒤의 지구와 다른 생명들의 운명에 관해 종교는 별 관심이 없거나 그보다 심한 수준이다. 인간 이후의 지구는 무시되거나 파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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