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싯다르타 - 10점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민음사


제1부

바라문의 아들

사문들과 함께 지내다

고타마

깨달음


제2부

카말라

어린애 같은 사람들 곁에서

윤회

강가에서

뱃사공

아들

고빈다


작품 소개

해제 연보




11 집의 응달에서, 가까이에 나룻배들이 떠 있는 강가 양지 바른 곳에서, 사라수의 그늘에서, 무화과나무의 그늘에서, 바라문의 아름다운 아들이자 젊은 매인 싯다르타는 역시 바라문의 아들인 친구 고빈다와 함께 자라났다. 강가에서 미역을 감거나, 신성한 목욕 재계를 하거나, 신성한 제사를 지낼 때면 그의 밝게 빛나는 어깨가 햇볕에 갈색으로 그을렸다.


54 「바라문의 아들이여,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들었구려. 그리고 그대가 그 설법에 관하여 그토록 깊이 사색하였다는 것은 그대에게 참으로 잘된 일이오. 그대는 그 가르침 안에서 한 틈, 한 결함을 찾아내었소. 앞으로 그것에 대하여 계속 깊이 생각하여 보는 게 좋겠구려. 하지만 지식욕에 불타는 그대여, 덤불처럼 무성한 의견들 속에서 미로에 빠지는 것을, 말 때문에 벌어지는 시비 다툼을 경계하시오. 이런 저런 의견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소. 의견이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으며, 재치 있을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소. 우리 개개인은 의견들을 지지할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소. 그러나 그대가 나한테서 들은 가르침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며, 그리고 그 가르침의 목적은 지식욕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 아니오. 그 가르침의 목적은 다른 데에 있소. 그 목적은 번뇌로부터의 해탈이오. 고타마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오」


55 당신은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던 도중에 당신 스스로의 구도 행위로부터, 생각을 통하여, 침잠을 통하여, 인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이나 가르침으로 전달하여 주실 수도, 말하여 주실 수도 없습니다. 도를 깨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고 악을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토록 명백하고 이토록 존귀한 가르침이 빠뜨리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혼자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가르침을 들었을 때 생각하였고 깨달았던 점입니다. 이 점이 바로 제가 편력의 길을 계속하려는 이유입니다.


112 그가 옛날 한창 젊은 시절, 그러니까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난 뒤, 고빈다와 작별하고 난 다음의 날들에, 몸소 체험하였던 저 높고 밝은 깨달음, 저 긴장으로 가득 찬 기대, 가르침도 스승도 없이 홀로 있던 저 자부심에 찬 고독,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겠다던 저 유연한 준비 자세, 그 모든 것이 점차 추억이 되어버렸으며 덧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때는 가까이에 있었으며 한때는 촬촬 큰 소리를 내며 홀렀던 그 신성한 샘물이 이제는 멀리서 나지막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하기야 그가 사문들한테서 배웠던 많은 것, 그가 고타마한테서 배웠던 많은 것, 그리고 그가 바라문인 아버지한테서 배웠던 많은 것, 예컨대 절도 있는 생활, 사색의 기쁨, 침잠의 시간들, 그리고 육신도 의식도 아닌 영원한 자아인 자기에 대한 비밀스러운 앎 등이 여전히 오랫동안 그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것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그의 마음속에 분명히 남아 있기는 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둘씩 아래로 가라앉아버린 상태였으며, 먼지로 뒤덮여버리고 만 상태였다.


176 뱃사공의 미소가 밝게 빛을 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싯다르타의 팔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친구여, 그 점에 대해서도 강물한테 물어보세요. 강물이 그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당신이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던 것은, 당신 아들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신은 설마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도대체 당신이 무슨 능력으로 당신 아들을 윤회의 소용돌이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겁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지요? 가르침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훈계를 통해서 그럴 수 있다는 겁니까? 이보세요, 친구. 도대체 당신은 벌써 그 이야기를, 바라문의 아들 싯다르타의 그 교훈적인 이야기를 몽땅 잊어버렸단 말인가요? 당신이 나에게 그 옛날 바로 이 자리에서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 말이에요. 누가 사문인 싯다르타를 윤회로부터, 죄업으로부터, 탐욕으로부터, 어리석음으로부터 지켜주었던가요? 아버지의 경건함, 스승들의 훈계, 자신의 지식, 자신의 구도 행위가 그를 지켜줄 수 있었던가요? 어느 아버지, 어느 스승이 지켜서서 그를 말릴 수가 있었겠어요?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일, 그러한 삶으로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 스스로 자신에게 죄업을 짊어지게 하는 일, 스스로 쓰디쓴 술을 마시는 일,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자 하는 일, 그런 일을 못하게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친애하는 친구여, 이러한 길이 어느 누구한테는 혹시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이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 아이에게는 제발 번뇌와 고통과 환멸이 면제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기 때문에, 당신 아들에게는 그 길이 혹시 면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믿고 있는 겁니까? 그렇지만 설령 당신이 아들 대신 열 번을 죽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운명을 눈곱만큼이라도 덜어줄 수는 없을 겁니다」


178 사실 그는 여태껏 한 번도 어떤 다른 사람에게 홀딱 빠져서 자신을 몽땅 바칠 수가 없었으며, 자신을 망각할 수가 없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수도 없었다. 그 당시에 그는 그런 일을 결코 할 수가 없었으며,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자기와 어린애 같은 인간들을 구분해주는 커다란 차이점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자기 아들이 나타나고 나서부터는 싯다르타도 완전히 그런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한 인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한 인간을 사랑하고, 어떤 사랑에 빠져버리고, 어떤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어버리는 그런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제 그도 인생에서 한 번, 늘그막에 와서야 비로소 가장 강렬하고 가장 진기한 이러한 열정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 열정 때문에 비참할 정도로 괴로운 슬픔을 맛보았다. 그렇지만 그는 행복에 젖어 있었고 예전과는 약간 다른 새로운 인간이 되어 있었으며, 마음이 약간 더 부유해진 상태였다.


199 이 순간 싯다르타는 운명과 싸우는 일을 그만두었으며, 고민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의 얼굴 위에 깨달음의 즐거움이 꽃피었다. 어떤 의지도 이제 더 이상 결코 그것에 대립하지 않는, 완성을 알고 있는 그런 깨달음이었다. 그 깨달음은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하는 동고동락의 마음으로 가득 찬 채, 그 도도한 강물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채, 그 단일성의 일부를 이루면서 그 사건의 강물에, 그 생명의 흐름에 동의하고 있었다.


208 고빈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네. 그럼, 아니고 말고, 이 세계는 매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면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 행로에서 얼마만큼 나아간 경지에 있는가를 감히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네. 도둑과 주사위 노름꾼의 내면에 부처가 깃들여 있고, 바라문의 내면에 도둑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야.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는 시간을 지양할 수가 있으며, 과거에 존재하였던,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생명을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가 있어.


208 그러면 모든 것이 선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바라문이야. 따라서 나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선하게 보이며, 나에게는 죽음이나 삶이 다 같게 보이며, 죄악이나 신성함이 똑같이,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이 똑같이 보여. 세상만사의 이치가 틀림없이 그러하며, 세상만사는 오로지 나의 동의, 오로지 나의 흔쾌한 응낙, 그리고 나의 선선한 양해만을 필요로 할 뿐이네. 이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나를 후원해 줄 뿐, 나에게 결코 해를 입힐 수는 없으니 말이야.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고빈다, 이것은 나의 마음속에 떠올랐던 생각들 가운데 몇 가지를 이야기한 거야.


213 고빈다가 말하였다. 「하지만 자네가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현실적인 것, 어떤 본질적인 것일까? 그것은 단지 마야의 미혹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단지 심상이나 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자네가 이야기하는 돌멩이, 자네가 이야기하는 나무, 자네가 이야기하는 강, 그런 것들이 도대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일까?」


213 「그것 역시」하고 섯다르타가 말하였다. 「나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네. 그 사물들이 가상이든 아니든 그것은 별 문제가 안 돼. 만약 그 사물들이 가상이라면, 그렇다면 나 역시 사실 가상적 존재인 셈이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 사물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와 똑같은 종류인 셈이지.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의 존재라는 사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사물들을 그토록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이고 그토록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거야.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어. 자네가 들으면 그런 가르침도 다 있느냐며 비웃을 터이지만 이것도 아무튼 하나의 가르침이야. 사랑이라는 것 말일세. 고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이 세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아마도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 만이 중요할 뿐이야」


214 「나도 알고 있어, 고빈다. 그런데 이것 봐, 우리들은 온갖 의견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한가운데에서 이런저런 말 때문에 서로 다투고 있어. 우리가 이렇게 말다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사랑에 관하여 한 말들이 고타마가 하신 말씀들과 모순이 된다는 것을,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이 된다는 것을 내가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말들을 그토록 불신하는 거야 왜냐하면 말야, 나의 말과 고타마의 말씀이 실제로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착각 때문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내가 고타마와 의견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 분이 어떻게 사랑을 모르실 수 있겠는가. 무릇 인간 존재라는 것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것을 인식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중생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온통 노고로 가득 찬 길고도 긴 한평생 동안 오로지 인간 중생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데 온 힘을 다 쏟으셨던 그 분이 아닌가! 그 분, 즉 자네의 그 위대한 스승의 경우에 비추어 보더라도 나에게는 말보다는 사물이 더 마음에 들며, 그 분의 행위와 삶이 그 분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며, 그 분의 손짓이 그 분의 사상들보다 더 중요해. 나는 구 분의 위대성이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분의 행위, 그 분의 삶에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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