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고리오 영감 - 10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민음사



고급 하숙집

사교계에 입문

불사신

아버지의 죽음


작품 해설/박영근

발자크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 연보





7 보케르 부인은 콩플랑 거리에서 태어난 늙은 여자다. 그녀는 파리의 생 마르소 거리와 라틴 구역 사이에 있는 뇌브 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서 사십 년 전부터 고급 하숙집을 경영해 왔다. 남녀노소 누구나 〈보케르 집〉으로 알려진 이 하숙집에 하숙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존경할 만한 하숙집 풍속에 대해 결코 험담하지 않는다. 젊은이가 이곳에 하숙하려면 약간의 돈만 있어도 되었다. 하지만 삼십 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젊은 사람을 한 명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기인 1819년에 불쌍한 한 소녀가 이 집으로 들어왔다. 〈드라마〉라는 단어는 눈물 짜는 문학이 성하던 시절에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멋대로 거칠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말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그 말을 사용해야겠다. 이 이야기가 이 단어 본래의 뜻대로 드라마틱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사람들은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눈물 몇 방울을 흘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가 파리 밖에서도 이해가 될까? 의문의 여지가 있다. 볼 거리와 지방색이 풍부한 이 무대의 특수성은, 몽마르트르 언덕과 몽루주 고지 사이에 있는 곧 쓰러질 듯한 벽토에 진흙투성이인 시커먼 냇물이 흐르는 유명한 골짜기 안이 아니라면 평가받을 수 없을 터이다. 생생한 고통과 가끔 위장된 기쁨이 넘쳐흐르는 이 골짜기는 너무 무서울 정도로 동요되고 있다. 


이곳에 오랫동안 계속될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면, 엄청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악덕과 미덕의 덩어리 덕분에 위대하고 엄숙해진 고뇌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모습과 맞닥뜨리면 이기심이나 이해 관계를 좇는 마음은 우뚝 멈추고 동정심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받은 인상은 마치 맛있는 과실을 급히 씹어 삼켰을 때의 맛과 같다. 자가나트의 동상을 실은 마차처럼 문명의 마차는, 다른 사람들보다 물리치기 어렵고 바퀴가 돌지 못하게 막는 사람 때문에 지체될 것 같으면, 곧바로 그를 분쇄하고서 영광스런 전진을 계속하는 법이다.


368 아! 내가 만일 부자였고,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그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

나는 저택에서 살고 있겠지. 멋진 방들과 하인들이 있을 것이고 불 피울 수도 있을 거야. 딸들은 남편들과 아이들과 함께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군. 돈은 모든 것을 다 준단 말이야, 심지어 딸까지도. 오! 내 돈, 어디에 있느냐? 물려줄 보물들이 나에게 있다면 그 애들은 나를 치료하고 간호할테지. 나는 그 애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고 그 애들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아! 내 귀여운 자식, 차라리 내가 버림받고 돈 한푼 없게 된게 더 낫네. 적어도 불행한 사람은 사랑을 받게 될 때 사랑하고 있는 것을 확신하는 법이라네. 아니야. 나는 부자가 되고 싶고 딸들을 보아야겠어. 그 애들이 모두 바위 같은 냉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맙소사, 누가 알 수 있겠나? 내 딸년들은 목석 같은 애들이야. 내가 딸애들을 지나치게 사랑했기 때문에 그 애들은 나를 사랑하지 못했어. 아버지는 항상 부자여야 되고 자식들은 마치 엉큼한 말들처럼 굴레를 씌워서 꼭 쥐고 있어야 하지.


그런데 나는 그 애들 앞에 무릎꿇고 지냈으니. 불쌍한 자식들! 딸년들은 십 년 동안이나 내 위에 위풍당당하게 군림했어. 딸애들의 결혼 초에, 내가 얼마나 그 애들을 위해서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자네가 안다면 정말 좋으련만! (오! 무섭게 아프구나!) 나는 딸년들에게 각각 약 팔십만 프랑씩을 주었네. 그애들이나 남편들이 나를 거칠게 대하지 않았어. 〈아버지. 이쪽으로 오세요, 오세요 아버지 저쪽으로〉 하고 그애들은 나를 환대했지. 나는 내 식기를 늘 딸들 집에 두었지. 나는 그 애들 남편들과도 저녁을 같이 먹었네. 그들은 나를 정중하게 대했어. 나는 아직도 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왜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내 사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안 했었네. 자기 딸들에게 팔십만 프랑이나 줄 수 있는 아버자는 돌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지. 따라서 그 애들은 나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였지. 하지만 그것은 다 내 재산 때문이었어. 세상은 아름다운 게 아니야 나는 그 사실을 알았어! 나는 말이야! 


그들은 마차를 태워서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갔지. 내가 원하는 대로 나는 야회에 머물 수가 있었네. 어쨌든 나는 그 애들을 내 딸이라고 얘기했고, 그 애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아버지로 인정했네.


395 크리스토프는 때때로 자기한테 팁을 주었던 이 노인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명의 사제와 성가대 소년과 교회의 심부름꾼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라스티냐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크리스토프의 손을 꼭 쥐었다.


「정말이에요, 으젠 씨」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노인은 친절하고 점잖은 분이었어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소리를 낸 적도 없고 남을 해치거나 괴롭힌 적도 없었어요」


두 명의 사제와 성가대 소년과 교회의 심부름꾼이 왔다. 공짜로 기도해 줄 만큼 교회가 아직 부유하지 못하던 시대에 칠십프랑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주었다. 성직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만가인 「리베라」와 「디 프로펀디스」를 노래했다. 의식은 이십 분간 진행되었다. 묘지로 가는 마차는 한 대뿐이었다. 사제와 성가대 소년이 으젠과 크리스토프도 같이 타는 것을 승낙했다.


「따라갈 사람이 없으니 늦지 않도록 빨리 가시죠. 지금 다섯시 반인데」

사제가 말했다.


시신이 영구차로 옮겨졌을 때, 레스토 백작과 뉘싱겐 남작의 문장을 그린 두 대의 마차가 텅 빈 채로 나타나서 페르라셰즈까지 장례 행렬의 뒤를 따라왔다. 여섯시에 고리오 영감의 시신은 안장되었다. 주위에는 두 딸의 심부름꾼이 서 있었다. 학생이 낸 돈으로 노인에게 베푸는 짤막한 기도가 끝나자, 그들은 곧 사제와 함께 사라졌다. 두 명의 매장꾼이 관을 덮으려고 흙을 몇 삽 퍼서 던진 다음,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중의 한 명이 라스티냐크에게 돈을 요구했다. 으젠은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한푼도 없어서 크리스토프한테서 일 프랑을 빌렸다. 그런 일 자체는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라스티냐크는 너무나 슬퍼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축축한 황혼이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는 청춘 시절에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을 그곳에 묻었다. 이 눈물은 순결한 마음의 성스러운 감동에서 홀러나왔다. 그가 떨어뜨렸던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튀어오르는 것 같은 눈물이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으젠의 이런 모습을 보고 크리스토프마저 가버렸다.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 꼭대기를 향해 몇 걸음 옮겼다. 그리고 그는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불치병자 병원의 둥근 지붕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들어가고 싶었던 아름다운 사교계가 있었다. 그는 벌들이 윙윙거리는 벌집에서 꿀을 미리 빨아먹은 것 같은 시선을 던지면서 우렁차게 말했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사회에 도전하려는 첫 행동으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 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1834년 9월

사셰에서




작품 해설/박영근

발자크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397 「고리오 영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인간 희극』의 짜임새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발자크가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 재현법〉의 실체와 이 소설가의 특징 중 하나인 〈근대성〉의 의미 그리고 이 소설가의 자리매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고리오 영감」을 보다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희극』의 체계

발자크는 처음부터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풍속사를 완벽하게 엮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런 구상은 〈자신의 이름〉으로 1827년에 처음 발표한 작품인 「올빼미당」을 쓴 다음, 여러 해가 지난 1833년 쯤 그의 머리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인간 희극』은 1789년 대혁명으로부터 1848년 혁명까지 프랑스 사회를 그린 거대한 〈벽화〉, 〈도서관〉, 〈박물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왕정복고 시절(1814-1830)과 제2제정시대(1830-1848), 곧 발자크가 몸소 체험했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인간 희극』은 하나의 큰 덩어리로 프랑스 문학사에 덩그렇게 남아있다. 이 작가는 동물학자들이


동물의 기원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구성의 통일>이란 원리를 사용해서 거대한 매듭을 엮는다. 그는 이 원리를 이용해서 동물을 분류하듯이, 인간 사회를 엄격히 분류해 나간다. 쿠비에(1769-1842)가 하나의 뻣조각으로부터 선사 시대의 동물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듯이, 이 소설가는 독립된 작품들을 『인간 희극』이라는 큰 틀로 묶어 놓는다. 동시에 작품 하나하나는 이 덩어리의 일부로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1833년쯤 발자크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따라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을 품는다. 「풍속 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고 했으나 결국 91편만 가능했다. 그는 1834년 10월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머릿속에 19세기의 사회가 들어 있소〉라고 말한다. 「철학적연구」의 서문에 이어서 「잃어버린 환상」의 서문에서도 발자크는 사회에 대한 묘사를 완벽하게 시도하며, 『인간 희극』의 짜임새를 거창하게 밝힌다.


인물 재등장 기법

399 발자크의 소설 기법 가운데에서 가장 새롭고 독창적인 것은 아마도 「고리오 영감」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인물 재등장〉 기법일 것이다. 이 소설 기법의 기원을 추적한다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발자크는 이 기법을 1833년부터 폭넓게 자신의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한다. 초기 그의 습작품에서는 이 기법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페니모어 쿠퍼 소설을 열심히 읽었고, 같은 인물이 여러 곳에서 다시 등장하는 사실을 보고 실마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매우 존경했던 월터 스콧의 소설 가운데 특히 역사 소설에 심취한다. 하지만 발자크가 그 소설들 속에 작품을 서로 연결시키는 고리가 전혀 없음을 보고 역설적으로 이 기법을 구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이 두 작가는 특정 시대의 역사와 특정 지역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어서 등장 인물들을 이어주는 매듭을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빠져 있던 발 자크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한 세대의 살아 있는 벽화의 연속성을 엿본다.


하여튼 완벽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물들을 〈다시〉 등장시키는 발자크는 〈인물 재등장〉 기법을 통해 경제적 효과를 얻어낸다. 생트-뵈브가 그의 소설 여러 군데에서 인물들이 다시 나타나는 것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어느 소설가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 기법을 만들어낸 〈인물 경제학〉의 대가인 발자크는 주인공들을 여러 소설에 등장시켜 그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쌓아올린다.


이 소설가는 「고리오 영감」에서 35명을 다시 등장시키는데, 그 이후부터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50명 이상의 인물들이 다시 나타나는 소설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고미술 진열실」에서 50명, 「사무원들」에서 85명, 「뉘싱겐 상사」에서 50명, 「베아트릭스」에서 66명, 「여자 낚시꾼」에서 62명, 「사촌 베트」에서 86명, 「사촌 퐁스」에서 70명, 「시민들」에서 67명, 「세자르 비로토」에서 104명, 떨어버린 환상」에서 116명이 된다. 심지어 「창녀들의 홍망성쇠」에서는 자그마치 155명에 이르고 있다.


그는 이 기법을 평생 즐겨 사용한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2,000여 명이 된다. 그 가운데에서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편 75편 가운데에서 36편의 소설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18편은 파리와 지방을, 21편은 파리를 완전히 벗어나서 지방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무대로 삼고 있다. 또한 460명 가운데 167명은 직업이 없다. 이들 중에서 55명은 귀족 출신이거나 신사이며, 62명은 귀족 출신의 부인들이고, 나머지 50명은 부르주아 출신 부인들이다. 다른 293명의 직업은 다양하다. 공무원, 법률가, 군인,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 사업가, 예술가 등이다. 귀족은 부르주아보다 두 배나 많고, 부르주아는 민중보다 세 배나 많다. 민중은 어디까지나 그의 소설 공간에서 배경에 불과하다. 발자크의 정치적 편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재등장의 빈도수는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의 중요성과 반드시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고리오 영감, 발레리 마르네프, 퐁스 베트와 같은 중요한 인물들은 자주 등장하지 않거나 단 한번만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니면서 남을 많이 만나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은행가인 뉘싱겐은 서른 한 번, 의사인 비앙숑은 스물아홉번, 장관인 라스티냐크와 앙리 드 마르세는 각각 스물다섯 번과 스물일곱 번씩이나 등장한다. 그리고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에 어린이와 노동자와 장인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는다. 19세기 역사의 〈비서〉가 되려고 한 그가 이들을 빠뜨림으로써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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