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숙: 인도의 경전들 ━ 베다 본집에서 마누 법전까지 / 살림지식총서 311


인도의 경전들 - 10점
이재숙 지음/살림


힌두 경전

베다

베다의 해설서들

우파니샤드: 인도 철학의 형성

대서사시

수뜨라

신화집: 뿌라나

마누 법전




5 힌두들은 현대 들어 점점 더 ‘힌두는 하나’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지만 본래 힌두교는 너무나도 다양한 종교적 행태를 동시에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종교라고 칭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사실 하나의 힌두라는 의식은 18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에 자극받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시작한 데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다양성을 바탕으로 유지되어 온 인도 사회의 다수 구성원들이 스스로 힌두라는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됨으로써 생긴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가 공유하는 구체적인 뿌리로 꼽은 것이 바로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와드 기따」 「라마야나」 「마하바라따」 등 소위 경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5  물론 다른 종교에서의 경전과 같은 절대적인 위치를 이 텍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힌두교로 불리는 다양한 믿음 체계들은 제각기 다른 이름의 신을 섬기고, 다른 관습과 규범을 가지고 있다. 경전도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다. 경전이 여러 개일 수도 있고, 하나일 수도 있고, 또 아무리 신실한 신자라도 따로 경전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5 이처럼 힌두교 경전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통일된 체계로 이루어진 종교들의 그것과는 대단히 다르다. 힌두교에는 경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정해진 기준도 없고, 어떤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기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전들은 수백 년에서 천 년이 넘도록 종교적 가르침과 영감을 제공하는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5 천계서는 하늘의 계시이고 전승서는 사람의 저작이므로 천계서는 전승서보다 더 신성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베다나 브라흐마나, 아란야까, 우파니샤드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경전이라기보다는 선택받은 사람들, 말하자면 사제(브라만)가 학습하고 이를 선택된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5  전승서는 이에 비해 누구나 접근 가능한 대중적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양심과 행동의 철학을 제시하는 「바가와드 기따」와 「라마야나」는 힌두들이 가장 가까이 접하는 경전으로 꼽을 만하다. 또 전승서에는 다양한 철학적 인식론들과 윤리학, 성애학, 설계 및 건축학, 문법학, 음성학 등 개별 학문들의 체계적 이론을 수록한 각종 경들과 브라흐마, 비슈누, 쉬와 등 세 신을 위시한 다양한 신격들의 이야기가 담긴 각종 신화집, 다르마의 구체적 전형을 제시하는 「마누 법전」 등이 있다.


7 제각기 다른 관습과 규범 속에 살아가는 인도인들 스스로가 베다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해서 모두 실제로 베다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 전역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일생의 주요한 의례에서 베다의 주문들이 사용된다. 따라서 베다는 현실적으로 각종 의례용 주문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따라서 힌두들은 ‘베다’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문헌으로서의 베다보다는 ‘의례용 주문’ ‘형이상학적 가르침’ 또는 ‘계시’의 의미로 사용한다.


8 「리그 베다」의 언어는 산스끄리뜨로 알려져 있는데, 엄격하게 말하면 산스끄리뜨는 두 가지이다. 「리그 베다」의 언어는 베다의 시어로만 사용된 ‘베다 산스끄리뜨’라고 하고, 그 밖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인도 문화의 대표적인 고전들이 기록된 언어는 ‘고전 산스끄리뜨’라고 한다. 이 둘의 차이는 전자가 화석화된 고대어인데 반해 후자가 기원전 5세기경 빠니니가 정리한 문법에 의해 교양어로 정제된 언어라는 점이다. 산스끄리뜨를 기록하는 문자는 ‘거룩한 신의 거처’라는 뜻의 ‘데바나가리’이다. 이러한 산스끄리뜨는 통용어로서의 위치는 결코 얻지 못했지만 고차원적인 지식과 상층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적이고도 상징적인 언어로서 보호받고 있다. 다언어 사회인 인도의 헌법은 16개의 국어를 지정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실제로는 통용어로 사용되지 않는 산스끄리뜨가 포함되고, 또 국영방송에서는 산스끄리뜨로 뉴스를 방송하기도 한다.


9 베다의 형식이나 내용은 그 자체로 이것이 한꺼번에 특정인물에 의해서 기획되거나 창작 또는 편집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리그 베다」의 어느 부분들이 먼저 형성된 상태에서 「사마 베다」 「야주르 베다」의 관련된 부분들이 만들어지다가 신관의 변화와 함께 「리그 베다」에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자 또 다시 관련된 베다들이 추가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형성된 베다의 텍스트들은 여러 전승 전통을 통해 구전되었으며, 현재는 19세기 막스 뮐러에 의해 수집된 판본들을 비롯하여 몇몇 수집 가능한 본들만이 베다의 원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14 「리그 베다」가 ‘호뜨리’라고 불리는 제관들의 찬양시집이고, 「사마 베다」가 ‘우드가뜨리’ 제관들이 부르는 찬양가의 악보라면, 「야주르 베다」는 제식의 실무적인 것을 담당한 ‘아드와리유’ 제관이 기준으로 삼아야 할 전체 제식의 절차, 공물의 선택, 봉헌의 절차 등에 관한 규정집이다.


17 차차 ‘브라흐만’이라는 용어가 세계의 배후에 있는 유일한 원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자, 이 개념은 베다의 신관들을 완전히 통일하여 대체할 만큼 확고한 것이 되었다. 모든 것의 원리이며 그 내부에 존재하는 브라흐만 개념에 대해 인간의 내면적 존재 ‘아뜨만’의 개념도 생겨났다. 아뜨만 개념은 「리그 베다」에서도 잠깐 나타났는데, 이때 ‘뿌루샤’라는 개념이 브라흐만을 내부에 포용하고 있는 ‘몸’이자 ‘객관적 인격’으로 묘사되었다.


19 우파니샤드는 아란야까와 마찬가지로 형식적 계보로는 베다를 계승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으로 보면 자아 탐구에 관한 거의 독립적인 문헌이다. 베다 해설서의 마지막을 형성하고 있는 우파니샤드는 ‘베단따’라고도 하는데, 베단따는 ‘베다의 끝 부분 또는 최고봉’이라는 뜻이다. 우파니샤드는 베다 사상이 수백 년 걸려 피워 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베다(veda)’는 ‘지식’ ‘알아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자연과 신에 대한 지식에서 출발한 고대 인도인들의 호기심은 결국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 사상을 만들어 냈다.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8세기부터 3세기경까지 수백 년간 쌓인 수많은 철인들의 사유와 깨달음, 가르침을 담고 있다.


23 우파니샤드의 세계관은 순환론적이다. 윤회의 개념은 우파니샤드 시대를 통해 형성된 이후 인도 우주론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23 이러한 윤회설에 따르면 세상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 무대이다. 풀벌레가 풀잎 끝에 다다르면 다른 풀잎으로 건너뛰듯 윤회에는 주체가 있고 매번 새로운 옷을 입는다. 주체는 자기 자신, 아뜨만이며, 새로운 옷이란 육신이다. 하지만 배우가 연기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스스로 그 역할에 심취하듯, 사람도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그 역할에 심취한다. 심취하다 보면 슬픔과 고통에 찌들어 괴로워한다. 이것을 환영이라고 한다.

23 이처럼 세상에는 자신의 주관적 실체를 상상조차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태를 ‘앎이 없는 상태’, 즉 무명이라고 한다. 무명은 자신의 참모습, 주관에 대한 탐구 정신을 가리는 장애물이다. 인식의 개별적 일차적 도구인 눈, 코, 입, 귀, 피부 등 감각 기관의 속성은 구조적으로 인간을 무명의 단계에 머물게 한다. 이것을 벗기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의 현실적인 의지뿐이다.


23 우파니샤드의 인과론은 질량 보존의 법칙과도 같은 행위 보존의 법칙을 만들어 낸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주관으로서의 그 자신이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를 자신이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업(karma) 사상이다. 즉, 행한 대로 거둔다, 또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24 우파니샤드는 인식 주관에 대한 탐구 과정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했다. 따라서 우파니샤드 이후에는 체계적인 관점을 공유하는 철학들이 차차로 형성되었다. 세상의 창조 과정을 분석하고 이론화하려고 한 상키야 철학, 마음의 불안 상태를 심리 분석과 정신 집중을 통해서 가라앉히고 인생의 목표를 내면의 자아의 발견에 둔 요가 철학, 제사와 같은 행위 그리고 언어의 상징과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 미망사 철학, 근원 요소와 그 속성, 원리 등을 파악하여 세상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려는 바이셰시까 철학, 논리나 추리 과정을 중시한 니야야 철학, 자신의 참모습과 우주의 근원의 관계를 파악하고 세상에서의 그 전개 방법을 제시한 베단따 철학이 모두 우파니샤드를 계승하고 아이디어 창고로 사용했다. 또 세계적인 종교로 전개된 불교 철학과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자이나 철학, 그리고 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현실적인 삶에 몰두해야 한다고 주장한 육사외도 등 유물론자들도 우파니샤드 영향 아래 나름대로의 체계를 완성했다. 


26 「라마야나」와 「마하바라따」 양대 서사시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제사를 중시한 브라만 전통과 이와는 반대로 고행 등 수행과 명상을 중시한 슈라만 전통이 조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베다의 권위는 유지되지만 베다의 신들은 거의 자취를 감춘 채 브라만, 비슈누, 쉬와의 새로운 삼신三구도가 자리를 잡고 특히 비슈누의 다양한 화신 개념과 쉬와 신앙, 여신 숭배 등 이후 힌두교의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비베다적인 전통과 베다 전통의 융합이 만들어 낸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이후 브라만 중심의 힌두교가 그 밖의 다양한 행태를 하나로 포섭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두 서사시를 통해 표준화된 인생의 4대 이상(다르마, 아르타, 까마, 목샤)5)과 인생의 4단계(학습기, 가장기, 숲 속 수행기, 기세기)6)는 힌두의 윤리관을 형성하였다.

30 수뜨라는 ‘실’ 또는 ‘끈’이라는 뜻으로, 한자 문화권에서 흔히 ‘경’으로 번역된다. 이 말은 실에 구슬을 가지런히 끼우듯, 리듬감 있는 운율과 간결한 어휘로 내용을 정리했다는 의미이다. 또 수뜨라를 전승하는 주체가 각 학파마다 다르고, 그 주체가 되는 각 학파들이 가계 중심의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에 ‘수뜨라’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35 마누 스므리띠의 ‘스므리띠’는 흔히 ‘법전’으로 번역되지만, 이것은 단순한 법전이 아니고 힌두 사회의 우주관과 세계관에 바탕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한 일련의 주체들이 그 구성원들에게 부과한 규범들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힌두 사회의 가치관 형성에 있어 ‘우파니샤드’에 맞먹는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우파니샤드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삶의 목적과 이상을 다룸으로써 관념론에 치우쳤다면, 「마누 법전」은 그것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기준으로 실체화했다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35 베다는 힌두들이 그 영원성을 바탕으로 모든 권위와 지식의 저장고라고 믿기 때문에 법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종교, 사회, 정치, 경제 등 삶의 모든 분야뿐 아니라 가족 관계, 윤리관, 신분, 남성과 여성의 관계 및 지위 등 일상적인 생활양식에 관한 기준을 베다에서 찾았는데, 이에 형성된 신분 이데올로기와 우주관을 모든 사회적 행위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 법전들도 힌두 사회에서 중요한 전승서이다. 이러한 법전에는 「마누 법전」 「나라다 법전」 「바쉬슈타 법전」 「바우다야나 법전」 등이 있는데, 특히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성립된 「마누 법전」은 중국의 사서삼경, 히브리의 모세율법과 같은 상징성과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함무라비 법전」과 함께 2대 고대 법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37 「마누 법전」이 인도사회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 뒤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철저한 신분 사회, 남성 우위 사회를 강요해 온 실질적인 근거와 잣대가 바로 「마누 법전」이라는 것이다. 불가촉천민 출신으로서 법무장관까지 지낸 암베드까르는 1927년 이러한 「마누 법전」을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화형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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