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D.커크패트릭: 쇠얀 키에르케고어 ━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쇠얀 키에르케고어 - 10점
매튜 D.커크패트릭 지음, 정진우 옮김/비아



서문

1.개인과 윤리의 토대

2.개인과 윤리의 체계

3.개인과 윤리의 내용

결론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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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과 윤리의 토대

22 키에르케고어는 어떤 사람도 '나'를 말하거나 개인으로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절망과 불안에 직면했을 때 거기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직접성의 환영 속에서 자신을 상실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 불가능하고 측정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 우리가 창조주 없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되면 철학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조직하는 이성적인 체계와 인식론을 사용하여 우리를 안심시켜 준

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규범들은 그것이 제도적이든 혁명적이든 간에 온갖 수치들로 우리의 등을 토닥이며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있다고, 또는 잘 살수 있다고 격려한다. 현실 그리스도교에서 이루어지는 반성은 우리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값싼 은총을 전한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이나 우리 자신이 진실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고자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 보려 할 때마다 그 시선을 가로막는 장막일 뿐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직접성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가면들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가면을 씀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존재하거나 키에르케고어 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원치 않는 대로 존재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망각한다. 여기서 죄는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자아가 하느님 앞에 서기를 거부하는 상태다. 모든 행위는 그러한 상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23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어의 대답은 간단하다. 너 자신, 즉 개인(단독자)이 되어라.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운동을 거쳐 나가야 한다. 첫 번째 운동은 우리가 겪는 곤경과 우리가 지닌 본성의 실재를 직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심연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과 세계 이해의 토대를 상실했음을 깨달아야 하며 우리가 창조한 사물의 본질이 기만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로지 그렇게 할 때만 하느님은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우리 실존을 위한 토대를 보여주시고 자유의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분열된 본성을 균형 잡아주신다. 하느님이 여전히 직접성의 환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오신다면 하느님은 그들에 의해 직접성의 환영으로 전도되어 버릴 것이다.


2. 개인과 윤리의 체계

38 키에르케고어는 우리에게 윤리 체계들과 대립하는 신앙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신앙과 윤리는 어느 지점에서 구분되는가? 윤리와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이성 일반은 단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일 뿐인가? 그렇다면 그로브 북스 윤리 시리즈 목록은 인간의 죄를 홍보하고 인도하는 책들의 목록인가? 분명 그렇지는 않다. 키에르케고어의 의도는 이성과 윤리를 폐기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성 역시 하느님 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적인 능력이다. 다만 키에르케고어는 우리가 왜 하느님과 우리 자아와는 동떨어진 환영 속에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윤리와 이성은 그러한 환영을 실체화하기 위해 어떤 기만을 해 왔는지에 관심 두기를 바랐다.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신앙의 도약을 하는 가운데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를 경험한다. 즉 그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라는 더 높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윤리적인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론적 정지를 통해 윤리적인 것에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신앙의 도약 속에서 아브라함은 영원한 것 안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시간적인 모든 것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것을 통해 시간적인 것을 또다시 되돌려 받기도 한다. 아브라함은 영원한 것에 머물러 있으므로 이제 더는 시간적인 것과 직접 관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모든 시간적인 것을 하느님을 통해 경험하고 바라보며, 시간적인 것 안에서도 전능하신 하느님을 발견하면서 시간적인 모든 것이 마치 영원한 것을 통해 매개된 것처럼 받아들인다. 


3. 개인과 윤리의 내용

57 관능적인 사랑은 감정의 변화들로 인식된다. 누군가에게 관능적인 사랑을 느끼면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온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거나 그 사람을 보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감정의 신호들은 사랑이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신호들은 자기-사랑, 집착, 혹은 또 다른 감정의 변화들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은 오로지 그 사랑의 결실을 통해서만 인식된다고 키에르케고어는 말한다. 한 사람이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사랑의 정체를 알 수 있어야, 사랑의 결실들을 통해 증명되는 그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 사랑의 참된 현존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의 행동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키에르케고어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본질적인 특성이 의무라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낭만주의자는 의무란 사랑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낭만주의자는 반복적으로 요구되는 의무란 마치 활활 타오르던 촛불의 심지를 잘라 버리는 가위처럼 사랑을 식어버리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키에르케고어는 반대로 의무야 말로 꺼져가는 잿더미의 불씨를 되살리는 부채질과 같다고 말한다. 사랑은 의무의 지원과 보호를 받을 때만 자기 감정이 갖는 불안, 사랑하는 대상의 변화와 사랑의 결실들이 드러나는 시간의 시험을 견딜 수 있다. 사랑은 의무의 인도를 받을 때 그 무엇도 그 경로와 강렬함을 대신할 수 없는 영원성을 얻는다.


결론

63 키에르케고어는 독특하고 비범한 사상가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그의 윤리학이다. 그의 사상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그리고 그들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기를 권한다. 그러한 열정도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의 황혼기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가장 커다란 위험은 무언가가 우리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끔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참된 자아를 바라볼 수 없도록 매력적인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그 가면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조차도 참된 자아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하느님 앞에 선 단독자의 내면에서 유래하지 않은 모든 외적 행위와 겉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키에르케고어 윤리학의 전체 핵심을 성서의 구절로 압축한다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바울로의 진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믿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행위는 모두 다 죄가 됩니다. (로마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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