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J. 칼루파하나: 불교철학의 역사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0. 5. 28.
불교철학의 역사 - D. J. 칼루파하나 지음, 김종욱 옮김/운주사 |
제1부 초기불교
제1장 궁극적 객관성의 탐구와 인도 철학
제2장 붓다의 생애
제3장 인식과 이해
제4장 경험과 이론
제5장 언어와 의사소통
제6장 인간의 주체성
제7장 대상
제8장 괴로움의 문제
제9장 자유와 행복
제10장 도덕생활
제11장 대중의 종교 사상
제2부 연속과 불연속
제12장 절대주의의 출현
제13장 목갈리풋타 팃사와「논사」
제14장 아비담마
제15장「금강경」에서 지혜의 완성
제16장 나가르주나와「중론」
제17장「법화경」과 개념적 절대주의
제18장「능가경」과 대공성
제19장 바수반두와「유식론」
제20장 디그나가의 인식론과 논리학
제21장 붓다고사, 조화의 추구자
제22장 탄트라와 파릿타 : 유언의 전통
제23장 고요한 명성과 선 : 무언의 전통
결론 : 철학과 역사
부록:「능가경」의 역사
약어
간추린 참고문헌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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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초기불교
제1장 궁극적 객관성의 탐구와 인도 철학
60 불교가 등장하기 이전의 네 가지 주요 철학 전통 ─ 브라흐만교·유물론·아지비카 철학·자이나교─은 대체로 인간의 인식과 관련하여 어떠한 불확실성이나 회의주의적 요소도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던 것 같다. 결정론과 자유의지 간의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서 일종의 상대주의적인 관점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이나교도들조차도 결국에는 전지성 이론에 경도되어 상대주의를 포기해 버렸다. 회의론이라는 문제에 그래도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는 오직 산자야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산자야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긍정적인 진술도 극도로 자제하였다. 브라흐만교의 사상가들처럼 경험적 묘사를 넘어선 어떤 궁극의 실재를 상정하지 않고 부정적인 진술에만 의존했다는 점에서 산자야는 절대주의자들과 구분된다.
62 철학적 담론을 통해 궁극의 객관성에 도달하려는 시도의 결과가 절대주의라면, 그리고 그러한 시도가 실패한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극단적인 회의주의라고 한다면, 붓다가 인간의 경험에 관해 설명한 것은 그러한 객관성의 갈구 자체를 파기하고 중도를 통해서 절대주의와 극단적 회의주의 모두를 지양하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장 붓다의 생애
70 탐욕이나 증오를 제거하고 성향들을 가라앉힘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세계관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궁극적 객관성을 좇지도 않고 또 다른 관점들을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죽 어떠한 형태의 절대적인 영원한 존재도 갈구하지 않고 또 단순히 허무적인 비존재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그는 인간이라는 개념의 본질을 탐구하였던 것이다. 성향들을 가라앉히게 되자, 그는 개념 그 자체를 절대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실용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마침내 성가신 최후의 장애물인 어리석은 심적 혼란을 없애 주었다.
77 붓다는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제도하는 생활을 쉴 새 없이 했기 때문에 점점 더 건강을 잃어갔다. 게다가 6년간의 고행의 후유증도 일조를 하였던 것 같은데, 이 부분에 관해서는 별로 전거가 남아 있지 않다. 부득이 처소로 돌아가려고 설법을 중단할 때에는 제자 중 한 사람에게 그 설법을 마무리 짓도록 할 만큼 붓다는 비구니를 포함하여 자신의 제자들 대부분을 상당히 신뢰하였다 이들은 이미 깨달음과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견해는 붓다의 설법 속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전통을 창시한 사람을 극도로 촌경하는 인도 전래의 풍습에서도 나타나듯이,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은 붓다를 유일한 구원자로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는 자신이 설한 가르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어떠한 광적인 숭배도 피하고자 노력하였다. 다름 아닌 오직 가르침만이 그들의 인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제3장 인식과 이해
86 붓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감각 경험의 감정적인 면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도덕적 결의들을 실제 세계와 무관한 자의적인 결심으로 남겨 두지 않고, 그것들을 경험의 세계 속에 근거하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느낌이란 인간을 압도하여 그에게서 모든 합리적인 사고를 빼앗아 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형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경험의 불가피한 요소인 감정은 우리가 지닌 어리석은 혼란과 괴로움의 주된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7 육사외도의 이론적 배경과 비교해 볼 때 인간의 주체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외도의 스승들이 객관적으로 쉽게 자신들과 동일시될 수 있는 신체나 신체 활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인간의 주체성을 소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자 했었던 데 반해서, 붓다는 여기서 그렇게 객관적으로 동일시하거나 분석하기가 힘듦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인간의 주체성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로 도입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행동이나 인간의 자아를 순전히 신체적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거부하였다.
제4장 경험과 이론
110 불교의 경험 분석에서는 각 진술은 시간과 무관하게 단 한 번만 참이거나 단 한번만 거짓임을 요구하는 어떠한 논리적인 기도도 조장하지 않는다. 또한 그런 비시간적 진리를 비시제적 진술 속에서 형식화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앞에서도 강조했고 앞으로도 논의할 것이지만, 붓다가 사용한 철학적인 용어는 주로 과거분사, 즉 방금 전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표현하는 언어에 제한되고 있다.
127 현상을 의존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기술하는 것은 양 극단 사이의 틈새를 헤쳐 나아가는 중도를 가능케 한다. 첫째로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의 동일성이나 복수의 동일성들을 지지하는 이론들이 대부분 상정하는 것 즉 원인과 결과의 근저에 놓인 신비스러운 실체라는 것을 상정하는 일을 피한다. 붓다는 이런 동일성 개념을 형이상학적이라고 하여 거부하였다. 둘째로 그것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인 절대적 구분을 삼감으로써, 원자론적인 존재이론을 배제한다. 그런데 이 이론은 경험주의적이라기보다는 이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시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분석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초기의 경전에서는 원자나 순간 등의 개념을 표현하는 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138 붓다는 이런 원리가 비록 타당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물이나 견해에 대한 애착에 정신을 빼앗겨 즐거워하고 있는 일상의 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런 성향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은 가장 분명한 사실들에 대해서 조차도 무지할 정도로 눈먼 장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존성을 지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원리 자체와 관련된 어떤 신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비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면에 숨겨진 어떤 것이라는 신비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불안과 좌절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신비도 찾지 않고 사물을 되어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사람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고양된 마음의 평화를 향유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존적인 일어남을 평온하고도 고귀한 것으로 묘사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제5장 언어와 의사소통
153 그리하여 언어에 의해 정형화된 법이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어떤 사람이라도 붓다가 비판한 언어 접근 태도인 지나친 얽매임이나 위반 등의 태도를 취하는 이상, 상이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서 뿐만 아니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사 소통은 불가능하게 된다. 첫 번째의 것은 언어 속에 사용된 각 관념이 인간의 경험으로는 접할 수 없는 불변적인 대상을 가진다는 것(즉 존재론적 연루)을 함축하는 데 반해서, 두 번째의 것은 인간의 경험이 언어를 통해 전달될 수 없다는 것(즉 언어적 초월)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붓다는 후자보다도 전자를 더 비뚤어진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따라서 그의 의사소통 방법에서는 존재론적 연루의 문제를 먼저 다루고, 그 다음에 언어적인 초월에 관해서 취급한다.
153 이것은 붓다가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취한 상당히 의미심장한 의사소통 내지 전환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설법 방식의 심리학적인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를 마술과 같은 전환의 힘을 지닌 인물로 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술이나 신비는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붓다가 실제로 한 것은 각 개인의 지적 성숙도와 심리 상태를 신중히 관찰하여, 그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설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네 가지 단계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한역 아함경에서는 그것들을 붓다의 방편이라고 하여 올바르게 특징짓고 있다.
제6장 인간의 주체성
156 붓다도 그런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 우선 소위 심리적 주체성이라는 것에 대한 분석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마다, 그는 느낌·지각·성향·의식 등과 같은 경험의 전혀 다른 몇몇 측면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만약 이런 심리적 요소들과는 다른 것이 인간의 주체성을 구성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 중 그 어떤 것도 영원불변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즉 그것들은 모두 변화와 변형과 소멸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들은 덧없는 것들이다. 그런 것이기에 그것들로부터 아무리 만족을 얻는다 해도 그 만족은 그것들에 의해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러한 만족은 흔히 불만족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붓다는 그것들을 만족스럽지 못한(dukkha, 苦) 것으로 보게 되었다.
158 소유의 느낌은 단순히 인간의 관심에 의거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붓다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신체·느낌·지각·성향·의식 등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런 경험들의 소유자로 간주되는 어떤 신비적인 실재물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진술은, 첫 번째 진술에서 부정된 저 신비스러운 실재물을 직접 지칭하고 있다.
169 인도의 철학적 전통 일반과 그중에서도 특히 불교의 전통에서는, 심리적인 구성 요소와 물리적인 구성 요소로 온전하게 이루어진 주체성을 가리키는 말로 명색(名色)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비록 이런 심리적 ·물리적 주체성이 그의 부모나 가까운 동료나 주변 환경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하여 조건지워지기는 하지만, 그런 여러 요인들 중에서도 의식이 가장 두드러진다고 붓다는 믿고 있었다. 이런 관점으로 인하여, 붓다는 외부의 분명한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을 개발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게 되었다.
172 이것 저것을 끊임없이 열망하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갈구하며 관념들에 교조적으로 집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속박과 고통의 원인이며 조건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으로 귀결되고 마는 생활이며, 이를 방지하는 것이야 말로 불교의 최고 목표이다.
제7장 대상
185 붓다는 그의 제자들에게 세상을 공하고 비실체적이며 근거 없는 것으로 보라고 자주 충고하곤 하였다. 실체라는 개념은 보통 순식간에 변화하며 흘러가는 경험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필요성은 이 경험들을 의존적으로 일어난 것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따로따로 분리된 별개의 실재물로 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분석하여 너무 날카롭게 경계를 확정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관계들을 설명할 수 있는 여지를 더 이상 남겨 놓지 않게 된다. 대상들을 그런 식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실체들에 근거 지을 필요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경험의 대상들이란 고정되지 않은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실체적 존속성을 비워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86 대상이 개인에게 미치는 정서적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그런 대상에 미혹되어 그것을 찬양하고 그것에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시각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현혹되어 생겨나는 기쁨은 수많은 실망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붓다가 주체나 주관의 비실체성을 강조했던 것은 개별성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개별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객체나 대상의 비실체성을 제시하는 것도 대상에 관한 모든 견해들을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객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맑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할 수 있다.
제8장 괴로움의 문제
192 붓다는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을 고통스럽고 실망스럽게 만들고 마는 조건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나서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 즉 "‘간단히 말해서, 주체성을 이루는 다섯 가지의 집적체들 ― 몸·느낌·지각·성향·의식 一 을 나의 자아의 소유로 집착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 여기에서는 다섯가지의 집적체들이 곧 괴로움이라는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런 다섯 가지의 집적체들을 어떤 신비스러운 실재물이나 자아의 소유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붓다는 괴로움이라는 문제의 원인을, 인간의 자아성이나 주체가 취급되는 방식에서 찾고 있다.
196 붓다는 보편 군주의 위엄과 그가 향유하는 궁전이나 연못이나 정원과 같은 시설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것들은 결국에는 쇠락과 소멸로 이르게 되는 성향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덧없고 성향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사로잡혀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집착한다면, 결국 우리는 괴로움을 겪고 말 것이다. 따라서 성향적으로 조건지어진 현상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그것들이 자신을 영원불변의 실재물로 여기게끔 하는 그릇된 인상을 스스로 심어 놓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산출되었고 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만이, 그런 것들의 파괴와 소멸로 인해 야기되는 어떠한 괴로움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현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붓다의 진술은 성향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들에만 제한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야말로 각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 거기에서부터 스스로 쉽게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상들이 덧없고 불만족스럽다는 깨달음, 그리고 경험되는 현상들은 모두 비실체적이며 의존적으로 일어난다는 깨달음만이 괴로움의 소멸과 자유나 행복의 성취를 이룰 수 있게 해 준다.
제9장 자유와 행복
205 탐욕이나 갈망이라는 괴로움의 원인(두 번째의 성스러운 진리)을 없애 버림으로써, 현재의 경험 세계에 의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님아 있다는 것(세 번째의 성스러운 진리)이야말로, 괴로움이라는 문제(첫 번째의 성스러운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성취한 자의 행위는 앞서 검토된 괴로움의 개념을 통해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216 붓다가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침묵을 지킨 것은, 이것들이 언어적인 표현을 넘어선 문제들이기 때문에 그가 진술하기를 망설였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참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침묵은 답변이나 설명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질문들을 계속해서 제기할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붓다가 그와 같은 질문들이 제기되었을 때 단순히 침묵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실 붓다는 그러한 물음의 제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시하였다. 그 이유는 그런 물음들 자체가 답변은 고사하고, 전혀 의미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물음들은 단지 인식론적으로 무의미하고 답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도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대한 답변이 인간의 직접적인 괴로움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제10장 도덕생활
222 붓다는 어떤 행위나 규칙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특정한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서만 옳은 것으로 보이는 행위나 규칙들도 있는 것이다. 붓다에게 행위나 규칙의 옳고 그름은 그것의 상황적이거나 맥락적인 타당성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특정한 맥락이나 상황 속에서 개인이나 집단에게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따라서 어떤 행위나 규칙이 단순히 옳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수행하거나 채택해서는 도덕성을 이룩할 수가 없다. 행위나 규칙이 전 인격성 또는 그와 연관된 집단 전체에 미치는 효과가 바로 그런 행위나 규칙에게 도덕적인 성격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도덕으로 만들어진 것이 도덕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전자가 인위적인 것인데 반해 후자는 진정한 것이다. 도덕적인 인간은 훈장을 수집하려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그대신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은 도덕적인 행위의 수행과 더불어 성장해 간다. 그러므로 도덕성에 이르는 길은 점진적인 길임이 밝혀진다.
제11장 대중의 종교 사상
244 형이상학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영원불변한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일관성이 없는 제멋대로인 것으로 본다. 세상에 관한 이러한 단정들에 대해 아는 것 역시 세상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이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경향이나 습성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본성을 탐구하면서 빠질 수 있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붓다가 세상을 '의존적인 일어남'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런 성향들을 가라앉히고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에의 추구를 단념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46 귀의를 한다는 것과 보호나 원조를 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개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신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그들의 신세에 대해서 감사를 표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 불교도들이 자기 자신이 행한 선행의 공적을 신들의 상징적인 선물로 돌리기도 하지만, 그런 헌신은 붓다에게 어울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서 붓다를 숭배한다고 해서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내맡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붓다를 숭배한다는 것은 도덕적 완성이라는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한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인이라면 자신의 신앙이나 종파가 무엇이든, 그러한 이상을 높이 평가하고 그런 인물을 존중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제2부 연속과 불연속
제12장 절대주의의 출현
268 붓다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방금 거론된 경향들이 그에 의하여 엄격하게 단속될 수 있었고, 또 그럼으로써 절대주의라는 괴물이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막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후계자를 지정하는 데는 망설이면서도 자신이 설한 가르침과 자신이 세운 계율을 앞으로 제자들의 안내자로 삼으라고 주장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제자들이 원하는 대로 가르침을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그들에게 남겨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때문에, 제5장에서 논의된 것과 같은 해석학적인 원리들이 신속하게 형성되었고, 붓다의 사후에 삼개월간 첫 번째 결집이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약 두 세기 반 동안 수많은 논쟁들이 또다시 표면화되었다 그들 사이의 논쟁은 앞서 언급했던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① 개인의 연속성의 본질, ② 개인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실재성 ③ 자유롭게 된 자의 지위이다. 이것들은 아쇼카 왕 시대의 철학적 논쟁의 중심 주제들이었다.
273 설일체유부의 학자들은 사물이나 사건이나 현상과 그것의 내재적인 본성 사이를 구분하였다. 이것은 이제까지 불교의 철학적 전통 속에 나타난 것들 중에서 가장 분명하고도 철저한 본질주의적 견해이다. 이것은 그 학파의 가장 뛰어난 스승들 중의 한 사람인 다르마트라타의 사상을 통해 아주 잘 표현된다.
제13장 목갈리풋타 팃사와「논사」
281 니그로다 비구로 인해 아쇼카 왕이 불교로 개종함에 따라, 불교 사원의 물질적인 부는 중대되었으나, 그 때문에 교단의 화합에 저해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도들 사이에서 이단적인 견해들과 불건전한 행동들이 출현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견해들과 행동들 때문에 세 번째 결집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논사』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수백 가지의 계율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 불교가 얼마나 타락되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거기서 다루어지는 주제들 중에서 교리 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당시리는 짧은 기간에 발생한 문제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제12장에서 지적하였듯이, 이것들은 붓다의 생전에도 있었고 목갈리풋타 팃사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오다가, 아쇼카 왕의 주청에 의해 그것들을 반박하는 방법과 수단이 고안된 문제들이었다.
결론: 철학과 역사
488 불교가 아시아 대륙 전역에 평화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많은 역사가들이 당혹감을 느껴 왔다. 그러나 전통의 수호라는 측면에서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교리를 전파하는 데 실제로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불교가 이념상의 조화를 자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군소 학파들 간의 수많은 논쟁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몹시 적대적이기까지 한 하나의 거대한 갈등이 수세기 동안 불교의 전통에 만연되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 사이의 대립이다. 이런 균열이 일어났던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들이 어떻든 간에, 그것은 앞서 평화와 조화를 이룩하는 데 기초가 되었던 철학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함으로 인해 확대 심화되었다. 붓다는 평화를 취하고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중도를 제안하였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극단적인 관점들 사이의 중도를 의미했다 따라서 그것은 인식론적으로는 절대론과 회의론 사이의 중도였고, 존재론적으로는 영원론과 허무론 사이의 중도였으며, 윤리학적으로는 의무론과 정의론 사이의 중도였고, 언어 철학적으로는 실재론과 유명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사이의 중도였다. 이러한 극단들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붓다는 일종의 상대주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상대주의를 탐탁스럽지 않게 여기도록 만드는 어떤 다른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이상, 붓다에게 상대주의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에게 상대주의를 탐탁스럽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나 믿음이나 시각이 그것들이 형성되고 주창되며 채택되는 조건들에 상관없이 다른 것들에 비해 반드시 우월해야만 한다고 보는, 흔히 주장되면서도 잘못된 견해 때문이다. 만약 이론이나 믿음이나 시각의 타당성과 관련해 어떤 절대적안 확실성이 존재한다면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붓다의 인식론과 논리학을 분석해 본 결과, 우리는 그가 이런 확실성을 주장했다는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그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491 불멸 후 1세기 경의 제2차 결집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분열 때문에,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라는 두 개의 거대한 학파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대중부가 대승볼교의 선구자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중부의 교리가 담긴 문헌들을 읽어 보아도 그들이 법화경이나 능가경 상의 대승불교의 교리들과 비견될 만한 것들을 낳는 데 일조를 하였다고 시사하는 대목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붓다의 절대적 초월성이나 전지성과 같은 문제가 될 만한 이론들의 대부분을 만들어 냈던 것은 바로 설일체유부였는데, 이들 이론은 현상 속에 불변적 실체 개념을 상정함으로써 야기된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우리는 설일체유부의 이론들이 논사의 저자에 의해 반박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이런 이론들 중 어느 것도 자열한 것이라고 비난받지는 않는다.
492 이미 언급하였듯이, 『법화경』은 상좌부 불교뿐만 아니라 초기불교까지도 저열한 것으로 매도한 최초의 경전이었다. 『법화경』이 적개심에 가득 찬 갈등을 유발시킨 잘못을 범하기는 하였지만, 대승불교를 이단으로 부른 상좌부 측의 대응도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양측은 서로를 매도하는 대신에 각자의 이론이 제시되는 맥락에 따라 각 이론의 실용적인 가치를 신중히 검토했어야만 했다. 만약 그러한 분석이 수행되었더라면 이념적인 균열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홍미로운 사실은, 상좌부 불교는 붓다고사에 의존하고 대승불교는 법화경에 의지함에도 불구하고, 두 전통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의 지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각 전통의 일부 추종자들은 유사성을 무시하고 차이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 때문에, 이런 지반을 인정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깨달음에 이른 스승들 ― 상좌부 불교에서 숭앙받는 목갈리풋타 팃사나 대승불교에서 존경받는 나가르주나와 비수반두와 디그나가 ― 의 피나는 노력으로 가꾸어진 이 공통의 지반은 비분파주의의 명백한 징표를 오랜 세월 동안 보여 주었다. 그들은 모두 역사상의 붓다의 가르침들을 되살리려는 결의에 충만해 있었다. 그들의 저술들은 수세기 동안 존속되어 온 불행한 이념적 불화에도 불구하고, 두 전통 모두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둘 사이의 연속선을 확보해 주는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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