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2 - 스완 댁 쪽으로 2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2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이형식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2부 스완의 어떤 사랑 · 7

3부 고장의 명칭-명칭 · 317

옮긴이 주 · 387




2부 스완의 어떤 사랑

9베르뤼랭 내외가 구심점을 이루는 ‘작은 핵’의, ‘작은 덩어리’의, ‘작은 동아리’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 하나만 충족시키면 충분했다. 그러나 필요한 조건이었다. 그 조건이란 하나의 크레도에 묵묵히 동의해야 하는 것이었던 바, 그것의 신앙 조항들 중 하나는, 그 해에 베르뒤랭 부인의 후원을 받았으며, 또한 그녀가 ‘바그너의 작품을 그처럼 완벽하게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법을 어기는 짓이야!’라고 칭찬하던 젊은 피아니스트가, 쁠랑떼와 루빈슈타인을 아예 보이지도 않게 ‘처박을’ 만큼 능가하며, 의사 꼬따르가 진단에 있어서 뽀땡보다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자기네 집에 오지 않는 사람들의 야회는 궂은비처럼 지루하다는, 베르뒤랭 내외의 말에 설복당하지 않은 모든 ‘신참들’은, 즉시 축출되는 처지를 맞았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는 여인들이 남자들보다 더 반항적이어서 사교계에 대한 자기들의 호기심과 다른 응접실들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직접 알아보고 싶은 욕구를 감추지 않는지라,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베르뒤랭 내외가, 그렇게 검토하려는 성향과 경박함의 악령이 전염성 때문에 자기들의 작은 교회의 정통 신앙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두 내외가 모든 여성 ‘신도들’을 연속적으로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그해에는 여성 신도들이, 의사의 젊은 아내를 제외하면(비록 베르뒤랭 부인 자신은 덕망 있었고, 또 그녀가 스스로 조금씩 일체의 관계를 중단한, 매우 부유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어느 존경스러운 부르주와 가문 출신이었지만), 베르뒤랭 부인이 격의 없이 오데뜨라고 그 이름을 부르며 ‘사랑의 신’이라고 추켜세우던, 화류계 출신에 가까운 크레씨 부인이라는 사람과, 피아니스트의 숙모뿐이었는데, 그녀는 출입문의 빗장 끈이나 당기던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두 사람 모두 사교게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그녀들의 어수룩함으로 하여금, 싸강 대공 부인과 게르망뜨 공작 부인이 자기네들의 만찬에 사람들을 참석시키기 위하여 가엾은 사람들을 매수할 처지에 있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 어찌나 쉬웠던지, 만약 어떤 사람이, 그 두 지체 높은 귀부인 댁에 초대되게 해주겠노라고 그녀들에게 제안하였다면, 그 옛날의 여자 문지기와 갈보는 그러한 제안을 멸시하듯 거절하였을 것이다.


3부 고장의 명칭-명칭

344 내가 질베르뜨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항상 그녀를 보고 싶은 욕구를 느꼈는데, 그것은, 그녀의 영상을 나의 내면에 떠올려 보려 끊임없이 시도하였건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나의 사랑이 무엇에 상응하고 있었는지 그 대상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나를 좋아한다고 그녀가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기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남자 친구 아이들이 있다고 자랑하듯 자주 떠들어댔으며, 나는 비록 너무 방심한 채 놀이에 열중하지는 않으나, 자기가 기꺼이 함께 놀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동무라고 하였다. 또한 그 이외에도, 내가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일 것이라는 나의 믿음을 뒤흔들 수 있었을, 만약 그러한 믿음이 실제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녀에 대하여 품고 있던 연정에서가 아니라(그랬다면 내적 필요에 이끌려 질베르뜨에게로 향하고 있던 내 생각의 태도 자체에 그 믿음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지라 그것이 그 믿음을 다른 식으로 더 견고하게 만들었겠지만) 질베르뜨가 나에 대하여 혹시 품었을 연정에서 발원하였다면 나의 그러한 믿음을 뒤흔들 수도 있었을, 냉담한 기색을 그녀가 이미 나에게 자주 드러냈다. 그러나 나 자신 또한, 그녀에게로 향하던 내가 품고 있던 감정을 아직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밝히지 않았다. 물론 내 공책의 모든 페이지에 내가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무한히 반복하여 쓰곤 하였지만, 내가 아무리 그린다고 해도 그로 인해 그녀가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 그녀로 하여금 내 주위에 아무리 큰 가시적인 자리를 잡게 하여도 그로 인해 그녀가 나의 생활에 더 깊이 참여하게 해주지 못하였을 그 선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의기소침해짐을 느꼈으니, 그 선들이 그것들을 보지 못할 질베르뜨에 대하여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에게 순전히 개인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지겹고 무기력한 무엇처럼 보여 주는 듯하던 내 자신의 욕망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절박했던 것은, 질베르뜨와 내가 서로를 보는 것,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때까지 채 시작되지도 않았을 사랑을 서로에게 고백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녀를 보지 못하여 나로 하여금 그토록 초조해하게 만든 이런저런 이유들이 성숙한 남자에게는 훨씬 덜 강압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나이가 더 들면, 즐거움을 가꿈에 있어 우리가 더 능란해져, 내가 질베르뜨에 대하여 생각하듯 어떤 여인에 대하여 생각하되, 뇌리에 떠올리는 영상이 실체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근심하지 않고, 생각하는 즐거움만으로, 또한 그녀도 우리를 사랑하는지 확신할 필요도 없이 오직 그녀를 사랑하는 즐거움만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때가 도래한다. 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얻기 위하여 다른 꽃 여러 송이를 희생시키는일본 정원사들을 모방하여, 그녀가 우리에 대하여 품은 애정을 더욱 생명력 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그녀에 대한 우리의 애정을 그녀에게 고백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을 때도 도래한다. 그러나 내가 질베르뜨를 사랑하던 그 시기에는, 사랑의 신이라는 것이 정말 우리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가 우리에게 한껏 허용하는 것은 고작 우리가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일뿐이고, 우리가 아무것도 임의로 변경시킬 수 없는 질서 속에서 그 신이 우리에게 행복들을 제공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만약 내가 내 독단으로 달콤한 고백을 가장된 무관심으로 대체할 경우, 내가 가장 자주 꿈꾸던 기쁨들 중 하나를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내가 자칫, 그 신비롭고 이미 존재해 왔던 진정한 사랑의 길들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진정한 사랑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인위적이고 무가치한 사랑 하나를 내 멋대로 조작해 갖는 것처럼 보였다.


385 나는 내가 회상하던 그 상태로 그 순간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한 일이다! 온통 하얗고 여기저기에 하늘색 수국들을 그려 치장한 루이 16세 시절 풍 아파트들밖에 없었다. 게다가 모두들 아주 늦게서야 빠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내가 혹시 스완 부인에게, 먼 옛날 어느 해와, 즉 그곳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형성년도와 결부되었으리라고 느끼던 추억의 요소들을, 즉 옛날 나의 욕망이 헛되이 추구하던 쾌락처럼 이제는 그 자체도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그 욕망의 요소들을, 나를 위하여 재구성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해도, 그녀가 어느 성에서 나에게 답신하기를, 2월에나 빠리로 돌아올 것이라 하였을 것이다. 또한,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던 시절, 나의 상상력이 개별화하여 각각에게 전설 하나씩을 부여하였던지라 그 각각의 치장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바로 그 여인들도 나에게는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한 일이다! 아카시아 산책로에서—즉 뮈르토스 산책로에서—그녀들 중 몇몇을 내가 다시 보았으되, 이제는 늙어, 옛 모습의 무시무시한 망령에 불과했던 그녀들은, 그 비르길리우스의 숲 속에서 무엇인가를 절망적으로 찾으면서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인적 끊긴 오솔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녀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태양도 이미 모습을 감추었다. 그곳이 엘뤼시오스에 있는 여인들의 정원이라는 사념도 이미 날아가 버린 불론뉴 숲에, 자연이 다시 군림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이, 일반적인 호수에 그러듯이, 그곳 큰 호수의 수면을 잔 물결들로 주름지게 하고 있었다. 커다란 새들이 일반적 숲에서 그러듯 불론뉴 숲 여기저기를 빠르게 돌아다니다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커다란 떡갈나무들 위로 하나씩 차례로 내려앉는데, 떡갈나무들은 드루이다의 왕관을 쓰고 도도네의 장엄함을 한껏 떨치면서, 폐용된 숲에 더 이상 인간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 같았고, 우리의 기억 속 화폭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기억 자체에서 비롯되며 감각기관에 의해 인지되지 않는지라, 기억 속에 간직된 화폭들을 현실 속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모순임을 나로 하여금 더 분명히 깨닫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내가 일찍이 알고 있던 현실은 더 이상 없었다. 스완 부인이 옛날과 똑같은 차림으로 같은 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로수 심은 길이 전혀 다른 길로 바뀌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일찍이 간 적이 있어 알게 된 장소들은, 우리가 편의상 그것들을 위치시키는 공간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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