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불트만: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 10점
루돌프 불트만 지음, 허혁 옮김/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머리말

I. 구약성서적 유산

1. 하나님과 세계

2. 하나님과 민족

3. 하나님과 인간


II. 유대교

1. 회당과 율법

2. 희망

3. 헬레니즘 유대교


III. 그리스적 유산

1. 그리스적 폴리스

2.학문과 세계관


IV. 헬레니즘

1. 스토아적 현인의 이상

2. 성신종교, 운명신앙과 점성학

3. 밀의 종교

4. 영지주의


V. 초대 기독교

1. 절충주의적 현상

2. 인간과, 시간에 대한 그의 관계

3. 세계 內에서의 인간의 상황

4. 구원(救援)


문헌소개

역자후기





I. 구약성서적 유산

9 구약에는 그리스적인 아르케, 즉 세계의 기원 ━ 이 기원은 세계의 구조 속에 항상 현재하는 것이며, 이것에 의해 세계의 구조와 세계 안의 사건은 사유에 있어서 통일적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 에 대한 물음이 없다. 물론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옛부터 영원히 모든 산 것과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세계의 창조자로서 그렇다! 이것은 그 근본 의도에 있어서 세계의 성립을 설명하려는 우주론의 명제가 아니라 하나님, 즉 세계가 그의 것이고 그의 힘이 세계를 지탱하고 그의 섭리가 인간을 보존하고 인간은 그에게 순종할 의무를 가지는 하나님을 자기의 주(主)로 고백하는 인간의 고백이다.


15 인간의 피조성은 그가 자연과 자연사건에 예속된 존재임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세계의 존재로서 세계에 종속된 것이 아니고 세계에 대립해 서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견유학파나 스토아학파, 혹은 에피큐로스파의 경우에서와 같은 문제, 즉 인간은 어떻게 자연 운행의 규칙적 과정에서 그의 독자성을 얻을 수 있는가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세계는, 말하자면 인간에게 그의 체험의 장소로서 그의 일과 운명의 영역으로서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세계에서부터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간에서부터 이해된다. 세계는 물론 인간에게 있어서 친숙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계는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산 것이고 또 숙명으로서 인간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본래의 지배권은 하나님에 속한 것이다. 또 하나님에 예속되어 있음을 아는 것은 동시에 그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30 구약적 하나님 신앙 일반에 포함되어 있는 주제, 즉 알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의 주제가 극단적으로 발전되었다. 말하자면 사람이 자신의 뜻과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을 때 바로 하나님은 구원의 미래를 일으킨다는 신뢰와도 결합될 수 있는 자포자기의 주제가 발전되었다. 여기에서 특유한 신앙개념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사실로 여기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겸손한 복종에서, 조용한 기다림에서 그를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


45 육과 마찬가지로 생명도 무상한 것이고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영혼 불멸 사상은 구약에는 없다. 이 사상은 후에 그리스 문화권에서 헬레니즘적 유대교에 침투된 것이다. 반면 몸의 부활 관념은 이란 종교에서부터 팔레스틴 유대교로 침투해 왔다. 이 관념은 구약에서는 후기에 기록된 몇 부분에서만 볼 수 있다. 구약은 인간 생활의 장소로서 오직 이 지상을 알 뿐이고 죽은 자들은 망령으로서 지하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46 '고귀한 죽음’이라는 이념은 없다. 이와 함께 물론 자살의 정당화와 영웅화도 없다. 죽음을 막을 방법도 없지만 인간은 삶에 지치고 피로하여 무덤에 묻힐 때까지 오래 살도록 힘쓸 수 있다. 길고 복된 삶은

개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이것을 약속하는 반면 죄인은 단명으로 벌한다. 죽음이 모두 죄에 대한 벌이라는 사상 또한 구약에는 없다. 아담의 범행에 대한 벌은 죽음이 아니라 낙원에서의 추방이고 노동의 괴로움이었다.


54 요컨대 죄는 그때 그때 어떤 한 계명을 범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배에 대한 의혹이며 이와 함께 언약의 확실성과 그의 요구들의 타당성에 대한 의혹 ━ 즉 저 유혹적인, 낙원에서의 뱀의 말, "하나님이 말하였느냐?" 같은 ━ 이며 그의 약속의 확실성에 대한 의혹이다. 죄는 지금까지의 그의 섭리에 대한 불평이며 그의 미래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다. 죄는 감사하지 않음과 불성실이며 불신앙이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신뢰로서의 신앙 및 하나님 경외에 반대되는 것이다. 


II. 유대교

75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전연 자유가 없다. 그는 그 전부가 요구되었고 맡긴 돈 비유(마 25:14-30) 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삶 전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마 25:14-30).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공로에 의거해서 하나님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종과 같다(눅 17:7-10). 하나님은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그의 품 삯을 줄 것이다. 그러나 공로와 품삯을 계산에 넣는 일은 단연 거부된다. 마지막 시간에 일한 일꾼이 하루 종일 일한 일꾼과 같은 품삯을 받는다(마20:1-15). 개인이 당한 특별한 불행에서 그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될 뿐이다(눅 13:1-5). 오만한 자를 하나님은 혐오한다(눅16:15). 그리고 자기 덕을 자랑하는 바리새인은 눈을 바로 들지 못하는 세리보다 못 하다(눅 18:9-14).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맡기고 권리와 공로를 내세울 줄 모르는 어린이 같아야 한다.


84 전통적 일반적 형테에서의 희망은 민족적 희망, 죽 다윗 혈퉁의 왕인 '메시야'가 지배하는 다윗 왕국의 재건에 대한 희망이었다.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초기에는 구원을 가져올 초자연적 인물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다윗 왕조 복구에 대한 기대였다. 즉 구원의 새 시대를 가져올 메시야는 인간으로 생각된 것이다.


90 그는 이미 지나간 세계사의 시대들을 돌아다보지도, 언제 마지막 때가 올 것인가를 헤아리지도 않는다. 그는 자연 및 민족세계에서 마지막의 가까움을 인식하게 하는 징조를 탐색할 것을 명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심판과 부활, 미래의 영광에 대해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때에는 하나님이 지배하리라는 한 사상에 홉수된 것이다. 그러므로 극히 소수의 묵시문학적 미래 상의 표현만이 그에게서 되풀이되고 있다 뿐 예수가 현 세계시는 끝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설교의 종합인 "때는 차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다"(막 1:15)는 말은 가까운 미래를 지시하는, 그리고 현재를 결단의 때로 특징짓는 그의 여러 말들에 일치한다.


III. 그리스적 유산

131 인간은 코스모스 안에 존재하고 코스모스를 합리적 사유에 의해 객관화하면서 그의 실존을 코스모스 안에서 이해하려 한다. 코스모스는 '근원'에 대한 물음에서 법칙에 맞게 정돈된 통일체로 이해된다. ━ 바로 '조화'로서: 현인들은 말한다 : "하늘과 땅, 신들과 인간들은 공동체로 우정과 조화와 자제와 의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인들은 세계전체를 질서(코스모스)라고 하고 가령 무질서 혹은 무정부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신들과 사람들 사이의 수학적 관계에 세력이 있다는 것을 너는 아마 모르는 모양이다," 세계 영은 조화이고 음악은 "존재의, 만물을 소생케 하는 코스모스적 원동력의 최종적 드러남이다."


136 그러므로 과제는 만물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형태를 제공하는 법칙들 아래서 모든 개체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모든 개체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을 이 법칙들의 요구에 의해 처리하고 그렇게 함으로 자신을 예술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코스모스의 봉일성에 첨가시키는 것, 즉 무 시간적인 것의 영원에서, 영원에서 실존하는 것이 과제이다. 인간은 이를 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 그는 본질적으로 다름아닌 정신이다.


IV. 헬레니즘

160 물론 밀의교들도 그때 그때의 특유한, 그리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비밀히 거행되는 예배와 헌신 의식에 의해 폐쇄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 교단에 속한다고 해서 국가적인 폴리스 예배에 참례하는 것도, 다른 밀의교들에 입교하는 것도 전적으로 금지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밀의교들은 유대교나 기독교와 같은 교회적 통일체를 이루지 못했다.


165 영지주의는 처음에는 기독교내의 움직임으로 연구의 흥미를 끌면서 오랫동안 명백한, 기독교내의 산물로 생각되었다. 기독교적 신앙이 사변적인 신학으로 변질된 것으로서 기독교의 '철저한 헬레니즘화'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차츰 영지주의가 사실은 기독교보다 앞선 근원을 가진 종교적 움직임이고 여러 다른 형태를 가지고 기독교의 경쟁자로서 근동에서부터 서방세계에 침투해 온 것이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영지주의는 자체의 표현을 위해 여러 다른 신화론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전통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의 혼합적 현상으로 성격 지을 수 있다.


166 영지주의적 신화는 ━ 여러가지 변형으로 ━ 영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의 빛 세계에 있는 영의 근원에 대해, 영의 비극적 타락과 지상에서의 나그네 됨, 몸 안에의 유폐, 그의 해방과 마지막에 빛의 세계로의 승천에 관해 보도한다. 영 ━ 영지주의의 언어로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본래적인 내적인 자아 ━ 은 하늘의 빛(원인간)의 일부, 한 조각, 불꽃인데 이 빛은 창세 전에 악마적인 암흑의 세력들의 지배권에 빠져들어간 것이다. 이 몰락에 대한 서술 방식에서 설화의 각 형식이 구별된다.


V. 초대 기독교

176 결정적인 걸음이 내디뎌진 것은 예수에 관한 소식, 즉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자, 올 심판자이며 구원을 가져올 자에 관한 소식이 팔레스틴 유대교 영역을 넘어선 것과 기독교회들이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생긴 것과 함께 일어났다. 


177 기독교 신앙은 이제 새로운 정신 세계에 등장했다. 그의 선포는 헬레니즘 세계의 청중을 이해시킬 수 있는 언어, 그리고 그들의 개념 세계의 말이어야 했을 것이고 듣는 자들은 그 소식을 그들의 방식, 즉 그들의 동경과 제기된 문재에 의해 해석했음은 분명하다. 그 결과 여러 다른 전형들이 생겼다.


208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 세상에 대한 근본적으로 변증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 시민적인 의무들과 정치적 사회적 과제들에 대한 생소함이 원칙적으로가 아니라 시대사적으로 규정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세계종말의 임박한 대망과 그 성원들이 거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도맡는다는 생각에 미칠 수 없게 한 처음 기독교 공동체들의 구성에 달린 것이었다.


209 미래는 원칙적으로 영지주의에서와 같이 환상적인 우주적 상태로서 이해될 수도, 신약성서의 묵시문학적 미래상들과도 함께 이해될 수 없다. 이 미래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끊임없는 앞섬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어디를 향해 가든지 설사 죽음의 어두운 곳일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이미 앞서 와 있다. 바울은 물론 우리를 위해 계시될 영광(롬 8 : 18), 우리를 기다리는 영원한 '마지막' 영광(고후 4:17) 을 말한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 사랑 자체는 '완전한 것'에 이르러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말한다(고후 13 : 13). 그러나 다시 말하면 그는 비세계적인 것이 단순한 소유가 되는 완성을 생각지 못한다. 다른 말로 : 기족교적 실존의 개방은 끝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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