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쇼조: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 주술제의적 정통성 비판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 10점
후지타 쇼조 지음, 윤인로 옮김/삼인

저작집 머리말 — 뒷모습에 대하여
머리말 — 보주(補註)를 겸하여
서문
제1장 이단의 유형들
— 문화사회의 유형들과의 상관성에서
제2장 일본 사회에서의 이단의 ‘원형’
제1절 주술적 제의로서의 천황제와 ‘이교의 이단화’
제2절 공적 주술제의를 위협하는 것으로서의 ‘주술이단’
— 그 원형과 분극화 과정
제3장 근대 일본에서의 이단의 여러 유형 — 보고와 토론
1. 보고 (후지타 쇼조)
2. 토론 (마루야마 마사오, 이시다 다케시, 후지타 쇼조)
해제
역자 후기

 



35 모든 사회는 다양한 형태로 이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이단은 그것이 발생하는 사회 유형의 다름에 따라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이단이라는 동일한 말로 불릴 때에도 그 정신구조나 사상적 의미에서 보면 거의 상반되는 특징을 띠기도 한다. 그런 이단들의 공통점은 특정 사회의 신념체계로부터 신념체계 상의 내부적 이질자로 간주되어 그 문화사회로부터 배제된다는 것뿐이다. 그 ‘배제’의 절차만을 두고 보아도 어떤 유형[type] 의 문화사회에서는 우선 '심문' . '조사'가 행해지고 그것에 근거한 '판결'·'결정’이 내려지며 그 결과 각종 단계[grade, 등급]를 가진 '배제’가 이뤄진다. 예컨대 '교회의 견책'·'활동권리의 정지’로부터 '파문제명·추방', 나아가 '화형·사형'에 이르는 단계가 있다.

36 나의 진실로 부족한 지식을 동원하여 문제의 소재지에 있을 법한 다양한 역사 현상을 개략적으로 대조해보면 세 개의 이념형에 도달한다. 하나는 초월적 종교 아래서 베버가 말하는 '주술로부터의 해방'을 '사회적'으로 관철하려는 것이고, 거기서 당연히 '사회'의 혁신적인 '합리화'가 발생함으로써 제도가 형성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의미에서 그것과는 정반대로 주술 그 자체를 '제의'로서 '합리화’하고 그로써 사회적 통합을 수행하려는 문화사회이다. 이를 '주술제의로부터의 해방'에 대비되는 '주술의 합리화' 경향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베버가 중국의 유교를 특징지었던 것으로 '질서의 합리주의’ 사회이다.

37 예컨대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칼케돈 공의회까지, 곧 로마가톨릭교회의 정통교의인 '삼위일체’가 확정되기에 이르는 교회 확립 과정의 그리스도교 교의해석 논쟁은 참으로 지적인 스릴로 가득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 최대 절정은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이었다. 그것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로마제국의 동방 확장과 함께 로마교회의 신앙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던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지적 생기였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 아래 아마도 상업적 교류도 더해지면서 알렉산드리이에는 사고의 활발한 횡행이 있었다. 이리하여 로마교회의 확장을 결정짓는 교의 형성에 관한 토론이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38 아리우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하여, '아들'은 아들인 이상 '태어난 것’이고 '태어난 것'인 한에서 그 존재에는 '시작점'이 있고, 그 존재에 '시작’이 있는 것은 논리적 필연으로 '비非존재'였던 때가 있었음을 뜻하며 따라서 그것은 '영원'한 신과 같을 수 없다고생각했다. 이는 참으로 훌륭한 논리적 규명이라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미묘한 차이를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그 논리가 한번 신도들의 '심리적' 레벨에서 작용하기 시작할 때면 '신의 아들' 예수를 다만 역사적 존재로 함몰시켜버리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42 '삼위일체'야말로 현세적인 '보이는 집단’으로서의 교회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 교회―에 대비해 '보이지 않는 신성'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신의 아들' 예수의 목숨이라기보다는 '사도’에 의해 만들어졌고, 게다가 언제나 어떤 순간 어떤 장소에서도 '성령'이 깃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에 의해서만 교회는 다른 정치적 조직과 구별된다. 따라서 혹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통일성이 그 3자 사이의 어딘가에서 한치라도 깨지게 된다면 (1) 교회는 아버지인 신과의 연속성을 잃고 이 세상 속 인간 예수를 교조로 하는 오직 세속적인 집단이 되어버리거나, (2) 신도 중 누군가가 함부로 '신' 혹은 '신과 예수’에 자기를 동일화하는 것을 허가하게 되거나, (3) 교회에 깃든 '영'이 '성령'이라는 보증을 잃게 됨으로써 각 지역을 배회하는 숱한 주술적 정령들과의 구별 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어 결국 토착적이고 특수적인 각종의 주술제의적 신앙이 교회로 흘러들어가 '악령'이 거꾸로 교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교회가 세속적 집단이 되어버리면 전통적 주술은 자유롭게 유입될 수 있을 것이며 당연히 참된 신도는 교회를 벗어나 함부로 신과 예수를 믿고 받들게 될 것이기에, 그러한 세 가지 예의 귀결은 동시에 함께 출현한다. 곧 그것은 교회의 해체와 다룰 바 없다. 이리하여 그런 간단한 '예'만으로라도 '삼위일체'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왜 그리스도교회에 중대한 문제가 되는지가 이해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교회가 혹여 해체되지는 않더라도 현세로부터의 초월이라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그리스도교회 자체로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수육성'을 상실한 교회가 '이 세상’의 권력정치적 상황에서 자기를 유지하려면 그 스스로도 또한 군사력에 기대는 정치집단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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