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

 

머리말

프롤로그 프루스트와 글쓰기
1장 잃어버린 시간은 어디에 있는가?
2장 상실의 시대 벨 에포크—속물들의 유토피아
3장 헛되고 헛된 사랑의 찬가
4장 되찾은 시간 — 예술과 수련
에필로그 마르셀, 작가-의사가 되다

부록
등장인물로 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림으로 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체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가 출판된 것은 1913 년이고 제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전후인 1919년에 나왔다. 1920년에 제3편 「게르망트쪽」이, 1921년에 제4편 「소돔과 고모라」 1부가, 1922년에 「소돔과 고모라」 2부가 나왔다. 1923년에 나온 제5편 「갇힌 여인」부터는 작가 사후에 간행된 것으로, 1925년에는 제6편 「사라진 알베르틴」이, 1927년에는 제7편 「되찾은 시간」이 나왔다. 프루스트는 제1편과 제7편을 동시에 작업했고, 생트-뵈브 반박 원고를 준비하면서 설계한 애초의 윤곽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작품의 표제와 중심 사건으로만 놓고 보면, 주인공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사교계의 다크호스가 된 것과 연애의 실패다. 먼저 주인공은 매춘부를 불러들여야만 겨우 활기를 얻는 부르주아의 살롱(제1편), 상류층의 향락지이자 유토피아인 노르망디 해변(제2편), 그리고 위대한 유산의 보고인 대귀족의 저택(제3편)을 전전하면서 화려하고 멋있는 최고급 사교계를 편력한다. 그리고 제4편부터 제6편까지는 화자가 이 외적 세계의 편력에서 환멸을 느끼고 난 뒤 사랑의 문제에 몰두하게 되는 이야기다. '소돔과 고모라', '갇힌 여인', '사라진 알베르틴' 같은 제목들이 말해 주듯이 이 사랑의 세계는 사도마조히즘과 실패한 연애담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헛된 사랑의 세계에서 실컷 방랑한 뒤, 화자는 문득 지난 세월을 뒤로 하고 오래전에 포기했던 작가의 꿈을 다시 부여잡는다. 이미 늙고 병들어버린 시점에서 말이다(제7편).

40 1912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새로 시작했을 때, 프루스트는 이미 작품의 전체 구조와 문체를 확정하고 있었다.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는 원환 구조와 과거의 여러 시점을 동시적으로 포착하는 현재적 글쓰기, 오직 글을 쓰는 현재만을 보여주도록 하자! 그는 자신이 기획한 구조와 문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먼저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 시간관, 즉 사실주의 소설의 기본 문법을 파괴했다. 그러기 위해 작품의 처음과 끝을 동시에 집필하는 실험을 구상했다. 그러려면 날짜나 시간, 나이와 같이 시간의 단선적 진행을 표시해 주는 말을 쓰지 않아야 할 것이다. 꿈과 기억이 뒤섞이고, 자신이 읽은 것과 경험한 것이 뒤섞일 수도 있었다. 유년과 청년, 장년 시절이 동시에 펼쳐져야 했다

42 마르셀은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회상한다. 회상했던 일을 또 회상하고, 그 회상을 다시 회상한다. 그리고 마르셀은 이 모든 회상을 쓴다. 그는 오직 자신의 회상 안에서만 나이를 먹는다. 여러 겹의 회상 속에서 과거는 매번 다른 진실을 안고 되돌아오고 이 되돌아옴 안에서 십대의 화자와 이십대의 화자, 이들을 조망하는 장년의 화자가 자연스럽게 같은 페이지, 그러니까 '회상을 쓰고 있는 지금’의 지면 위로 모여든다. 이렇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잊고 있었거나 사소하게 취급했던 과거들이 갑자기 출현해서 서로 충돌하는 '현재들'로 꽉찬 시간을 만들어 냈다. 

44 그렇다면 잃어버린 시간이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그것은 허망하게 흘러가버린 시간을 의미한다. 경험하는 동안에는 잠재적인 인과들을 전체적으로 통찰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은 그저 덧없이 흐른다. 회상을 통해 그 잠재적 인과들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인연들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작가 프루스트가 더 오래 실아 작품 속 마르셀에게 회상의 기회를 더 많이 부여했더라면 마르셀은 또 다른 삶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으리라. 살실 살롱의 댄디나 몽상가 같은 정체성이란 마르셀이 현재 속에서 구성할 수 있었던 몇 개의 마르셀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르셀에게 과거는 결정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거는 현재적 관점에서 시시 각각 변한다. 현재는 회상을 통해 과거라는 새로운 공기를 마심으로써 활기를 띤다. 덕분에 마르셀은 회상을 통해 수많은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 만약 프루스트에게 인생의 일회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면, 그는 대답하리라. 회상은 하나의 인생을 수많은 드라마로 바꿔 준다고. 회상이야말로 우리의 유한한 삶을 무한한 풍경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45 그런데 제7편 「되찾은 시간」부터 회상의 중심에 놓인 테마는 예술이다. 왜냐하면 예술이야말로 시간의 무한한 펼쳐짐을 가능케 하면서 삶의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반 고흐가 그린 낡고 닳은 구두 한 켤레는 그 구두를 신는 사람의 땀내 나는 발과 거친 작업장을, 쉬지 않고 걷고 일했을 누군가의 고생스런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던 삶들이, 내가 길에서 만났던 누군가, 나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나의 친구일 수도 있는 그들의 신산한 인생이 그 그림으로부터 순식간에 확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잃어버리고 있었던 인생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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