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C. 엘리스: 인류세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4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1. 7. 22.
인류세 - 얼 C. 엘리스 지음, 김용진.박범순 옮김/교유서가 |
제1장 기원들
제2장 지구 시스템
제3장 지질시대
제4장 거대한 가속
제5장 안트로포스(Anthropos)
제6장 오이코스(Oikos)
제7장 폴리티코스(Politikos)
제8장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10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 노벨상수상자인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2000년 한 학술회의장에서 절망스럽게 외쳤다. 크뤼천은 자신의 동료들이 현시대를 여전히 홀로세(Holocene) 라고 부른다는 점에 좌절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빙하기가 끝난 이후로, 즉 홀로세가 시작된 이후로 인간은 너무나 명백하게 지구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지구의 현 지질시대를 우리 자신의 이름, 즉 인간을 의미하는 안트로포스(Anthropos)에서 따와서 명명하자는 제안은 크뤼천이 외쳤던 순간부터 학계 안팎에서 대단한 관심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15 인류세를 둘러싼 열띤 논쟁들을 볼 때, 인류세는 단순히 새로운 지질시대에 대한 명칭 문제를 넘어 무언가 더 중대한 문제와 얽혀 있음이 분명하다. 인류세가 중요한 이유는 인류세가 오래된 서사와 철학적 질문들을 다시 논의하고 다시 쓰도록 하는 렌즈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인류세는 인간과 자연을 연관시키는 새로운 서사이자 '두번째 코페르니쿠스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대담하고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이다. 인류세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25 창세기의 이야기와는 달리 이 새로운 기원 이야기 안에서 인간은 딱히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지는 않았다. 변화하고 있는 행성인 지구 속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방향성 없이 진화해가는 하나의 종에 불과했다.
174 다윈을 비롯한 대부분의 박물학자는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적어도 선사시대 인간이나 동시대의 비유럽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18세기 말 뷔퐁 백작이 '본래의 자연'과 인간에 의해 '문명화된 자연'을구분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비인간 자연의 구분은 생태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이 부상하면서 심화되었다. 그리고 인간 세계에 대한 연구는 오롯이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몫으로 넘겨졌다. 고고학자와 인류학자처럼 생태학자도 더 작은 장소나 지역을 조사하는 연구 전통을 발전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계와 자연계 사이의 지역적이고 지구적인 상호작용은 연구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175 뷔퐁 백작은 이미 1778년에 “인간의 힘이 가해진 흔적이 지구 표면 전체에 남았다”라고 주장했다. 생태학자 피터 비투섹과 동료들은 1997년 〈사이언스〉에 매우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인간이 지배하는 행성에 살고 있다"라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리고 인류세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 파울 크뤼천이 아니라 호수생태학자 유진 스토머였다는 사실도 떠올려보도록 하자.
213 몇몇 철학자, 자연보전주의자, 그리고 심지어 지질학자에게 있어 인간의 시대를 지정하는 행위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오만과 인간중심주의로 비칠 것이다. '우리'가 대체 무엇이기에 새로운 지질시대를 우리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원자시대', '동질세', '탄소세'('화석연료의 시대') 등 이 모든 용어가 우리 시대를 적절하게 나타내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을 전면에 내세운 용어를 선택하려는 것일까?
222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 전체가 급격한 지구적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부유한 국가,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훨씬 더 많이 배출한다. 자가용이나 제트기를 타고 여행하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사용 행위 중 하나이지만, 지구상에는 한 번도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사실상 모든 에너지는 싸고 풍족한 화석연료로부터 나왔다. 결과적으로 일부 사람들은 부유하고 탄소 집약적인 생활방식을 누리고, 그 대가로 모든 사람은 탄소로 가득 찬 대기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223 현재의 각국 배출량을 보면, 지구적 환경변화의 주범이 중국이라고 공격하기 쉽다. 그러나 이 같은 단순한 판단은 더 뿌리 깊은 불평등을 은폐한다. 중국이 산업 발전을 위해 대규모로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였다. 미국은 이미 한 세기 이전에, 영국은 미국보다도 수십 년 전에 비슷한 수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도달해 있었다. 미국이 1850년 이래 배출해온 총량에 맞먹으려면 중국은 아직도 한참 멀었다. 게다가 중국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총량의 3분의 1 정도는 전 세계 나머지 국가를 위한 수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즉 중국의 탄소 배출이 중국만의 책임은 아닌 셈이다.
238 과학이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인간의 복지는 전반적으로 개선되었지만 동시에 우리 행성은 더 더위지고 오염되었으며, 생물다양성은 줄어들었고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전체 지구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상태로 떠밀려 가고 있으며,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그렇게 되면 지구상에서 가장 자원이 풍부한 사회마저도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 그 궤적대로 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인간 사회뿐 아니라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를 가지고 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69 인류세처럼 인간과 지구의 미래와 관련해 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회에서 새로운 실천 규범을 고민하게 한 개념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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