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장: 문자의 역사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1. 7. 12.
문자의 역사 - 조르주 장 지음, 이종인 옮김/시공사 |
1. 초라한 출발
2. 신의 발명품
3. 알파벳 혁명
4. 필경에서 인쇄로
5. 출판업자
6. 문자해독자
7. 기록과 증언
8. 참고문헌
9. 그림목록
10. 찾아보기
12 인류가 존재한 수만 년 동안 선화, 기호, 그림 등 간단한 의사소통의 수단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문자가 존재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문자를 사용하는 집단의 생각이나 느낌을 분명하게 재현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호나 상징 체계가 있어야 하며, 이 체계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것이라야 한다. 이러한 체계는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자의 역사는 그야말로 오랜 동안 천천히 진행된 복잡한 과정이다. 또한 그것은 인류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며, 아직도 대단히 중요한 에피소드들이 누락되어 있어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수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문자의 역사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지금의 이라크)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B.C. 3000년경 이 일대는 남쪽 수메르 지역과 북쪽 아카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4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이들이 사용한 최초의 문자는 물체의 단순한 윤곽 이상의 것으로서, 물체의 전형을 간단한 선화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소'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소의 머리를 그렸고, '여성'의 경우에는 성기를 나타내는 역삼각형을 그린 다음 그 밑에 점을 찍었다. 특정한 대상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이러한 그림을 그림문자라고 한다. 그림문자를 여러 개 겹쳐놓음으로써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고 표의문자를 만들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산'을 나타내는 그림문자 옆에 여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역삼각형의 그림문자를 겹쳐놓으면 그것은 산너머 외부지역에서 데려온 '여자 노예'를 의미했다. 학자들은 이 같은 원시 그림문자가 약 1,500개 정도 있음을 확인했다.
15 필경사들은 진흙판에 한쪽 끝이 뾰족한 갈대를 이용하여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사물을 그려 넣었다. 수메르인은 끝부분을 삼각형으로 잘라내 첨필을 만들었다. 그림들은 주로 쐐기꼴을 하고 있었는데, 이 특징 때문에 설형문자라는 말이 생겨났다.
16 모든 발달된 문자체계는 이같이 기호가 소리를 표상하는 체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수메르인과 이집트인의 놀라운 업적은 아이들 놀이처럼 간단한 레부스라는 체계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림문자를 사용할 때, 대상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나타내는 소리를 기록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40 필경사는 강력한 사회계층을 형성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기술 때문에 왕만큼 위세가 있었다. 특히 왕이 자기를 신이라고 생각하여 쓰기, 읽기, 산수 등을 배우려 하지 않을 때에는 이들 계급의 위력은 더욱 대단해졌다. 메소포타미아 필경사가 주로 진흙판을 이용한 데 비해 이집 트 필경사는 다양한 필기소재를 이용하여 글씨를 썼다. 그들은 돌에 상형문자를 새겨 넣기도 했지만, 훨씬 부드럽고 질이 좋으며 다루기 쉬운 파피루스도 이용했다.
40 파피루스는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많이 자라는 식물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파피루스를 이용하여 밧줄, 매트, 샌들, 돛 따위 많은 일상용품을 만들었으며, 그 섬유질 줄기를 이용하여 종이와 유사한 필기소재를 만들어 글쓰기에 혁명을 가져왔다.
42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를 그리는 것은 상당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토록 정교한 기호를 이용하여 글씨를 쓴다는 것은 일상생활에는 적절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빨리 해야 하는 일을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필경사들은 보다 빨리 쓸 수 있는 필기체 상형문자를 개발해 냈다. 이것을 신관문자 또는 성직문자라고 했는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사제들이 처음 이 문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신관문자도 상형문자와 마찬가지로 그림문자, 표음문자, 한정부호를 갖추고 있었으나, 이 세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신관문자의 기호는 원래의 그림과는 다르게 변모되어 갔다.
52 설형문자, 상형문자, 중국 한자의 공통되는 특색은 이들 문자의 각 글자가 단어가 되기도 하고 음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문자를 읽으려면 상당히 많은 수의 기호나 한자를 알고 있어야 한다. 알파벳은 이들 문자와 다르게 기능한다. 이 체계에서는 오로지 30개 정도의 기호만 알고 있으면 무엇이든지 글로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알파벳은 26개인데, 이것만으로 모든 말소리를 표기할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민학교에서 철자법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애를 먹는다. 그러나 중국글을 이해하기 위해 외워야 하는 1,000개의 한자, 이집트인이 사용했던 수백 자의 상형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수습 필경사가 외워야 했던 600개의 설형문자 등과 비교해 보면 26개의 기호로 된 알파벳은 아주 적은 숫자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상가들은 알파벳이 발명되고 나서부터 진정한 대중교육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60 페니키아 문자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유래된 문자들은 모두 자음만을 표기했다. 따라서 그 문자를 읽으려면 미리 모음을 다 외우고 있어야 했다 문자 중에 모음의 수가 적은 셈어에서는 이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용하는 모음이 많은 그리스인에게는 아주 곤란했다. B.C8세기경 상형문자는 여전히 이집트에서 쓰이고 있었고 알파벳 문자는 팔레스타인 연안 일대에서 200년 이상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그보다 북쪽인 그리스에서는 기존의 알파벳 체계로는 표기되지 않는 전혀 다른 언어가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인은 모음을 표기하기 위해 아람어 알파벳에서 특정 기호를 빌려 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74 글을 쓸 줄 아는 세속인은 거의 없었다.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였던 샤를마뉴도 문맹이었다. 그가 왕실 문서에 결재를 할 때에는 필경사가 마련해 준 서명하는 자리에다 십자 표시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필경사와 달리 중세 유럽에서 필경사로 교육을 받은 수도사들은 창작가도 아니었고 권력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글씨를 베꼈을 뿐 스스로 문장을 만들지는 않았다. 중세 필경사의 창조적인 측면은 다른 데에 있었다. 그들은 서예의 대가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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