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기조: 새로 읽는 논어

 

새로 읽는 논어 - 10점
오구라 기조 지음, 조영렬 옮김/교유서가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제1장 동아시아의 두 가지 생명관
제2장 공자는 누구인가
제3장 인이란 무엇인가
제4장 군자와 소인
제5장 공자의 세계관
제6장 공자의 방법론
제7장 공자의 위기
제8장 제3의 생명

맺으며/ 역자 후기/ 『논어』 편명 일람

 



242 1. 〈제3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공자에 대한 오해
세계 역사상 공자만큼 철저하게 오해되어온 인물도 드물다. 
그리고 동시에 『논어』만큼 오독되어온 책도 드물다. 
동아시아 사상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당자에 대한 오해, 『논어』에 대한 오독의 역사였다. 
물론 그 오해와 오독은 21세기인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그렇다기보다 아무도 아직껏 그 오해와 오독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그 오해와 오독을 풀 계기가 전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동아시아의 비극이라 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이 오해와 오독을 풀려면, 발상을 매우 대담하고 모험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본서의 기본적인 시각과 입장이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공자에 대한 오해, 『논어』에 대한 오독에서 해방되려면, 인류 정신사를 다시 쓰는 일로 이어지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정도의 자세가 아니면, 공자와 『논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아무튼 2천 수백 년간 줄곧 오해되고 오독되어온 인물과 책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일이므로, 이것은 당연히 생각보다 거대한 작업이 될 터이다.
그렇다면 그 꽤러다임 전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숨겨진〈생명〉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일신교가 인류 정신사의 최고형태라고 여긴 서양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인간이 의식을 갖고 나서, 아주 초기의 원시적 단계에서 나온 가장 저급한 신앙형태가 애니미즘이다. 그것이 서서히 고도의 단계로 발전하여 종교라는 체계가 되었고, 최종적 최고단계에서 일신교가 되었다.
이러한 틀에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거기에서 말하는 애니미즘이란 '자연의 모든 것이 무언가의 혼·생명을 갖고 있다'는 인식형태여서, 그 '혼·생명'을 '영'으로 바꾸면 이것은 〈범령론〉이 된다. 즉 일선교에서 본 애니미즘이란, 본질적으로 〈범령론〉과 같은 유형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일신교가 있다.
정리하자면, 이른바 애니미즘과 〈범령론〉, 일신교는 모두 같은 유형의 인식형태이다. 그것은 세계 혹은 우주가 모두 하나의 비물질적인 무언가(혼이나 영이나 선)에 의해 생겼다고 보는 인식이다. 서양에서는 기독교나 선풀라톤주의나 스피노자나 대륙의 관념론 등이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본서에서는 그것을 〈제2의 생명〉이라 불렀다.
〈제1의 생명〉은 생물학적·육체적 생명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생명이나 목숨 등이라 말할 때는 보통 이 〈제1의 생명〉을 가리킨다. 인간과 동물과 벌레 등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생물학적 생명이다. 몸에 강한 물리적 타격이 가해지거나, 치명적인 병에 걸리면 〈제1의 생명〉은 파괴되어 죽어버린다. 
그러나 인간은 〈제1의 생명〉의 덧없음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덧없음을 견디고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종교적인 〈제2의 생명〉이라는 환상을 창조했다. 여러 종교에서 생명은 육체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육체가 멸한 뒤에도 혼은 살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기독교에서는 부모에게 받은 육체적 생명이 아니라, 신이 내려주신 영의 목숨이야말로 영원히 산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종교 가르침에 기대어 인류는 생의 덧없음을 견뎌왔다.
하지만 〈생명〉은 실은 그 두 종류가 아니었다.
또하나 숨겨진 〈생명〉이 세계에는 존재한다.

〈재3의생명〉
우리는 눈치채고 있다.
이 세상에는 생물 교과서나 종교 경전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전혀 이질적인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생명인지 생명이 아닌지 잘 알 수 없는 생명이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서 순간적으로 '아, 생명!'이라 생각할 때 드러나는 생명이다. 예술작품에서 힘을 느낄 때, 거기서 탄생하는 생명이다.
이러한 생명을 〈제1의 생명〉, 〈제2의 생명〉과 구별하여 〈제3의 생명〉이라 불러보기로 한다. 우리는 평소에 별로 유념하지 않지만, 사실 우리 인생은 이 〈제3의 생명〉으로 가득하고, 〈제3의 생명〉 없이는 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제3의 생명〉을 기본으로 하는 세계관을 〈 〉를 붙인 〈애니미즘〉 또는 〈소울리즘〉이라 부르기로 했었다.
공자와 『논어』를 〈제3의 생명〉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해보면, 지금까지 2천 년 이상에 걸쳐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것은 2천 년도 더 된 오래전의 언어이므로 '완전 히 이해한다'는 따위의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다만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범령론〉적으로 해석해서는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 던 것의 의미가 어슴푸레하게나마 다가올 것이다. 그것이 본서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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